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전 교총 회장)

우리 집 거실의 창틀에 인조석으로 된 하얀 산비둘기 한 마리가 놓여 있다. 어찌나 실물을 닮았는지 “웬 비둘기가 집안에 들어와 있느냐”고 놀란 내방객도 있을 정도다. 희한한 것은 그 앞을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이 더러 있건만 한 마리도 유리창에 부딪히거나 기웃거리는 일이 없다. 신라 진흥왕 때 황룡사 벽에 화가 솔거가 노송을 그려놨더니 까마귀, 제비, 참새들이 그 그림을 실물로 착각하고 날아들다가 더러는 세게 부딪쳐 땅에 떨어졌다 하거늘 요즘 새들은 매우 영악한가 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제일 처음에 배운 동요가 “뽀뽀뽀, 하도(ハト, 비둘기) 뽀뽀, 콩 먹고 싶으냐, 엣다 줄게, 다같이 사이좋게 노자꾸나”이었다. 사랑과 평화가 넘친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어려서부터 비둘기를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가슴에 품어왔다.

오죽하면 우리나라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때 비둘기 3000마리를 세계 평화를 기원하면서 날려 보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胡锦涛) 중국 주석에게 도자기 비둘기 한 쌍을 선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월남전에 관여하면서 1965년 3월 제일 먼저 파병한 부대가 비둘기 부대다. 의무, 공병, 태권도교관단으로 구성된 평화지향의 비전투부대다. 부대표지(마크)에도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나르는 비둘기가 들어 있다.

이 모습은 약 4300년 전 노아의 방주 사건에서 유래한다. 그때부터 그런 모습의 비둘기는 소원의 성취, 평화의 회복을 염원하는 상징으로 애용되며 오늘에 이르렀다. 고대 희랍(希臘, 그리스)에서 말하는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가 로마에서는 라틴어로 비너스(Venus)로 일컬어졌는데 티 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신을 비둘기로 상징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동안 성령이 비둘기의 형체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니 얼마나 존귀한 모습의 비둘기인가.

지난날 구라파(歐羅巴, 유럽) 여행 시 광장이나 동상 앞에서 모이를 받아먹는 비둘기들을 보면 나도 행복했다.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일생일대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마침 먹이를 찾아 서성거리는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났다. 먹다 남은 과자부스러기를 뿌려줬다. 억! 한순간에 어디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십여 마리가 몰려들었다.

그러더니 자웅을 겨룰만한 몸집의 두 마리가 갑자기 사투를 벌였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목덜미의 깃털을 물고 집단 밖으로 밀고 나가더니 날개를 펴서 상대방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젊은이가 격노한 끝에 상대방의 따귀를 힘껏 때리는 소리와 똑같았다. 생전 상상하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맞은 비둘기보다도 우리 내외가 받은 충격과 실망이 더욱 컸다.

그 후부터는 동네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평화, 사랑, 아름다움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속에 있던 비둘기는 ‘Dove(멧비둘기)’였는데 이제 보니 그건 허상이었고 내 눈앞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토종 싸움닭 같은 ‘Pigeon(닭둘기)’이었던 것이다. 감성적 인식과 현실적 인식의 괴리였다.

그 후 나는 내 자식들과 손주들을 만날 때마다 개별적으로 비둘기에 대한 인식내용을 조사했다. 뜻밖에도 하나같이 부정직인 반응이었다. 더럽고, 비위생적이며, 해롭고, 전투적이며 공격적인 해조(害鳥)라는 것이다. 진균류 질병을 옮기고 건물을 부식시키며 날아가면서 균을 흘린다는 것이다. 비둘기에 대한 이러한 이성적 인식과 부정적 반응은 X세대와 MZ세대에게는 거의 보편화돼있는 것 같다. 영미 각국에서도 이미 반(反) 비둘기적 정책이 채택되는 과정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부가 2009년 6월부터 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한 바 있으니 분명 해조라 아니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요즘엔 비둘기 퇴치와 배설물을 제거하고 소독하는 전문업체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반 비둘기적 추세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최근 통일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화’란 단어를 보고 생각나는 단어가 무어냐는 질문에 ‘통일’이라는 대답이 9.9%인데 비해 ‘비둘기’라는 대답이 13%로서 최고빈도라는 결과가 있다. 아직도 나처럼 친 비둘기적인 정서적 인식을 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이뿐만 아니라 베트남전쟁(1960~1975년) 때에는 미국 정치권에 매파(Hawks)와 비둘기파(Doves)가 대립하고 있었다. 매파는 전쟁의 확대를 주장하는 강경파이며 비둘기파는 역시 온건한 평화주의자들이었다. 우리 역사 속에도 주화파와 척화파가 있었다.

이러한 구분법은 오늘날의 재정정책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재정 긴축과 재정안정주의자를 매파라 한다면 시장친화적인 성장우선주의자는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그러니 비둘기에 대한 감성적 인식이 근 4000년 이상 보편화돼왔건만 21세기에 들어와서 이성적 인식으로 전환되면서 세대 차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최근에 목격한 지극히 비평화적인 비둘기 폭행 사건을 계기로 우리 라떼 세대의 감성적 인식에서 벗어나 X세대와 MZ세대의 이성적 인식유형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그런데 세대 차에 따르는 인식의 차이는 비단 비둘기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세상만사가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집의 인조석 흰 비둘기는 오늘도 햇병아리와 함께 거실 창가에 여전히 건재하다.

※ ‘살며 생각하며’는 대한민국 저명인사의 인생 스토리와 철학, 경험담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살며 생각하며’에는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전 교총 회장)이 함께 합니다.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와 미국 존스 홉킨스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처장, 사회과학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았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건국대 총장, 호남대 총장, 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연세대 명예교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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