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시간이 조금 늦춰질 뿐 달성해야 할 목표는 이뤄야 한다. 더구나 대통령 임기 5년의 단임제 국가에서는 정책 목표를 이룰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국무위원이라면 시간은 더욱 짧아지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게 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018년 10월 공식 취임하면서 첫 여성 부총리이자 23년 만에 나온 여성 교육부 장관으로 야심차게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최장수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 최장수 교육부 장관이 된 유 부총리 자신도 현재까지 가장 큰 성과로 꼽는 것은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와 고교 무상교육이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렇다면 고등교육정책은 어떨까.

유 부총리가 취임사에서 언급한 교육부의 초·중등교육 권한을 교육청과 학교로 이양하고 교육부는 고등-평생-직업교육을 중심으로 기능을 개편하겠다는 계획은 어찌된 일일까. 고등교육은 그렇게 아픈 손가락으로만 남아있어선 안된다.

학령인구 감소와 13년간 동결된 등록금으로 인한 재정악화로 대학 총장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총장들이 내놓은 대학 자율화, 전폭적인 재정지원 요구, 규제 완화 등 당장 버티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들이 많지만 허공의 메아리로만 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3주기 역량진단 평가로 인한 성적표가 나오지 않아 대학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일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대학총장 세미나는 엄중하고 근엄했으며 진지했다고 한다. 132개 대학 총장들이 모여 ‘낭떠러지’의 표현을 했을 정도니 상황이 심각하다. ‘삐~’ 소리만 나지 않았지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버티고 있는 환자와도 별다를바 없어 보인다. 서울 수도권이라고 마냥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거운 것이 현실이다.

세미나에서 총장들의 의지는 분명했다. 내년도 대학혁신지원사업비 확대, 고등교육지원특별회계법ㆍ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3주기 대학진단평가의 완전 일반지원사업비로 전환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지방대학의 총장들 목소리는 더욱 애절했다. 늘 있어왔던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지방사립대에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인철 대교협 회장은 유은혜 부총리와 나눈 이야기를 전하며 긍정적인 신호도 보냈다. 교육부에 ‘교육회복위원회’를 설치해 세심한 논의를 이어가자고 했다.

언제까지 코로나19 상황을 핑계로 교육격차에 대한 불균형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해 점차 환경적인 상황은 나아지고 있고 2학기 전면 대면 수업을 위해 교육부가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낙인찍는 일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래봐야 숨통을 조금 트여주는 일이다.

당장을 버텨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도 가능한 법이다. 과거없는 미래는 없는 것처럼 현재가 중요하다. 산넘어 산이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 맞부딪힌 산은 넘고 봐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와 사회변화에 대응해 대학 간 공유·동반 성장을 위한 고등교육 생태계 구축을 위해 끌어주고 밀어주며 가는 대학들에 교육부의 열린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등교육이 더 이상 아픈 손가락이 아님을 인식시켜 줘야 한다.

이제는 전열을 가다듬고 악조건을 넘어 미래교육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결국 교육 역량을 높이는 것은 재정 문제로 직결된다. 유 부총리의 남은 임기는 고등-평생-직업교육을 중심으로 기능을 획기적으로 재편하면서 고등교육 재정 확충을 위한 법제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순간을 놓치게 되면 전체를 잃고 패배하게 된다. 중수 이상의 바둑을 두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라고 한다.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대사이기도 하다. 지금 순간을 놓치면 결국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갈지 모른다. 한발짝만 물러나도 낭떠러지라는 총장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지금 이 순간, ‘마법’이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