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하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

1992년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옆에 있는 프린스턴대를 자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아름다운 캠퍼스와 미국 최고의 학부를 자랑하는 프린스턴은 중세풍의 석조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고색창연한 대학이다. 아인스타인, 괴델, 존 내쉬를 비롯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 대학은 우리나라 관점에서는 지방대학에 해당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인구 천만이 상회하는 대도시 뉴욕에서 1시간 30분이나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에 그나마도 대학 주변에는 변변한 고층건물 하나 없는 한적한 이 도시에 있는 이 대학이 어떻게 그렇게 유명한 세계적인 대학이 될 수 있었을까?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사람들마다 그 원인을 분석하겠지만, 나는 이 대학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잠재력이 우수한 교수들에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대학교수인 나를 바라볼 때, 스스로 부끄러운 말이지만 대학은 교수가 심장부에 해당한다는 표현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 프린스턴은 거장들에게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여드는 학교이다. 무엇보다 이 때문에 프린스턴은 명문이라고 불리운다. 거장들에게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입학경쟁률은 당연이 치열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학교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프린스턴은 어떻게 하여 거장들이 모이는 학교가 될 수 있었던가?

그것은 세계 2차 대전 와중에 나찌 독일에서 피난 온 유태계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을 프린스턴에서 전격적으로 영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시대를 영도한 위대한 학자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프린스턴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들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엄청난 기부금을 확보하였다. 최고의 교수가 있고, 최고의 시설과 투자가 이루어지는 프린스턴대가 뉴욕에서 1시간 30분 떨어져 있다는 것이 전혀 핸디캡이 되지 않았다. 시끄러운 대도시보다는 연구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프린스턴대가 특이한 점은 명문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점에서 다른 대학과 차별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대학교육의 결과로 주어지는 반대급부로 다가오는 소위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법학대학원, 의과대학원, 그리고 경영대학원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엄청난 재원으로 세계최고의 법학, 의학, 경영학을 만들 수 있지만, 프린스턴은 그 길을 포기하였다. 대신에 프린스턴은 순수학문에 올인하였다. 수학, 철학과 같은 순수학문에서 미국과 세계를 영도하는 대학이 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며, 프린스턴의 순수학문은 세계의 최고봉에 도달하고 있다. 프린스턴의 자랑거리인 파이어스톤 라이브러리는 매우 독특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것은 라이브러리 내부에 수백 개의 캐럴이라는 작은 연구실을 설치하고 있는데 이것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제일 먼저 학부 4학년에게 준다는 점이다. 박사과정도 석사과정도 있는 대학에서 학부 4학년에 그러한 연구 환경을 제공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프린스턴에서 졸업하기 위해서 제출하는 졸업논문(Senior Thesis)은 매우 엄격하며, 그 논문은 거장들의 지도아래서 정성스럽게 작성되는 매우 우수한 연구 성과물들로 유명하다. 모든 대학들이 학부를 취업준비 혹은 대학원 준비과정으로 여길 때 프린스턴은 학부를 연구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최고의 명문이라고 자부하는 하버드나 예일도 학부 랭킹만큼은 프린스턴에게 늘 그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의 대학이 전문화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한국의 대학들이 매우 특별한 대학들로 자신의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에 대하여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한국의 대학들은 작은 모든 물건을 진열한 수퍼마켓이 아니라 각기 전문화되고 특성화 된 매우 특별한 교육 서비스의 제공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육은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백년대계이며, 천년을 바라보아야 하는 민족의 과제이다. 대학의 운명을 대학에 맡기되 그 전문화와 특성화는 정부에서 보다 더 강력하게 유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불량식품이 아니라 불량인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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