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기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 가결과가 공개됐다. 우선 선정대학에 축하를 보낸다. 하지만 미선정대학에 다음 기회를 노리라는 상투적 말을 하긴 싫다. 대학 기본역량진단 자체가 고등교육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대학 기본역량진단은 말 그대로 대학이 설립 당시 약속했던 교육에 필요한 기본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만 평가하면 된다. 그러나 정부의 기본역량진단은 본래 취지와 달리 보고서 우열로 선정과 탈락을 판가름하는 어처구니 없는 소극(笑劇)을 연출하고 말았다. 멀쩡한 대학을 기본역량 조차 갖추지 못한 대학으로 전락시켜버렸다.

솔직히 이런 평가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재정지원대학을 선별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 손실과 부작용이 너무 크다. 명분만 쫒다 실리는 취하지 못한 꼴이다. 대학 마다 평가보고서 작성에 진이 다 빠질 노릇이다.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 봉사는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평가가 계속 되고 있는 걸까? 일부에서는 교육부 탓을 한다. 재정분배 권한을 놓기 싫어하는 교육부 관리들이 평가 문제를 알면서도 딴전을 부린다는 것이다. 다른 일각에서는 기재부에 책임을 돌린다. 기재부가 성과 위주의 재정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선정평가와 성과평가를 금과옥조처럼 요구하기 때문에 그대로 가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낸다.

국민 세금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될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잘 써야 한다. 교육예산은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의 성격이 있으므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야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부처 간 이견 조정이 안 되면 총리실, 청와대라도 나서야 하는데 뒷짐만 지고 있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 빈곤한 정부에 이것까지 해결해달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힘쓸 곳이 이곳이니 바라보지만 무능력하긴 매한가지다. 모순을 타개할 묘수가 안보인다. 결국 대학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듯싶다.

그동안 정책당국은 평가제도 개선 건의와 제안을 마이동풍(馬耳東風)식으로 무시해왔다.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평가로 인한 대학사회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차제에 대학사회 전체가 대학 기본역량진단 가결과 접수를 보이콧(boycott)하면 어떨까?

때마침 기본역량진단 결과 발표를 두고 대학 총장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이하 전대협)가 유감 담긴 ‘입장문’을 발표했다. 대교협은 “보고서 우열로 생긴 근소한 차이로 국비지원을 제한”하는 현행방식이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회생 불가능하거나 도덕성을 결여한 극소수의 한계대학에 국한하자던 대학 공동체의 한결같은 요구와 기대와는 달리 건전하고 회생 가능성이 높은 대학마저 권역별 줄 세우기에 입각해 이분법적 처분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전대협도 “이번 3주기 평가에서 지역과 전공별 특성에 따른 대학의 자율적인 질 관리와 노력에 대한 평가가 없었던 점은 매우 유감”이라며 “서열화된 평가 결과로 국비 지원을 제한할 경우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며 특히 소규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대학의 경우 해당 지역의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날을 세웠다.

전대협 입장문은 “탈락한 대학의 비율이 최소 10%에서 최대 32%로 지역 간 편차가 크게 발생했으며 일부 권역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이 탈락했다”며 “해당 지역은 학생 모집도 매우 어려운 지역으로서 진단평가 결과가 그대로 결정될 경우 대학의 존립은 물론 그 주변 지역의 경제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며 지역 소멸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대학 기본역량진단이 대학을 살리기는커녕 대학을 죽이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넌지시 지적한 것이다. 하긴 현행대로 한다면 멀쩡한 대학도 순식간에 탈락대학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니 선정대학과 탈락대학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가결과를 살펴보면 평가가 지속될수록 지역균형발전은 고사하고 지역해체만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점점 커진다.

이런 결과는 정책 당국이 대학사회 의견을 철저히 무시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다. 대학사회도 이번만큼은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당국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시정해야 할 것은 시정을 받아내야 한다. 대교협, 전대협 입장문이 체면치레용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학 기본역량진단은 ‘평가를 위한 평가’로 이미 대학현장에서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 참에 한국의 대학은 선정, 탈락과 상관없이 현행 평가가 가져다주는 부작용과 문제를 냉철히 인식하고 평가체계의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 같이 ‘평가의 노예’가 될 것인지 아니면 대학의 ‘자율적 발전의 길’로 걸어갈 것인지를 결정하란 말이다.

대학은 인류가 고안해낸 최고의 작품이다.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지성의 공동체’인 것이다. 이 ‘지성의 공동체’가 평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학인 모두가 떨쳐 일어나 대학인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대학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절호의 기회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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