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실 숙명여대 제17대 총장이 지난 9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최장기 총장 기록을 세웠던 전임 이경숙 총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학교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 경제위기를 맞아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지에 대한 우려도 한 짐이다. 젊은 총장으로서의 기대도 한몸에 받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은 한 총장에게 숙명여대 발전의 밑그림에 대해 물었다.



취임 100일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교수생활 20년보다 총장이 된 후 100일 동안 만난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학교 구성원들은 물론 외부 분들과 만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요,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학교 내부의 요구사항은 물론, 외부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가닥이 잡혔습니다. 교수님들은 연구 여건을 개선해 달라, 지원을 더 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직원들은 처우나 인사문제에 대한 건의를 많이 합니다. 학생들은 수업의 질을 높여 달라, 취업 지원을 늘리고 동아리 지원도 많이 해 달라고 요구했지요. 그런데 이 문제들은 하나하나 풀기 어려운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유기적인 것들이거든요. 실의 매듭 하나를 풀면 모두 다 풀리는 것 같은 이치죠. 그래서 각 구성원이 요구하는 것도 정리가 됐고, 구체적인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며 풀어 나갈 예정입니다. 교무·재정·시설·학생·행정· 발전 등 6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과제와 추진방향을 도출하기 위해 매주 화요일 조찬 회의를 열고 있어요.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실제적인 방향도 잡았습니다.


갈등을 풀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요.

두 명 이상의 조직이면 항상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죠. 갈등은 조직을 어렵게 만들고, 발목을 잡는다고 다들 부정적으로 보시는데요, 저는 이런 갈등과 비판 속에서 조직이 성장한다고 봅니다. 집행부나 학생들이 부정적으로 비판하면 저는 끝까지 대화를 합니다. 갈등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솔직함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예요. 무엇보다 상대방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경우 솔직히 시인하고,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 상대방의 이해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총장이 되자마자 숙명여대 학보사와 갈등이 있었는데 관계자들과 만나서 솔직하게 토론했어요. 나를 포장하고 변명하려면 미워지고 갈등이 생기잖아요. 적립금을 가지고 뭐라 하길래 사실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이 나라면 어떻게 하겠니, 이건 내가 해 줄 수 있지만, 이건 못해. 그러니까 너희들이 날 이해해 줘야 돼”라고요. 비판적이고 비협조적이었던 교수님들도 지금은 다들 도와주고 있습니다. 총장이 된 후 받은 스트레스가 일을 풀어 가면서 모두 풀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100일이 정말 행복했어요.


‘생각하는 힘을 지닌 창조적 인재’를 키우겠다 하셨는데요.

정부든 군대든 기업이든 학교든 본질적으로 잘해야 하는 일을 잘하면 걱정이 없어지죠. 그렇지 못하면 큰 실수가 나는 거고요. 휴머니티를 잃었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돈은 벌었고 살기 좋아졌는데 공허해지고, 허탈해지고, 불안하고 박탈감을 느끼게 되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대학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서당에서 훈장님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지금 석학들이 가르치는 교육을 비교해 보세요. 대학이 상위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본질적인 교양교육에 대해 간과했다는 거죠. 대학이 기술은 잘 가르쳐서 훨훨 날아다닐지 몰라도, 그 기술을 제대로 쓰는 바탕을 가르치지 않아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인간, 창의적인 인간, 총체적 판단력을 지닌 인간을 키우겠다고 선었했어요. 그랬더니 “신세대 젊은 총장이라 자유롭고 진보적일 줄 알았는데 독특한 교육관을 지니고 있다”고 다들 놀라시더군요. 물론 대학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의 수월성을 무시한다거나, 고급 인력의 전문적인 지식을 소홀히 하자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기본에 충실한 인간을 키우자는 거예요. 생각하는 힘을 키워 주는 새로운 차원의 인문학이 필요한 때입니다.


학문 사이의 경계도 차츰 없어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실용교육은 전공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프랑스어를 배운 학생이 프랑스대사관에서 일을 했지만 요즘은 식품영양학과 출신 학생도 열심히 하면 갈 수 있죠. 의학 전문기자라든가, 패션 전문기자 등등 신문방송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기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전공이란 사회구조와 함께 바뀐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지금은 융합의 시대거든요. ‘레드닷 어워드’라는 상이 있는데요, 디자인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3대 디자인 대회입니다. 여기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우리 대학 이주은 학생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에요. 산업디자인이 부전공이고요. 이번에 상을 받은 작품이 지퍼를 이용해 옷의 길이를 조절하는 제품인데요, 디자인을 공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전화기는 목소리만 듣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누가 통화만 하려고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나요. 카메라·MP3플레이어 등 전통적인 통화 기능보다 오히려 부가 기능의 활용도가 높잖아요.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특정한 전공에만 매달리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대학마다 글로벌화를 내세우고 있는데요.

종래의 대학들이 추진하는 글로벌 프로그램은 몇 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하거나 교환학생을 몇몇 나라에 보내는 학교 차원의 가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저희는 그거 안 하겠다는 거예요. 200개 대학과 하면 뭐 하나요. 10개 대학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좋은 거잖아요. 이런 정책은 생각하는 힘을 지닌 창조적 인재와도 닿아 있습니다. 다름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지닌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피부가 달라도 전통과 문화를 인정할 줄 아는 글로벌 인재를 뜻하는 겁니다. 앞으로 세계 모든 나라가 아프리카 오지에 있어도 파트너 관계가 될 수 있어요. 이런 점에서 우린 숫자에 연연하지 않을 거예요. “숙대는 자매결연 한 나라가 얼마 없네”라고 지적해도 우린 “노 프라블럼”입니다. 전공대 전공 간의 자매결연을 해 실용적으로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대학하고만 하는 게 아니라 국제기구나 국제 정부의 인턴 프로그램을 늘려 갈 겁니다. 현재 숙명여대는 뉴욕 주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해외여행이나 단순 유학이 아니라 뉴욕 주정부에서 실제 인턴으로 일하고 배우는 거죠. 미국 플로리다대, 펜실베이니아대와 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디즈니랜드에서 인턴으로 근무합니다. 이런 실용적인 프로그램을 확대할 겁니다.


다른 대학처럼 이번에 등록금을 동결하셨는데요.

재정 문제는 모든 학교의 가장 민감한 사항입니다. 현안의 해결책은 돈이죠. 우선은 불필요한 것, 습관적으로 낭비하던 것을 검토하고 과감히 축소해 재정비할 겁니다. 그렇지만 위기 때 투자를 더 해 놓으면 나중에 효과를 더 크게 보지요. 저는 가정 경제와 조직의 경제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살림이 어려워진다고 밥을 굶길 수 있나요, 아니면 학교를 안 보낼 수가 있나요. 해야 할 것들은 더 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지금 대학생들은 중학교 때 IMF를 겪었던 애들이에요. 까뭇까뭇 철이 들 때 가정과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들이 경제위기 때문에 또 어려워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 참 가엾잖아요. 그러니까 힘들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투자는 최대로 하고 복지도 최우선시하려고 합니다. 다만 대학은 줄여야죠. 어른인 대학이 줄이는 동시에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게 지혜로운 거라고 봐요. 사립대는 등록금 의존율이 상당히 높잖아요. 등록금 동결은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안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지요. 학교 경영에서는 그 자체가 고통이지만 고통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해 이번에 장학금을 20억원가량 늘렸습니다.


숙명여대는 그동안 S리더십을 강조했는데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게 있으면 더 강화하거나 수정하고 변화하면서 진화해야 합니다. 새마을 운동은 그 당시 사회에 맞춰 새벽종 운동을 했잖아요. 그렇지만 지금은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이제 S리더십도 진화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래서 특정 학과나 전공보다는 전 분야가 함께 시너지를 내는 보편적인 발전 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S리더십을 보다 심화하는 방향이 될 겁니다. 통합형 전문인 양성에 보다 중점을 두고 바꿀 생각인데요, “숙명여대 학생들은 뭔가 다르다”는 말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대학의 차별화 방향이기도 하고요. 자신과 남을 동시에 돌아보는 ‘행복한 지식인’을 양성하는 게 목표예요. 교수와 학생들이 일대 일의 관계로 인격과 지성을 교류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학생 한 명 한 명을 품격 있게 성장하게 만들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한영실 총장은...

1984년 숙명여대 강사로 출발, 1985∼1997년 부경대 식품생명과학과 조교수·부교수·교수를 지냈다. 1991년 독일 본대 식품공학연구소 객원연구원, 1994·1995·1997년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1997년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부교수로 부임한 이후 산학협력단장·사무처장·교무처장 등 교내 주요 보직을 맡아 왔다. 1999년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를 거쳐 1999년 숙명여대 전통음식연구원장, 2002년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KBS TV ‘비타민’에 출연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저서로는 <음식이 보약이다>(1998)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음식상식 백가지>(1999)를 비롯, <한국전통음식>(2000) <쉽게 찾는 칼로리북>(2001) <아름다운 우리 음식>(2005) <위대한 밥상>(2005) 등이 있다.


<대담 심준형 본지 발행인·정리=김기중 기자·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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