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기획 실장
서울대 공무원에서 고등직업교육 전문가로
교육부 내 전문대 전담 부서 증설 필요
따뜻한 카리스마를 지닌 일벌레 행정가

이승주 한국전문대교육협의회 기획실 실장
이승주 한국전문대교육협의회 기획실 실장

[한국대학신문 신수용 기자] 사무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검은색 배선 테이프를 쥔채 구불구불한 전선을 일자로 가지런히 펴고 있는 흰머리가 성성한 한 남성. ‘저기…’. 한국전문대교육협의회 이승주 실장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승주 실장은 100여 곳의 전문대 총장들로 구성된 자율 협의체인 전문대교협의 예산집행 뿐만 아니라 각종 발전 전략을 세우는 기획가로 통한다. 스스로를 ‘수위 아저씨’라고 소개하는 그를 서울 중구 전문대교협에서 지난 13일 만났다.

이 실장은 협회에서 손꼽히는 원년 멤버다. 그는 일반대, 교육부, 대학협의체 등 30년간 ‘고등교육 분야’ 외길을 걸으면서 교육 발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과 장관에게 상도 받았다. 그런 그의 어린 시절도 남달랐을까. 충북 옥천에 있는 작은 마을 월전리에서 태어난 이 실장은 “가난한 동네에 있는 가장 가난한 집에서 컸다”면서 “한 칸짜리 방에서 일곱 식구가 잤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인지 농사 이야기에 손사래를 쳤다. 그는 “흙 묻은 장화 말고 구두 신고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면서 “지금도 농사는 안 짓고 싶다”고 학을 뗐다.

옥천고 졸업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 행정학을 전공으로 삼았다. 대학원도 대학행정과 교육학을 택하면서 한 우물만 팠다. 그가 처음 자리 잡은 고등교육계는 서울대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여덟. 이 실장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일컬어지는 학교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한체대 등 공립대 공무원으로 일하다 직원 12명이 전부였던 전문대교협에 들어갔다.

그렇게 30대 중반에 전문대교협의 신입 사원이 됐다. 이 실장은 입사 당시 8년 차 공무원이었고 타 대학의 회계팀 과장 자리 제안도 뿌리치고 공채 시험까지 치르며 협회에 들어갔다. 이 실장은 “사무, 경리 같은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게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아 일반직 전환을 위한 자격증까지 공부했다”며 “대학의 상급 기관인 협의체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실장은 전문대교협의 발전을 이끈 주역이다. 그는 뼈대를 세워 기틀을 잡는 ‘기획자’로 학칙 등 전문대 학사운영 전반을 다루는 ‘전문대 학사편람’ 개정판도 이 실장의 작품이다. 전문대교협에서 지금도 사용하는 업무 서식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다. 전문대 명칭을 ‘전문대학교’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학교 이름에 ‘교’를 못 쓰게 했다”며 “전문대 총장은 학교장이나 학장으로 부르면서 무시했었다”고 전문대 차별 사례를 털어놨다.

전문대교협은 2002년까지 여의도에 있었다. 직원 수도 현재와 비교해 3분의 1도 안됐고 건물과 사무 공간도 훨씬 작았다. 그래서 여의도 시절을 물어봤다. 이 실장은 “여의도 생활이 열악했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며 “지금은 전반적으로 업무도 늘어나고 직원 수도 많아져 다 모이기 어려워 아쉽다”고 회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당시 상사였던 이승근 정화예대 부총장을 꼽았다. 그는 “내가 야근을 하면 당신 일이 없어도 한사코 아침까지 사무실에서 같이 있어 줬다”고 기억했다.

이 실장을 교육부에선 ‘철인’이라 부른다. 전문대교협에서 교육부로 처음 파견했던 직원이 이 실장이다. 그는 점심시간만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부서 일을 했다. 오전엔 입시, 점심엔 학사, 저녁엔 교무 업무를 모두 혼자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입학팀 등 여럿이 하는 부서 차원의 업무를 혼자 하면서 첫차로 출근해 막차로 퇴근했다. 이 실장은 교육부 내 전문대 부서 추가개설 등 관련 전문가 증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육부 내 일반대 담당 부서는 14곳인데 전문대는 2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담당 부서가 많을수록 순환 근무를 하면서 업무를 접할 기회가 많은데 전문대 담당 부서는 최근까지 한 개였다”며 “잠깐 있다 떠나는 영역으로 인식되면 전문성도 키워지기 어렵고 담당 공무원들이 전문대 현실에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러자 ‘아내와의 여행’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60세가 되면 아내랑 둘이 여행을 하기로 약속했다”며 “아내는 ‘내가 또 일할 것 같다’며 안 믿는 눈치지만 꼭 지킬 생각”이라고 했다. 이 실장은 매년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미역국을 직접 끊인다. 그는 “결혼식 날을 우리 둘의 생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애처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 실장은 또 65년생 모임인 ‘좋은 친구들’의 반장이다. 교육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모인 부부동반 모임이다. 그는 “어릴 때 몸이 아파 학교에 늦게 들어가 동갑내기 학급 친구가 없다”며 “평생 마음에 묵직하게 얹혀있던 일이라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승주 실장은 “여생은 고등직업교육 발전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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