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올여름 가족 휴가는 코로나19를 피해 사람들이 드문 곳에서 조용히 보냈다. 휴가 이틀째 오후 2시, 20학번 대학생인 아이가 온라인 수강신청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날은 주전공 학생들만 신청하는 기간이라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는 데 성공했다. 이틀 후 오전 9시, 모두에게 기회가 제공되는 전체 수강신청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는 곳이라서 노트북을 스마트폰 핫스팟으로 연결하고 수강신청 홈페이지와 초 단위 시계를 띄워놓고 결전의 순간을 기다린다. 9시 정각, 가장 빠른 손놀림으로 엔터키를 누른다. 1초도 안 돼 승부는 끝났다. 몇 개 과목은 수강신청에 실패했다. 화면 뒤에서 조용히 학생의 마음으로 지켜봤다. 과목마다 수강정원과 남은 자리가 표시돼 있는데 겨우 몇 자리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10여 년 전, 아이가 보고 있는 화면의 교과목을 제공하는 담당자였다. 교육의 공급과 수요 사이에서 벌어지는 클릭 전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때의 대면 강의 교과목은 강의실 좌석 수에 따라 수강정원에 제한을 받았다. 코로나19 이후 대학교 수업은 전면적인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됐고 지금 클릭 전쟁을 통해 수강하게 될 교과목도 모두 온라인으로 들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수업에는 강의실 제약 조건이 없다. 하지만 대학의 수강정원 제한 정책은 변함이 없다. 대학과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끝나 학생들이 강의실로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수강인원이 적으면 좋은 강의라는 편견은 여전하고 온라인 강의에 대한 차별의 벽은 여전히 높다. 대학 기본역량진단 지표 중 2020년 강의 규모의 적절성 지수는 수강 학생이 30명 이하면 0.4, 50명 이하면 0.3, 100명 이하면 0.2, 200명 이하이면 0.1을 가중해서 산출한다. 201명 이상이면 아예 0점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작은 지표 하나하나가 쌓여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대학의 미래》는 저자인 케빈 캐리가 MIT의 <생물학 입문-생명의 비밀>을 수강했던 경험으로 시작해서 기존 대학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쳐 나가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에릭 랜더 교수가 강의하는 <생물학 입문>은 MIT와 하버드대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교육과정이다. 이 수업은 MIT 모든 신입생의 필수 과정이지만 교육과정 설계와 운영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서 누구나 무료로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MIT 학생도 아니고 MIT에 가본 적도 없는 케빈과 전 세계에 있는 수만 명의 학생이 이 과목을 수강했다. 케빈은 이와 같은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대학(University of Everywhere)’이 대학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봤다.

《대학의 미래》가 쓰인 시점이 2015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대학’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교육과 기술이 결합한 에듀테크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비교적 적은 수의 과목을 수십억 명에게 가르치기 위해 설계된 디지털 학습 환경’과 대규모 투자를 통한 규모의 경제로 ‘꿈의 교육’이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학이 코로나19 이후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소규모 교실 강의로 그대로 돌아가려는 것은 도태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누구나 이를 잘 알고 있지만 대학이 스스로 구조적 혁신을 이뤄 진로를 수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게 해주는’ 대학의 기본적인 의무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는 단순히 강의실 좌석 수나 학생들의 무분별한 수요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대학의 미래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화두가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