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교육부 문우회 회장 “교육부가 제대로 역할 못한다면 없어지는 편이 교육 살리는 길”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교육부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결정과 학교운영에서 손을 떼고,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규제를 버리며, 오직 국립대학에 대한 정책 제시, 그리고 평생교육에 집중”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대학 위기의 시대다. 대학을 둘러싼 정부의 규제와 재정난, 학령인구 감소는 이 같은 위기의 표상이다. 위기의 시대를 현명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대학들의 최대 과제다.

해외 선진국을 중심으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변혁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들이 열풍처럼 불고 있다. 자타공인 선진국 반열에 든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미래 경쟁력 확보는 필수 과제다. 하지만 대학 혁신을 위한 국내 여건은 아직도 조성되지 않은 듯 하다.

그렇다면 과제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를 위해 본지는 창간 33주년 기념으로 이기우 교육부 문우회 회장과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을 초청해 ‘미래 교육, 혁신만이 답이다’는 주제로 특별대담을 가졌다.

이기우 회장은 고졸 학력으로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해 교육부 차관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공무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그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목 중 한 명이다. 특히 그는 교육부, 시·도 교육청의 퇴직 공무원들의 모임인 ‘문우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내 대학과 교육당국이 미래를 선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데 여전히 앞장서고 있다.

조동성 이사장은 1978년 서울대에 최연소 교수로 임용돼 경영대학장을 지내는 등 36년 동안 재직하고, 한국경영학회장,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인천국립대 총장을 역임한 경영학의 대표 학자다. 하버드대학 경영학 박사 출신인 그는 해외 15개 주요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월드뱅크 자문으로 활동하는 등 국제적인 오피니언 리더이다. 교육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한 핵심적인 화두를 던지며 대학 혁신을 선도해 왔다.

이날 특별대담에 자리한 이 회장과 조 이사장은 이구동성으로 “전 세계는 지금 파격적이라 할 정도로 규제를 풀고 혁신을 장려하고 있다”며 “국가의 경쟁력은 곧 대학 발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국내 대학의 혁신을 통해서 한국 젊은이들이 세계적인 인재로 발돋움하는 데 교육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용섭 본지 발행인
안녕하세요. 한국대학신문 창간 33주년을 기념해 ‘미래 교육, 혁신만이 답이다’를 주제로 이기우 교육부 문우회 회장과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을 초청해 특별대담을 준비했다. 그야말로 대학 위기의 시대다. 미래 경쟁력 확보는 우리나라가 처한 필수 과제가 됐다. 그러나 혁신의 여건은 여전히 조성되지 않은 듯하다.

대학에 대한 여러 규제의 사슬이 풀리지 않고서는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가 그 중심에 있다. 현 교육부의 문제는 무엇이라 보는지.

이기우 교육부 문우회 회장
교육부가 교육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미네르바 스쿨 사례로 시작하겠다. 이 대학은 70여 개국 학생들이 주요 도시를 옮겨다니며 인터넷상으로 자유롭게 공부하고 있다. 여러 주제를 가지고 온라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해결하며 창의적인 방법으로 공부한다. 세계적인 대학인 하버드대의 1년 등록금은 약 8000만 원 정도다. 미네르바 스쿨은 하버드대의 절반도 안되는 3000만 원이다. 미네르바 스쿨이 지난 2011년 설립됐으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다. 미네르바 스쿨과 같은 대학을 현재 우리나라에서 설립할 수 있을까. 중간·기말고사 등 평가방식, 학점부여방식도 통제·규제하는 우리 교육현실에서 과연 가능하겠나.

대학의 위기를 말할 때 교육부를 뺄 수 없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어도 낡고 경직된 규제와 간섭은 그대로다. 교육부가 대학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고등교육 정책을 만드는 주체가 교육부가 아니라 대학이 돼야 한다.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너무나 낡은 방식이다.

현재 우리의 경직된 교육제도 안에서는 선진대학, 선진체제가 모두 불법이라는 말이 있다. 시대는 광속으로 변하는데 우리는 계속 제자리라는 것이다. 탄력성과 수용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교육이 가진 역할과 기능은 여전히 크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교육 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관심도 높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정책 안정성은 매우 취약하다. ‘교육은 백년지계’라는 원칙이 무색하게 졸속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절차적 공정성 측면에서도 각 교육주체가 소외되고 있다. 이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교육부 직원들이 행사 참석이나 감사·조사 때문에 대학현장을 방문한다는 소리는 들어도, 교육부 직원들이 업무 추진을 위해 현장 모습을 알기 위해 방문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믿고 따라갈 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교육 정책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과정이 모두 전제돼야 한다.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초중등교육, 대학교육, 평생교육으로 이루어진 교육부의 구성은 잘못된 것이 없다. 잘못은 초점이다. 교육부의 문제는 정책의 초점이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에 맞추어져 있고 평생교육이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 대학교육의 문제는 교육부가 정책적 고려와 정치적 압력에 의해 대학을 목적으로 보지 못하고 정치적 목적과 정책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을 시도할 수 없게 되었다. 초점을 옮기고, 목적과 수단을 바꾸면 교육부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에 집중된 초점을 평생교육으로 돌려야 한다. 대학교육에서는 정치적 고려와 정책적 고려를 수단으로 내리고, 대학의 결쟁력을 목적으로 올려야 한다.  

교육부는 우선순위를 대학평가, 재정지원권 등을 통해 대학에 대한 통제를 하는데 두고 있다. 반면에 학문과 인재 양성을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는 후순위에 놓고 있다. 그 결과 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은 말뿐이고, 혁신을 정책에 반영하기도 전에 날이 저문다.  

우리나라 교육은 소비자, 즉 학습자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유초등교육, 중등교육, 대학교육, 평생교육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교육부 조직도를 보면 학습자 기준이 아니라 그들이 추진해야 할 업무 중심으로 나누어져 있다. 학부모들이 교육부 조직도를 보면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도대체 어느 부서에서 맡아서 하고 있는지 찾을 수 없다. 이게 바로 교육부 정책이 아래가 아니라 위를 향하고 있다는 증거다.

초등교육은 지역 교육청으로 운영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중등교육정책은 여전히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전국의 학교에 강제하고 있고, 교육과정 결정과 학교운영에 대한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교육과정에 대한 결정권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어 심각한 사회갈등 요인이 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편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이를 국가가 장악하고 있다. 선진국을 보라. 어느 나라가 중등교육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가? 

시급한 일은 교육과정과 학교운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지역 교육청으로 넘기는 것이다. 각 지역교육청이 이 두 가지 권한을 가지고 지역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자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대한민국의 17개 지자체는 제각기 전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초중등교육으로 알려진 모델을 연구해서 선택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각 도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각축하는 경연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것만으로도 세계적으로 특성화된 나라가 될 것이고, 이미 세계를 제패한 K-문화에 이어서 K-교육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주택가격을 비롯한 지역경제 역시 크게 활성화할 것이다. 

대학교육 역시 반값등록금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수도권 인구억제책처럼 정책적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 이를 강제하기 위해서 지원금을 준 다음, 지원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구실로 기본역량평가 등 각종 평가시스템을 통해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교육에 2원화 틀을 적용하는게 좋을 듯하다. 사립대학은 시장 원칙에 따라 무지원-무규제, 국립대학은 국민의 평등교육권을 책임지면서 지원-규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예산이 대폭 줄어드는 대신, 사립대학은 등록금규제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외국인 학생유치, 해외 분교 설립, 평생교육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생존책을 찾는 가운데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는 사립대학의 자율화로 인해 줄어든 예산을 국립대학에 집중투자해서 연구와 교육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백년대계를 세울 수 있다.

평생교육은 한국이 PIAAC자료에서 보듯 25세부터 OECD국가 중 최하위권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제대로된 정책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앞둔 지금, 교육부는 평생교육 담당기관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전국민에 대한 평생교육이 궤도에 오르면 그 때가서 폐지여부를 논하면 된다.

다시 정리하면 교육부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결정과 학교운영에서 손을 떼고,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규제를 버리며, 오직 국립대학에 대한 정책 제시, 그리고 평생교육에 집중하는 역할만 하면 국민이 사랑하는 1등부처가 될 것이다. 

이기우 문우회 회장
이기우 문우회 회장

이기우 회장
대학 혁신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없는 편이 우리나라 대학 교육을 살리는 길이다. 그것이 교육부이든 기재부이든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재부에 의해 교육부가 휘둘리고 있어 한 발도 교육발전을 위해 나갈 수 없다. 기재부가 사사건건 간섭하기 때문에 모든 대학들이 망가지고 있지 않나. 우리나라 경쟁력은 대학 경쟁력에서 나오는 것인데 대학이 완전히 붕괴하고 있고 이 자체를 기재부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기재부에 휘둘려 교육부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없어지는 게 맞는 것이다.

2002년부터 대통령 선거 후보 공약으로 교육부 재편 필요성을 꾸준하게 제기해 왔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도 진보·보수 모든 후보들이 국가교육위원회나 미래교육위원회 등 교육부를 대신할 체제를 공약으로 냈다. 핀란드, 프랑스, 일본 등 교육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유사한 형태로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부처럼 관료중심주의와 통제중심주의의 행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옥상옥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등교육은 자율적 의사결정권을 갖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대학 운영은 자율에 맡기고 등록금도 자율화해야 한다. 학생 성공을 위해 대학이 존재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자율경쟁 생존 체계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정치권은 학부모 표를 의식해 대학을 정치의 최대 피해지역으로 만들었다. 2009년 이후 13년째 등록금 동결·인하, 장학금 확대로 인해 대학은 고사 직전이다.

교육부는 대학이 고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교육혁신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교육부를 폐지하고 인재혁신부와 같은 새 부처를 신설하는 방법밖에 없다. 고등교육과 직업교육, 평생교육 등 융합교육을 실시하고 교육혁신을 통한 인재 강국을 실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조동성 이사장
군대 연병장에 잔디밭이 있었는데 군인들이 자꾸 그곳을 걸어 다니니까 장군이 이를 막지 않고 자연스럽게 길이 난 다음에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정식 길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사전에 어떤 제도가 올바를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에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의 흐름이 생긴 다음 그 방향으로 제도를 만드는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포지티브 시스템을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법에 없는 어떤 행위도 불법이 되고 규제대상이다. 특히 혁신은 법에 없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혁신과 규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가 생긴다. 현장에서 혁신을 고민할 때를 보면 ‘이게 법에 맞냐, 안 맞냐’를 걱정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쓴다. 대학에게 혁신을 요구하려면 기존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도 대학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최용섭 발행인
교육 대통령이 나와서 교육예산만큼은 기존에 있는 지침과는 별도로 예산을 편성·집행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앞선 대화에서 이기우 회장이 ‘교육부 해체론’을 강도 높게 이야기했다. 굉장히 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조동성 이사장도 대학에 오래 있었다. 조 이사장의 시각을 듣고 싶다.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조 이사장
우리나라 행정부를 구성하는 18개 부처의 성격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부 각 부처는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카테고리는 기능조직으로 전 국민을 위해서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부처다. 기획재정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둘째 카테고리는 서비스조직으로 일부 국민을 위해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다.

각 부처는 두 가지 카테고리 중 하나에만 속해야 한다. 근데 어떤 부서는 두 가지 성격을 다 가지고 있다. 전 국민을 위한 기능을 하면서도, 그 기능을 수행하는 소수 국민들을 지원하고 보호한다. 기획재정부가 대표적이다. 돈을 다루는 재정금융 기능을 가지고 전 국민에게 봉사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하는데 금융기관 종사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추가로 하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일반국민보다 큰 혜택을 주게 된다. 

교육부도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교육분야의 특정 국민을 보호하는 기능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기능만 당한다면 교육부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발행인
대학 기본역량진단이 아직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소송 문제로도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의 대학 평가가 이 상태로 가야 하는 것인가. 제대로 된 대학 평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 회장
국회의 올해 국정감사에서 교육위원회 소속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일반대, 전문대 147개 대학을 대상으로 현재 방식의 대학 기본역량진단을 유지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일반대의 83.7%, 전문대 79.8%가 ‘아니다’고 했다. 정부의 재정지원사업과 연계되니까 어쩔 수 없이 진단평가에 참여하긴 했지만 현행 평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결과다.

실제 이번 3주기 대학 기본역량진단은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현실과 맞물려 대학들이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당연히 평가 준비 과정에서 많은 예산과 노력을 투입했고 심지어 큰 비용을 들여 외부 컨설팅을 받은 대학도 여럿 있다는 말이 있었다.

2015년 1주기, 2018년 2주기 대학 평가를 거쳐 3주기 진단평가를 진행하면서 각 대학들은 이러한 평가에 적응해버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평가를 위한 평가로의 성격만 더욱 강해지고 있다. 재정지원과 대학의 평판, 명성이 걸려 있으니 제대로 된 울음 한 번 뱉지 못하고 끌려가는 소가 되는 형국이다.

주기마다 달라지는 평가 지표에 따라서 거의 모든 대학들이 비슷한 교육과정, 행정부서를 만들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학이나 남쪽 끝 거제 앞 바다에 있는 대학의 색깔이 똑같다. 설립이념에 따른 강점과 지역특성을 반영한 특성화 된 대학이 아니라 ‘교육과정’ 지표에서 5점, 4점인 대학만이 존재하게 된다.

15명의 평가위원 단 한 사람만 특정 대학에 점수를 낮게 주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과연 합당한 것인가라는 의문도 만만찮다. 특히 전문대에 재직하는 교수들도 각 대학이 처한 환경을 몰라 힘들어하는데 일반대 교수를 전문대 평가위원으로 참여시키고 블라인드 시스템에 따라 다른 평가위원들과 공유도 되지 않는다. 독단적 평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80%가 넘는 대학들이 기본역량진단 평가의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학들은 평가 받다가 날 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각 대학 교수들이 퇴직해서 컨설팅 회사를 차리면 노후가 보장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솔직히 나 역시 대학에 오래 있으면서 1년을 통틀어 평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며칠이 안 된다. 평가만을 위한 평가, 평기기관 밥그릇 챙기는 평가는 지양해야 한다.

발행인
현행 평가는 전면적으로 개편돼야 한다는 의견을 이 회장이 줬다. 조 이사장의 생각은.

조 이사장
대학에 대한 지원과 규제에 있어 교육부에게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지원도 하지 않고 규제도 하지 않는 대안이다. 둘째는 지원을 하되 대학이 지원을 제대로 쓰는지 평가하고 이에 합당한 규제를 하는 대안이다. 교육부는 두 번째 대안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원의 크기와 규제의 크기에 균형이 깨져있다. 규제 중에는 등록금 동결, 대입정원제한처럼 지원과 관계없는 것들이 있다. 이 중에 대입정원제한은 수도권인구억제책이라는 정책에 따른 일방적 규제이고, 등록금 동결은 집권당의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규제이다.  

따라서 규제가 지원보다 훨씬 크다. 대학이 지원도 안 받고 규제도 안 받겠다고 하면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규제 속에서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할 방법이 없다. 현행과 같은 평가에 대한 원천적인 해법은 지원과 규제 모두를 확 줄여버리는 것이다.

대학역량평가는 교육부가 지원과 규제가 많은 두 번째 대안을 선택하고 있는 우리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제도다. 그러나 여러 문제가 나타나서 그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첫째 문제는 획일적인 평가기준 적용 방식이다. 모든 대학이 똑같다. 200여 개 대학은 건학이념, 교육특성화 등이 모두 특화되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진다. 그러나 하나의 종합적 기준만 가지고 100점을 향해 모든 대학을 줄 세우기 하니까 모든 대학들이 한 줄로 설 수밖에 없다. 벽돌을 찍는 틀에 가장 근접한 대학이 평가점수를 잘 받는 구조다. 연구중심, 교육중심, 특수목적대학 등이 있는데 이들을 모두 같은 기준으로 평가한다. 독특한 철학과 운영방식을 가진 대학에 대한 평가는 낮고, 표준화한 대학은 평가가 높다. 결과적으로 특징이 없는 대학만을 양산하는 하향평준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방법은 대학의 특성에 따라 평가기준 항목 간의 가중치를 달리한 세 가지 모델을 만들고, 각 대학은 셋 중 하나를 선택한다. 구체적으로 대학을 특성에 따라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특수목적대학으로 나누고, 연구중심대학이 강조해야 하는 기준에 가중치를 높이 부여한 A모델, 교육중심대학을 위한 B모델, 특수목적대학을 위한 C모델을 만들면, 각 대학은 사전에 셋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이렇게 되면 각 대학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있다.

더 바람직한 둘째 방법은 각 대학이 위 A, B, C 모델에 가중치를 부여하고 이를 조합해서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대는 연구중심 80%, 교육중심 20%라는 가중치를 부여한 다음 이에 따라 평가받는 식이다. 연고대는 연구중심 50%, 교육중심 50%로 평가받고, 신학대는 연구중심 30%, 교육중심 30%, 특수목적 40%로 평가받는다. 이 방법은 첫째 방법보다 유연성이 더 높다. 한국의 200여 개 대학이 각자 설립자와 구성원의 교육철학을 반영해서 차별화된 대학으로 나갈 수 있다.

둘째 문제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대학역량평가의 기준이다. 이제 당당한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는 과거와 다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북극성처럼 대학에게 흔들리지 않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평가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과거 우리 대학들의 수준이 부족했을 때에는 마이너스에서 0까지 가기 위해서 필요한 교육을 제공했지만, 지금은 0에서 플러스로 가는데 필요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앞으로는 각 대학이 부족한 것을 채우는 노력보다 채운 것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교육부는 기본역량평가기준에 이러한 노력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바꿔야 한다. 이를테면 전임강사 강의비율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시킬 것이 아니라, 현장에 대한 경험이 있는 탁월한 비전임강사 강의비율을 높이는 게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신입생충원율도 정원을 100% 채우는 것보다 질 높은 교육과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충원율을 고민하지 않고 최고 수준의 교육의 질, 연구 수준을 유도하는 기준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발행인
미래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무엇이라 보는지.

조 이사장
2020년을 지난 지도 벌써 1년 반 지났다. ‘바이오’와 ‘AI’가 경제와 산업을 이끄는 두 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주과학’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 세계적인 부자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우주산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우주산업은 곧 큰 규모로 발전할 것이다.

또 인간을 영생의 시대로 가게 할 ‘장수산업’도 기반이 될 것이다. 문자 그대로 아주 건강하게 긴 수명을 갖게 하는 시대로 나아가는데 이와 관련해 모든 사회구조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 중 90%가 장수 제품으로 바뀌지 않을까? 

앞으로 새로운 산업들이 생기면 이에 따른 혼돈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탱하게 해 줄 학문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문학, 철학, 역사 모두 새로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동력으로 성장할 분야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회장
나는 무엇보다 미래의 교육혁명으로서 ‘평생직업교육’을 강조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곧 일자리 혁명의 시대다. 사회 전반의 급격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교육 설계가 중요하다.

평생직업교육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직업교육의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고등직업교육법’을 제정하고 중등직업교육과 고등직업교육, 평생직업교육을 연계함으로써 직업교육을 반드시 국가에서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업교육에 대한 무상교육도 실현에 옮기는 것이 좋지 않나 강조하고 싶다.

조 이사장
성장하는 산업 분야 중에 교육산업도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교육이 얼마나 발전하고 커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자료가 있는데 통계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0년까지 60년 사이의 평균 교육연수가 선진국은 2배, 개발도상국은 4배 정도 오르는 등 평균 3배 정도 올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인구는 25억 명에서 70억 명으로 늘었다. 교육연수가 3배, 인구가 2.8배 늘었으니 결국 교육양이 8.4배 증가한 것이다.

교육산업처럼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교육도 반도체나 조선 산업처럼 세계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문호를 열고 교육산업의 개념을 세계 산업으로 바꾸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일 분야가 바로 우리 대학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이 회장이 말했듯이 평생교육도 대학에 엄청한 성장을 가져오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고 본다. 평생교육을 진흥하기 위해 나는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대학 교수들이 연구년을 갖듯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 ‘교육년’을 적용하는 것이다.

6년에 한 번꼴로 교육년을 적용한다면 일자리도 7분의 1이 더 늘어난다. 또한 1년간 교육을 받는 것은 생산성 7분의 1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직장 생산성도 크게 올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 전국에 있는 대학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바우처를 줘서 학교에 돈을 주지 않고 교육년을 받는 사람에게 줘서 대학을 고르게 하면 대학에서 더욱 많은 학생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평생교육도 더욱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의 직장인 수준도 오르고 대학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만들어지며 이 같은 선순환 효과가 입증되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 평생교육의 메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평생교육의 첫걸음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이 제도를 공무원 113만명, 직업군인 19만명, 교사 50만명. 공공기관 근무자 44만명에게 적용하면 총 226만명 중 16.7%에 해당하는 38만개의 신규일자리가 생기고, 이들은 학생으로 공부를 한 후 직장에 복귀해서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교육비용을 상회하는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또 38만명이라는 신규 학생 숫자는 현재 전국 429개 대학의 재적생 숫자 328만명과 비교할 때 11.4%에 해당한다. 이렇게 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근무자만 대상으로 해도 각 대학의 학생숫자가 평균 11.4% 증가하는 효과가 생긴다.

발행인
대학 혁신을 위해서 대학 교수들이나 총장들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회장
대학이 바뀌기 위해 총장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유동성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총장의 리더십이 대학을 흥하게 할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총장은 비전제시자, 위기관리자, 교육봉사자, 멀티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학 구성원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도록 스스로 헌신하며 동시에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이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총장이 성과를 조급하게 내려고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리더십을 발휘하며 구성원 모두가 함께 보람을 느끼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수들도 각자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기술과 산업이 고도화하는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바로 교수의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교수의 역량을 개발하고 긍지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조 이사장
대학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 대학이 바뀌라고 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가 대학을 틀 안에 가두지 말고 스스로 갈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풀어줘야 한다. 한쪽에선 대학들을 획일적으로 몰아가면서 다른 쪽에선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교육부의 태도는 이율배반이다.

다만 대학 안에는 전통을 지키는 교수도 필요하고 온고지신의 교수도 필요하며 제로베이스에서 혁신을 창조하는 교수도 필요한 법이다. 이 속에서 이들을 조율할 총장도 필요하다. 조화 속에서 변화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게 하면 된다. 대학은 충분히 의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생태계다.

최용섭 본지 발행인
최용섭 본지 발행인

발행인
각 정당에서 대선 후보 선정 과정에 돌입했다. 교육정책과 관련해서는 물밑에서 상당히 심도 있는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현장에서 대학을 경영한 입장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상이 있다면.

조 이사장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의 근간인 학제 개편이다. 지금은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인 ‘6334’로 돼 있다. 이를 ‘5335’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초등학교를 1년 줄이고 대학을 5년으로 바꿨으면 한다. 그 목적은 대학교육의 강화다. 현재 모든 대학의 학생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융합교육을 받고 있다. 인생 100년을 사는 데 있어서 하나의 학문만 가지고 평생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 4년 동안 두 개의 전공을 이수하기엔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대학을 1년 늘려서 5년으로 하고 이 기간 동안 2개의 전공을 이수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이때 학위 두개는 서로 다른 대학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처음 들어간 대학에서 하나만 하고 다른 대학에서 다른 학위를 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2개 대학에서 2개 학위를 함으로써 다른 대학의 이질적인 문화 등도 흡수한다면 긍정적인 교육 효과가 일어난다. 두 곳의 대학에 가기 어려운 학생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두 번째 대학의 대안으로 사이버 플랫폼 상에 연합대학 온라인 전공 과정을 만들어 이수할 수 있게 한다면 된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 대학 입시에 대한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잘 만나야 하는 시대로 점점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평등교육을 제공하려 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불평등한 시대가 됐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어야 한다면서 제도를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모의 능력순”으로 결정되는 더 나쁜 제도가 됐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입시 제도의 핵심은 단순해야 한다. 계층 간 이동이 노력,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돼야 한다. 공정은 결과가 아니라 기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시나 학력고사이 비교적 단순한 방법이 부모의 개입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영국 이튼 스쿨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서는 점수제로 학생을 선발하지만 절반은 종합점수로 뽑고 나머지 절반은 분야별 높은 점수로 모집한다. 전체 점수는 낮아도 인문,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등 한 분야에서 잘하는 학생도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종합적으로 우수한 학생과 각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 한 강의실에 모여서 수업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도 정시로 가되 절반 정도는 종합점수로 뽑고 절반은 국영수, 사회, 자연 중에서 특출한 학생을 뽑는 방법이 어떨까.

이 회장
새 정부가 여러 가지 많이 하는 것보다는 성공할 수 있는 정책에 집중해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학벌 또는 학력 중심에서 능력중심사회로 사회적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초고령 100세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서 여전히 학벌·학력 만능의 구시대적 인식은 우리의 경쟁력을 형편없이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

평생직업교육을 모토로 하는 고등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실천 방안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고등교육이라는 개념을 평생교육으로 바꾸고 학력중심의 경직된 교육 틀에서 벗어나 직업교육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전문대를 더욱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수업연한 다양화가 절실하다. 고등직업교육 특성에 따라 1~4년제 과정으로 다양화해서 급속히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적응을 해야 한다.

발행인
지금까지 학계와 정부 등에서 헌신한 두 분의 말을 들었다. 대담을 통해 대학 혁신이 중요하고 이를 위한 여건 조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교육부가 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모아졌다. 앞으로도 교육부 해체, 교육부 기능 재편은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대담 내용이 차기 정부의 교육정책 구상에 시사점을 줬으리라 본다. 두 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진행= 최용섭 발행인 / 사진= 한명섭 기자 / 정리= 김의진 기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