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의 민주주의와 자유지수 평가는 이중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산됐지만 자유지수는 전반적으로 계속 악화됐기 때문이다. IDEA(Institute for Democracy and Electoral Assistance)에 따르면 1975년 26%에 불과했던 민주주의 국가는 2018년 세계의 62%인 97개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2019년 세계 자유지수는 또 한 차례 퇴보했다. 14년 연속 후퇴다. 개인의 정치적 권리와 시민자유가 개선된 나라는 37개국, 악화된 나라가 64개국이다. 프리덤 하우스는 이 시기 특히 민주주의와 다원주의가 세계적으로 공격당했다고 본다.

2019년 세계 자유지수의 하락은 미국과 인도 탓이다. 선거로 선출된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은 포퓰리즘 의제를 추구했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보호장치는 망가졌으며 비판자와 소수자의 권리는 무시 당했다. 미국은 2009년 자유지수가 94점이었지만 2019년 86점으로 떨어졌다.

2020년 역시 세계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했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이 결정적이었다. 이코노미스트 평가에서 116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하락했다. 2019년 세계 자유지수의 전반적 하락에 이은 세계 민주주의의 ‘2연패(敗)’다.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자유지수의 지속적 하락과 민주주의의 위기는 구조적인 현상이다. 지난 40년간 민주주의 속성으로서 가장 느리게 진전된 것은 ‘부패감소, 양성평등, 불평등 완화 그리고 사법 독립성’ 등이 꼽힌다. 이들 과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시민들은 기본적 자유와 좋은 정치의 민주주의 거버넌스를 요구한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부패와 불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의 약한 경제적 성과’이기에 시민들이 분노한다.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국가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 불만이 좌우를 불문하고 극단 성향의 포퓰리즘 확산으로 이어진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진행되는 것이 최근 현상이다.

민주주의, 자유지수를 평가하는 여러 기관들은 포퓰리즘 정부는 그렇지 않은 정부보다 상대적으로 민주주의 질이 떨어진다고 평한다. 포퓰리즘 정부·정치에서 그나마 진전된 민주주의 속성이라면 선거참여가 유일하다고도 한다.

세계적 자유지수의 하락과 민주주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월드 클래스’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세계 167개국 중 ‘완전한 민주주의’ 23개국 중 하나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재작년 ‘일부 결함을 보인 민주주의’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상승했고 미국과 포르투갈, 프랑스 위에 자리했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전 세계 국가 중 14%에 불과하고 세계 인구 8%만 누린다. IDEA도 우리나라를 97개국 중 ‘모든 민주주의적 속성이 높은 수준’을 보인 21개국 가운데 하나로 봤다.

그런데 ‘월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그 내용에서도 ‘월클’일까? 안타깝게도 우리 민주주의의 속살은 ‘정치적 양극화와 무능의 정치’다. 최근에는 분열과 양극화에 따른 ‘민주주의 자폭론’이 나올 정도다.

객관적인 현실과 사실을 파악할 때와 달리 이를 평가할 때는 지지 정당(또는 이념)에 따르는 게 양극화 현상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적 경쟁자의 정당성은 무시되고 상호 존중은 없으며 결국 ‘혐오와 부정의 민주주의’로 전락한다. 권력과 제도의 절제도 기대할 수 없다. 이 때 민주주의는 스스로 붕괴한다는 게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핵심 주장이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 원칙을 동의하고 지지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실제 작동방식과 그 결과(특히 경제적 성과)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능한 정치에 기대를 접고 변화의 절망에 빠지며 무당파(또는 중도층)로 움직인다. 정치적 양극화와 무능의 정치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국민적 지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양극화와 무능의 대한민국 정치는 교체(交替) 대상’이다. 다음 달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내년 3월 대선, 6월 지방선거가 교체의 출발점이자 분기점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 효과를 통제하는 것이다.

제도와 사람을 바꾸는 게 핵심이다. 갈등과 대립의 소통, 더 높은 차원의 통합이 가능한 ‘화쟁(和諍)과 능력의 민주주의’, 세계적으로 공통된 민주주의의 과제이자 2022년 우리 대선의 시대정신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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