대학은 태생적으로 자유로운 문화에 익숙하다. 획일성 보다는 다양성이, 일사분란함 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돋보인다. 대학의 이런 특성을 코헨과 마치(M. Cohen & J. March)는 ‘조직화된 무질서(Organized Anarchy)’로 표현한다. 또한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무작위적이며 체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일명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조직화된 무질서’나 ‘쓰레기통 모형’ 둘 다 대학조직의 무질서함과 변화무쌍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조직의 수장이 대학 총장이다.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한 조직을 이끌며 대학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열어가는 책임이 총장의 두 어깨 위에 얹어진다. 

2학기를 마치고 새로운 학년을 준비하는 동계 방학 중에 총장을 바꾸는 대학이 많다. 새 인물이 들어오고 낯익은 총장들이 무대에서 사라진다. 어떤 이는 진한 아쉬움을 남기며 떠나고, 어떤 이는 시원섭섭하게 임무를 마치고 내려간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총장이란 권위와 명예의 상징이다. 대학 총장은 직위에 걸맞은 사회적 존경을 받고 그에 따른 예우를 받는다. 대학행정의 총책임자로서 책임도 막중하다. 무한경쟁 시대 대학 총장은 다면적인 능력을 요구받는다. 학자로서의 권위도 있어야 하고, 거대 조직을 이끌어가는 관리능력도 요구된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을 위해 외부 기부금도 유치해야 한다. 요즘 같은 ‘평가 인증 시대’에는 굵직굵직한 정부재정사업을 따오는 것도 총장의 능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전천후 능력을 갖춰야만 총장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총장이 있을까? 새 총장을 찾는 대학들은 자기 대학에 가장 적합한 총장을 모시기 위한 상(像)을 그린다. 이른바 ‘바람직한 총장’ 상이다. 

시대 상황과 대학이 처한 여건에 따라 ‘바람직한 총장’ 상은 바뀌지만 예전부터 이어져 온 ‘학자형 총장’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기업가형 총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만 간다.

‘기업가형 총장’은 대학을 지식산업체(knowledge enterprise)로 본다. 이들에게 대학경쟁력 강화는 지상목표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재정을 확충하고,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실시한다. 위기에 처한 대학에서 기업가형 총장은 갈등의 유발자인 동시에 혁신의 추동자가 된다. 

‘기업가형 총장’이 대학 외부인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학 내 인사 중에서도 ‘기업가형 총장’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례가 보인다. ‘대학 안에서 행정직을 보직으로 가져 본 경험이 있는 교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그들의 대학 행정 참여 경험이 대학을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가형 총장’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기업가형 총장’이라도 단임으로는 혁신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총장 임기는 4년이 보통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2년 내지 3년 짧게 임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대학에서 혁신을 추진하고 성과를 낸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학혁신에 감을 잡을 만하면 그만두는 시간이 다가온다. 임기 말 레임덕이 발생하고, 애써 쌓아온 대학혁신의 기세는 꺾이기 마련이다. 

세계 유수 혁신대학들은 총장 단임제 보다는 오히려 한 총장이 15년, 20년 넘게 장기간 대학을 책임지고 경영할 수 있게 한다. 미국 혁신대학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애리조나주립대의 마이클 크로우 총장만 하더라도 20년 가까운 기간 대학을 경영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 내 구성원들의 혁신가치 내재화만 하더라도 8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이로 미뤄 단임제 총장에게 지난(至難)한 대학혁신 과정을 완수하라는 요구 자체가 난센스(non sense)란 생각이다.

임기 말 총장들은 대부분 연임 의사 확인에 그만두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들의 농익은 경험을 쉽게 버리는 우리 대학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분명 총장 단임제가 대학혁신의 추동력을 감퇴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자칫 총장직을 교수들이 돌아가며 하거나 법인이 총장을 다잡는다는 이유로 단임제를 고집한다면 대학혁신은 요원하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대학에서는 총장의 연임을 허용하지 않고 단임제만 고집한다. 사정이 있겠지만 대학혁신에 있어 총장의 역할을 무시한 소치(所致)란 생각이다. 대학은 조직화된 무질서, 쓰레기통 모형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특수조직이다. 혁신 과제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조정의 명수나 갈등관리자가 아니라면 혁신과정에서 분출하는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을 조율조차 할 수 없다. 

대학 수난의 시대, 직을 내려놓고 원대 복귀하는 총장에게 건강히 복귀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는 점을 전하면서 그들의 농익은 대학혁신 경험을 고등교육 발전에 여하히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만 늘어가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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