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청년인 나르시스는 양떼를 몰고 간 어느 호숫가에서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손을 집어 넣으면 일어나는 파문에 흔들리다 잔잔해지면 나타나는 자신의 얼굴. 나르시스는 자신의 얼굴인 줄 미처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물 속에 있는 모습을 잡으려 따라가다 나르시스는 숨을 거두게 됐고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수선화의 학명인 나르키수스(Narcissus)의 유래가 됐다. 그래서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 자존심이다.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과도 일맥상통한다.

청년의 이름을 따서 만든 꽃 수선화. 노동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노해 시인은 청년을 곧잘 수선화에 비유했다. 당시에는 군사독재 시절로 박해를 받으며 자유를 부르짖던 청년 세대여서 대부분 투쟁으로 묘사했지만 속뜻은 순수하고 곧은 사랑을 담고 있다. 청년은 자기 자신을 무한하게 사랑하고 무엇을 해도 되는 세대다.

하지만 요즘 1929세대 청년들의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로 인해 입학식, 졸업식도 취소되고 친구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혼자 있게 되니 더욱 그럴 듯 싶다. 누군가를 만나고 얘기하고 아이디어도 얻고 혹은 위로도 받고 격려해 주며 그렇게 왁자지껄 지내야 할 세대가 갑작스럽게 세상과 단절이 됐으니 말이다. 고의적 자해까지 늘고 있다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생이라면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5월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한창 들떠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언감생심이다. 대학생들도 스스로 마음을 다져보지만 흥이 날만한 곳이 없다. 졸업생들도 취업을 준비하지만 대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이 공채 보다는 수시 채용으로 바꾸면서 청년들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청년들 사이에서 정규직 취업은 아예 먼 나라 이야기가 되니 요즘은 ‘갑통알’, ‘알부자’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라고 한다. 전자는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를 해야겠다는 뜻이고 후자는 ‘알바로 부족한 자금’을 채우는 학생이란다. 씁쓸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스스로 취업을 하기 위해 졸업을 유예하던 NG족(No Graduation)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위안삼고 있다.

청년은 국가로 보면 허리세대다. 국가의 운명은 늘 청년세대에 맞춰져 있다. 국가가 부패하면 청년들이 들고 일어나 해결하고 청년들이 어려우면 그 세대를 위한 정책이 국가로 부터 나오면서 돌아가게 된다.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안되듯 청년세대에 문제가 생기면 늘 사회 전체가 나서 위로했다. 지난 17일 청년들을 위한 ‘청년희망콘서트’가 열렸다. 물론 오프라인에서 시원하게 열렸으면 좋으련만 이번에도 비대면이었다. 60개 국가에 지부를 둔 세계적인 청년 활동 단체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이 주최한 콘서트는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사회를 봤던 조세호는 청년들을 두고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기에 희망콘서트로 응원을 받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고, 셰프 이연복은 “청년은 불이다. 불이 없으면 요리사가 요리를 못하듯 청년이 없으면 지구에 미래는 없다”고 말해 큰 환호성을 자아냈다. 가수 이소정은 같은 세대인 청년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응원하기도 했다.

점수가 너희들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주입식 교육으로 경쟁에 시달리게 만들었다면 청년들의 일자리 만큼은 한결 수월하게 해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어른 세대가 반성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급변하는 환경에도 국가는 제때 맞춰 일자리 창출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역할이지만 그저 변명에 급급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나름 각 기업들이 ESG경영을 필수 요소로 생각하면서 사회적 가치 창출에 고민하고 있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기업이 고민하고 국가가 돕는다면 청년 일자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는 시점이고 초기단계여서 조심스럽지만 잘만 돌아간다면 청년들의 실업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요즘 국가도 청년세대에 맞춘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전체적인 생산성을 높이기 위함은 물론이고 세대별 괴리감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두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경쟁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하면서도 실패하면 실패자로 낙인찍는 그런 과오는 접고 단순히 시행착오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청년들은 무엇이든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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