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단체들, 진보‧보수 관계없이 ‘고교학점제 준비 부족’ 지적
지자체 단위 고교학점제 도입 준비는 꾸준히 이어져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월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 = 교육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월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 = 교육부)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관련 대선공약인 고교학점제에 대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들은 고교학점제의 2025년 전면도입을 미뤄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과 상반되게 고교학점제 준비는 지자체 단위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현장의 온도 차가 어떻게 좁혀질지 미지수인 상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진로에 따라 자유롭게 과목을 골라 듣고 누적 학점을 채우면 졸업할 수 있게 만든 제도다. 작년부터 마이스터고에 도입됐으며 내년부터 일반고와 특성화고에 부분에서 시행된다.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는 2018년 105곳으로 시작해 올해 1457곳으로 늘어났다. 

■고교학점제 시행하기에는 준비 미흡, 도농격차 벌어질 가능성 높아 = 교원단체들은 취지는 좋으나 현실적으로 현장에서 고교학점제가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교원단체 중 하나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고등학교 교원 10명 중 7명은 2025년 전면 도입을 예고한 ‘고교학점제 도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가 학교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논의된 데다 여건 역시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교총은 지난달 16일부터 29일까지 전국 고교 교원 22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교학점제에 대한 고교 교원 2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교 교원의 72.3%가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반대했다.

△학교현장의 제도 이해 및 제반 여건 미흡(38.5%) △학생 선택·자기주도성 강조가 교육의 결과를 온전히 담보할 수 없음(35.3%) 등이 반대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직업계고 교원 중 45.6%는 고교 현장의 ‘여건 미흡’을 반대의 이유로 들었다.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과목선택이 확대될 경우, 교사 수급 불가가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고등학교 교원 91.2%가 ‘그렇다’고 답했다.

교원들은 고교학점제가 ‘과목선택형’으로만 추진돼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내놨다. 고교학점제가 진로별 교육과정인 ‘과정제시형’과 ‘과목선택형’ 중 어떤 교육과정과 연동되는 것이 더 적절하냐는 질문에 과정제시형이 47.7%, 과목선택형이 39.6%로 나왔다. 과제제시형이 진로별 교육과정에 더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과정제시형은 학생들의 진로를 일정 정도 세분화하고 이에 따른 교과목 체계를 구성해 과정으로 제시하면 학생들이 이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과목선택형은 계열이나 과정에 대한 구분 없이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ㆍ흥미ㆍ적성에 따라 개별 과목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학생 개인별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이다.

‘고교학점제 도입과 자사고, 외고 폐지가 학교 서열화를 극복하는 효과가 있겠느냐’는 항목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45.5%로 집계돼 33.8%의 ‘그렇다’는 응답에 비해 많았다. 특히 고교학점제를 도입해도 명문학교 선호 현상이 증가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도 ‘그렇다’는 답변이 78.4%로 압도적이었다.

‘고교학점제가 어느 학력계층에 있는 학생에게 가장 불리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하위권 학생’(47.2%)이라는 응답이 나왔고, ‘중위권 학생’이라는 응답은 25.0%, ‘상위권 학생’이라는 응답은 13.1%로 나타났다.

교총 관계자는 “준비되지 않은 고교학점제 졸속 도입은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며 “준비가 부족한 고교학점제는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교육 격차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전면 도입 시기를 2025년으로 확정하고 과목선택형만 추구하는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게 되면 학교가 몰려있는 도시와 상대적으로 학교가 적은 농촌 지역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농촌 학교 사이의 격차를 해소할 방안도 현재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각 지자체가 에듀테크를 활용한 교육혁신 시범사업과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거점센터를 마련하는 등 ‘미래형 고등학교’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원격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보 성향의 교수단체인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은 지난달 22일 성명을 통해 “인터넷 강의와 같은 원격수업 확대를 불러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정규교원 채용 대신 고용과 신분이 불안정한 시간강사를 고교에서 양산하거나 단기연수를 거친 산업체 인력을 강사로 대폭 활용하는 것은 채용 당사자들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잠재적 교사인력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진 = 전교조)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전교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 = 전교조)

■대입제도 개선 없이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하다는 의견도 줄이어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교학점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전국 일반고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분회장과 담당자 548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5.8%가 “재검토 및 문제점 개선이 필요하다”에 응답했고 도입 반대도 26.9%로 집계됐다.

71.3%의 설문 응답자가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려면 고교학점제와 엇박자인 대입제도 개편방안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대입을 위한 교육 환경이 해소되지 않고 경쟁 위주의 교육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고교학점제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병모 서울 영일고 교사는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과목이 입시에 유리할지 고려해서 선택한다”고 꼬집었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은 “수능은 폐지하거나 자격고사화하고 성취평가제를 모든 과목으로 확대해야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 발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입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고교학점제 시행은 지역별, 학교별, 학생별 격차를 키워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학교 현장에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춘 교사 수급이 준비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전교조는 성명을 통해 “한 교사가 별다른 지원 없이 다교과(과목)를 담당하거나 교사 희망에 반해 전공과 관련 없는 과목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학생들의 과목 선택에 따라 학생 상담 및 생활지도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2024년 3월 개교를 목표로하는 세종 캠퍼스 고등학교 위치도 (사진 = 세종교육청)
2024년 3월 개교를 목표로하는 세종 캠퍼스 고등학교 위치도 (사진 = 세종교육청)

■2025년 준비하는 정부와 지자체들의 움직임은  ‘현재진행형’= 교원단체들의 반대는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들의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 준비는 진행 중이다.

부산시의 경우는 교과 특성 및 학생 활동에 맞는 창의적 교실 학교 공간 조성을 위해 교과 교실 구축비와 기자재 구입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 중이다. 지난 6월, 26개교에 대한 학교공간 조성 사업을 완료했으며 2024년까지 나머지 일반고 69개교에 대해서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세종시는 고교학점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위해 ‘캠퍼스 고등학교(가칭)’를 설립한다. ‘캠퍼스 고교’는 인문·자연·예술 3개 분야의 중점 교육과정과 학생이 적성과 진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강의를 다양하게 운영한다.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전국 최초로 설립 단계부터 고교학점제에 적합한 공간 구성 및 교과 특성화 과정을 갖추게 된다. 

590억 원을 들여 세종시 신도심 6-3생활권에 50학급, 학생 1200명 규모로 2024년 3월 개교한다. 세종시는 캠퍼스 고교가 고교학점제 전면도입 시점에 맞춰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실현하는데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통을 강조하는 지자체도 있다. 충북은 고교학점제 성공 안착을 위해 학교운영위원, 학부모, 도의원, 교원단체 등 충북교육을 함께 이끌어가는 다양한 교육주체와 소통 간담회를 개최했다. 또한 지자체·대학·지역혁신플랫폼(RIS사업단)·연구기관·기업 등의 지역사회 기관과 소통과 협업을 계속해서 추진 중이다.

고교학점제 도입을 대비해 지역 대학과 함께 교사대상 역량 강화 연수를 시행한 지자체도 있다. 전북교육청은 학생들의 과목선택 수요를 반영한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교사대상 진로 선택 교과 및 교양 교과목 지도 역량 강화 연수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전주대 교고육연수원, 전북대 산학협력지원단이 함께 참여해 연수과정을 공동 설계하고 도내 중‧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과정별 연수를 진행한다. 대학과 협력해 현직 교사들의 재교육 진행은 교육부가 내놓은 ‘교원양성체제 발전방안’을 통해서 진행될 예정이다.

또 교육부는 2025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위해 2028학년도 수능의 서술형과 논술형 문항을 도입해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입개편안은 미정이다. 2024년에 공개할 방침으로 알려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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