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김인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국외대 총장)은 지난달 2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스스로가 페이스(pace)를 조절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김인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국외대 총장)은 지난달 2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스스로가 페이스(pace)를 조절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한국 대학이 처한 상황을 풀코스 마라톤 경주에 비유해보자. 한계를 맞이한 대학 재정, 갈수록 줄어가는 학령인구는 대학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이 모든 고통이 지속되는 시간을 버텨 ‘지속가능한 대학’이 되겠다는 목표는 생존의 마라톤을 완주하겠다는 의미다. 1등 대학이 되는 것만큼이나 이 엄중한 시기를 버틸 대학이 되는가도 중요하다.

김인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국외대 총장)은 마치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듯 대학의 현안을 짊어지고 달리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대학의 재정난, 규제 완화는 그가 이 마라톤에서 끝내 완주해야 할 목표다. 11번의 해외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험을 가졌다는 김인철 대교협 회장의 이번 마라톤도 완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지난달 26일 대교협에서 김인철 회장을 만나 대학 현안 해결을 위한 구상과 계획을 들어봤다. 김 회장은 공유와 협력, 소통을 고등교육기관이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방안이라 보고 있었다. 장거리 마라톤 코스에는 쉼터와 마실 물이 준비되듯 말이다. 대학이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는 자율성도 중요한 생존 요소라는 주장이다.

- 총학생회, 대학 노조, 정부 부처와 국회, 지자체, 주요 기업체 등과 다자간 협업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어떻게 실현되고 있나.
“지금도 그 입장은 변함이 없다. 대학 사회의 문제들은 단순하지 않다. 대규모 대학과 중소규모 대학, 수도권 대학과 지역소재 대학, 국공립 대학과 사립대, 종합대학과 특성화 대학 사이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책의 효과도 의도하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측면들이 결합돼 나타난다. 다자간 협업과 소통은 그래서 우리 고등교육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다자간 협업은 ‘소망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절차이기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모든 정책은 아무리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실행가능성이 높아야 채택돼 실현된다. 정책이 바람직한가를 소망성이라고 한다면, 정책의 효과는 소망성과 가능성을 곱한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 만약 90% 바람직한 정책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10%라면 그 정책의 효과성은 9%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학원생 실험실 안전과 관련해 산재보험 가입 문제가 대두되면서 대교협이 교육부와 대학 총학생회, 대학원생노동조합, 대학들의 의견을 모아 다자간 협의를 추진한 바 있다. 강사제도 등 민감한 사안에 있어서도 대교협이 다자간 협의를 추진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 정치이슈에 의해 교육이슈가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 교육부 추경안 심사도 한 예다. 남은 임기 동안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나.
“교육이슈는 사안의 중요성이나 시급성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입장에 민감한 정치적 손익계산에 의해 갑자기 의제로 등장하기도 하고, 다른 이슈에 의해 사장되기도 한다. 의제의 장에 진입을 못한 것이다. 대교협은 고등교육의 문제들을 진단하고,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중요한 교육이슈가 소외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의제(agenda)와 대안을 제시하고 또 공유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대학의 재정 실태다. 대학의 재정난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등록금 인상 문제는 이미 정치화 된 이슈 중 하나다. 등록금 자율책정권 확보를 통해 대학 재정 안정이 바람직한 일이라 하더라도,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학부모와 학생회 등이 반대하면 실행 가능성이 높지 않다. 법적으로 허용된 대학의 ‘등록금 자율 책정권’이 있지만, 정부가 걸어놓은 제제 고리에 의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등록금 절대 액을 인상한 대학은 국가장학금 2유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등교육재정이 악화되고 대학 교육의 질 개선과 경쟁력 제고에 어려움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 부처와 대교협, 지방자치단체, 대‧중‧소기업을 포함한 재계, 국회를 포함한 정계, 교수협의회, 대학노조, 학생회, 학부모 단체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대토론회라도 열어, 대학 재정 실태를 알리는 방법을 생각 중이다.”

- 교육이슈가 정치이슈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고등교육에 대한 ‘팩트 체크’를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해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일부 사립대의 비리나 부도덕으로 인해 전체 대학의 이미지가 훼손된 것이 사실이다. 교육 문제는 탈 정치성과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순수한 교육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학 사회도 운영상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강화하고, 자생력을 키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외부로부터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도덕성을 높이는 자정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대학 문제를 바라보는 정치 문화와 시민 인식이 서서히 개선될 것이라 믿는다.”

김인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국외대 총장) (사진=한명섭 기자)
김인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국외대 총장) (사진=한명섭 기자)

- 교육부의 지나친 감사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잇다. 고려대‧연세대와 같은 대형 대학이 감사 결과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교육부 감사는 처분 범위가 광범위하고, 처벌 수위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시정요구’나 ‘기관주의’로 처분할 사항이나, 고의성이 없는 사안인데도 개인을 징계하는 등 신분상 조치를 요구하거나, 대학 책임자나 교수진에 대해 수사의뢰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감사과정에서 활성화 해야 한다. 적극행정 면책제도는 공직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이나 규정 위반 등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는 게 확인되면 책임을 면제 또는 감경해주는 제도다. 대학 감사에서도 당사자의 공적이나 실적, 과거 포상 등을 감안해 징계 수위를 감경해주는 관례가 포괄적으로 적용되길 바란다. 감사를 통해 모범 사례를 더 많이 발굴해 격려하면 오히려 대학에 좋은 아이디어가 전파될 것이다. 대학이 평가나 감사 준비에 많은 행정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일부 부서의 경우 업무량의 3분의 1 이상을 평가와 감사 준비에 소진하는 등 행정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 최근 고등교육연구소에서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진단을 기관평가인증으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금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대학 간 공유와 협업, 다양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3주기 역량진단은 평가 권역 내 대학 사이에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선정되지 못한 대학은 곧바로 부실대학으로 낙인 찍힐 소지도 크다. 상대평가이기에 경쟁력 있는 대학이나 재정 건전성이 있는 대학도 탈락할 여지가 있다. 역량진단은 중소규모 대학이나 후발대학, 지방 중소도시 대학에 불리한 구조란 점도 주목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도시화가 덜 진전된 지역에 위치한 대학을 우선 지원해야 하지만 역량진단은 결국 지방대, 소규모 대학의 육성 취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지역의 소규모 대학은 가정형편 등 여러모로 어려운 학생들을 품어주고, 사회 진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보호 기능도 수행한다.

3주기 역량진단에 대학마다 막대한 행‧재정 노력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일단 기관평가인증을 받은 대학은 3주기 역량진단에서 재정지원 미수혜 대학으로 탈락되는 비율을 최소화해야 한다. 중대 비리나 분규, 재정 열악 문제로 도저히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대학을 제외하고 모든 대학에 혁신지원사업비를 지급하되, 일반경상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대학의 평가 부담을 완화하고, 경쟁력을 두루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 산업 변화와 감염병 유행과 같은 이유로 대학이 미래형 교육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K-에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나.
“AI, 빅데이터와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을 높이고, 관‧산‧학‧연의 협업과 소통을 더해야 한다. 또한 교육 내용과 방법 상 다양한 융합이 가능하도록 학문 분야 간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 간 공유와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 간 시설 공유나 공동학위, 대학 연합의 과정은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현재는 대학 간 학점교류, 교수 합동 강의, 공동 컨소시엄 방식과 같이 낮은 수준의 인적‧물적 교류 정도에 그치고 있다. 기업형 대학으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다. 등록금 의존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산학협력단의 연구사업 수주 규모를 확대하며 대학의 특성을 활용한 수익사업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외부재원의 비중을 총 교비예산의 40%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대학 재정 안정성이 확보될 것이다.”

- 대학 교육이 변하기 위해서는 법령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총장들의 목소리가 높다.
“대학은 규정에 입각해서만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규정이 없으면 창의적으로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 대학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학문적 창의성과 연구의 자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 규제는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면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대학의 책임이 아닌 잘못에 대해서도 대학에 각종 행‧재정 지원 상 불이익을 주면 곧바로 학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학설립운영규정’의 4대 요건 중 교지와 교사 요건은 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온라인 학습이 강조되고 공유경제를 권장하는 시대와 맞지 않다. 대학에서 전개하는 각종 수익사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비과세 면세 범위도 넓혀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정원 미달을 겪는 대학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모집정원 유보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정원 미달로 생긴 대학의 잉여 공간과 인력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공립특수학교, 대안교육기관, 직업훈련기관, 노인복지시설, 요양병원, 청소년수련시설, 창업보육센터, 공공도서관 등으로 활용하거나 지자체, 공공기관의 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현 정부가 임기 만료 1년 여를 앞두고 있다. 남은 기간 가장 힘 있게 추진돼야 할 고등교육 정책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대학의 재정 여건 개선이다. 국내 모든 대학의 현안은 재정난이다. 13년 간 지속된 등록금 동결 조치의 조속한 유연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등록금 인상을 2.5% 정도 한다고 볼 때, 등록금 동결이 12년 이어진 것은 총 예산의 3분의 1 가량의 재원이 부족한 상태가 지속됐다는 의미다. 내년이면 다시 32.5% 결손이 되고 매년 누적액까지 감안하면 감내하기 힘든 재정난이다. 현재 연간 1조7000억원 가량 대학 수입이 감소되는 셈이며, 2012년 이후 2019년까지 대학 결손 누적액은 약 8조9000억원이다. 첨단학과의 경우 예외적 등록금 인상 허용한다든지, 등록금 절대액이 낮은 대학은 학생 1인당 교육비 향상을 위해 일정 수준의 등록금 인상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법률상 허용된 3년 평균물가 인상율의 1.5배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등록금을 책정하도록 보장하면 된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조속한 법제화도 시급하다. 우리나라 대학의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할 과제다. 이 제도는 2004년 이후 10여 차례 국회의원 발의와 폐기를 거듭하고 있다. 바꿔 보면 그만큼 시대적 요구가 있어 왔던 사안이다. 이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상 마련된 기금의 집행경계를 허물어, 대학에도 혜택을 주도록 조정하는 방안과 같이 대학지원 특별회계를 마련 할 수 있을지 점검할 때다. 초·중등교육을 대상으로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누적 자금에 여유가 있다. 다만 바람직한 제안이라도 실행가능성이 어느 정도일지는 의문이다.”

김인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국외대 총장)과 최용섭 본지 발행인(오른쪽)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김인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국외대 총장)과 최용섭 본지 발행인(오른쪽)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김인철 회장은…
한국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를 취득했다.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기획조정처장과 대외부총장, 사이버한국외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 제10대 한국외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연임에 성공했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혁신지원위원장, 국가 교육개혁협의회 위원,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위원, 감사원 감사위원 등을 지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사립대학총장협의회 제21대 회장을 역임했다. 2020년 제25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대담= 최용섭 발행인 / 정리= 허지은 기자 / 사진= 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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