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뻔뻔해진다. 꼰대가 되지 말아라.”
말 한마디로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됐던 채현국 할배. 경남 양산에 있는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를 두고 있는 사학재단 효암학원의 채현국 이사장이 지난 2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채현국 선생은 생전에 이사장이면서도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그냥 ‘할배’라고 불러줄 것을 강요(?)했다. 그는 그렇게 스스럼없이 그저 그런 노인네를 자처했다. 8년 전쯤 한 강연에서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둬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고 했던 얘기가 전해지면서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25살에 죽으면서 장례는 75세에 치룬다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채 선생은 유독 책임감 없는 노인들을 봐주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 ‘꼰대’는 성장을 멈춘 사람이고, ‘어른’은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 말이다. 불과 몇 년 전 ‘젊은 꼰대’라는 표현을 두고도 ‘젊은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 다 정말 잘못 배우고 1등 해라, 1등 해라 하다 보니 그 꼴이 된거다’고 했다.

2014년인가 우연히 채 이사장의 인터뷰에 따라나섰다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선생의 명언과 어록을 직접 들으면서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엔 큰 울림이 남아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풍운아, 가두의 철학자, 맨발의 철학도, 자유인 등 선생을 지칭하는 수식어도 많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없이 산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후원자’로 전해지는 채 이사장은 한 때 세금을 많이 내는 것으로 세 손가락안에 들기도 했다. 그때도 그는 “세상에나, 주변에 나보다 부자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2~3위라니 도둑놈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시원하게 일갈했다.

정말 순박하고 털털한 외모의 ‘노인네’ 그 자체지만 세상에 전했던 메시지는 어른이자 현인이었다. 강연 자체도 부끄러워해 잘 나서지 않지만 아이들을 위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뛰어갔다.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했던 강연에서의 메시지들이 알려지면서 그는 그렇게 ‘이 시대의 어른’으로 불려졌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틀리다는 말도 없다. 다른 게 있을 뿐이다. 정답은 없고 해답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시대의 어른이 전한 메시지는 숭고하다. 여전히 세상의 울림으로 가득하다. 채 선생이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을 두고도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권리도 있지만 학생들은 공부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일방적으로 자기 욕구대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가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남긴 저서 ‘쓴 맛이 사는 맛’은 유독 젊은 세대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현재의 잘못된 교육에 일침을 가하고 있지만 현실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시대를 앞서가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하던 채 선생. 선생을 처음 만났을때가 산수(傘壽)에 들어섰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선생은 대뜸 그랬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 일인지 모른다”고.

따지고 보면 ‘젊은 꼰대’를 양산하는 현대 교육에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가르침을 없애보자고. 젊은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 두자고. 어쩌면 채 선생의 오랜 교육관과도 일맥상통한다.

말로만 서열화 타파, 상향 평준화 교육을 외치지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게 만드는지, 1등 졸업이 1등의 삶을 영위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경쟁을 왜 그렇게도 부추기는지. 이미 앞을 내다봤던 채 선생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다그쳤지만 공허함만 남는다.

생전에 채 선생의 강연 중 대중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던 두 가지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전해본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도 듣고 잊으세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기르고 더 생각해야 합니다. 본인만의 해답이 나오도록. 엉터리라도 좋아요. 틀린 생각이라도 좋으니까 끊임없이 본인만의 해답을 추구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식을 안다는 건 그것에 길들여 지는 거지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식을 자기 생각이라고 착각해요. 그런 착각이 계속되니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거나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힘이 약해지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은 의심과 거부, 저항, 이런 것에서 나오는 건데 인간은 비판보다 먼저 적응을 하기 마련이거든.”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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