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전 교총 회장)

최근에 내 생일을 맞았다. 여든여덟번째다. 제자들과 가족들은 작년부터 미수(米壽)잔치 얘기를 꺼냈다. 미수는 별 의미가 없다고 사양했다. 쌀미(米)자를 해체하면 八十八이 될 뿐이고 일본인의 재미스런 발상법이 만들어낸 그 땅의 관행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래도 애비와 할애비 생일이랍시고 자식들과 손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 주고 간 생일 카드를 꺼내어 다시 한번 읽어보니 몇 아이는 여전히 나의 미수를 축하한다고 써 놓았다. 그래서 작년에 받았던 카드를 꺼내 비교해 보니 역시 다른 몇 아이가 이미 작년에 “할아버지, 미수를 축하해요”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들의 생활문화 속에는 아직도 정돈되지 않은 풍습이 남아있다. 우리들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우리 나이, 법적 나이, 만으로 따지는 나이가 혼재해 있다. 예컨대 내 경우를 보면 우리 나이로는 89세, 법적나이는 88세, 만나이로는 내생일 이전까지는 87세(몇개월)이다. 이 산법의 혼돈이 해소되려면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 될 것 같다.

내가 태어났던 그 날이 바로 추석날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식구들의 생일은 반드시 양력으로 차리시면서 내 생일만큼은 음력으로 차려주셨다. 그러니까 그 가난했던 일제강점기만이 아니라 6·25전쟁 피난 중에도 내 생일상만은 언제나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풍성했다. 우리 민족이 아무리 가난했던 시대에도 그날만은 문전걸식하는 걸인이 없었다. 

어머니는 한국이 일본에 병합된 이듬해 그 엄혹하던 시기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충청도 안동김씨 이름있는 문중에서 홀로 한성의 해평윤씨 어느 종가의 맏며느리로 들어오셨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우셨겠는가. 그 후 11남매를 낳으셨으니 내가 열 번째다. 그 고생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그러나 내 위로 딸 셋을 연달아 낳다가 내가 나타났으니 그리고 그날이 추석이었으니 대소가의 온 가족이 모여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그리고 어머니는 종가 맏며느리로서 그 바쁜날 나로 인해 해산구완을 받으며 며칠간 편히 쉬셨다니 난 출생과 더불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생일날만 되면 나의 출생과 관련된 그림 한 폭이 내 뇌리에 되살아난다. 그 그림 속에는 갓 태어난 내가 강보에 싸인채 누워 있고 어머니는 내 머리맡에 조심스레 앉아있다. 흰색 치마저고리를 입으신 할머니 세 분이 나란히 서서 허리를 굽혀 나를 들여다 보시면서 “어머나 어쩜 이 녀석은 시가 배꼽에 들어 있네” 하면서 감탄하고 계시다. 그때가 바로 팔월 한가위 낮 열두시였기에 어떤 환난지경에도 절대로 양식 걱정은 없으리라는 축복의 말씀이다. 안방문은 활짝 열려있고 대청마루에는 추석 차례상이 준비되어 있다. 나는 마치 숙달된 큐레이터처럼 숨도 안 쉬고 현장을 묘사했다. 심취해서 듣고 있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그거 어디선가 보던 그림 같아요. 나사렛 예수께서 베들레헴의 어떤 여관 마굿간의 구유에서 태어나실 때 별을 따라 찾아온 동방의 세 박사가 경배하고 아기 예수를 들여다보는 장면과 구도가 너무 흡사해요. 할아버지의 데자뷰(deja vu) 같아요.” 하는 것이었다.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도 아닌 것이 관찰의 주체인 내가 관찰의 객체인 신생아로 그림속에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메뷰(jamais vu)도 될 수 없다. 아무리 나의 뇌신경 교류 과정에 순간적인 잘못이 발생해 기억이 순간적으로 소멸됐다 하더라도 애초에 그럴 원인이 생길 수조차 없었으므로 잊어버릴 것조차 있을 수 없겠기 때문이다.

이때 대학교 재학중인 손녀가 “할아버지, 그거 혹시 Presque vu 아닐까요?”하고 문제를 던졌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 역시 정답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데자뷰가 이승철이 “풍경화 속의 거리”에서 노래했듯이 일찍이 못 들었거나 못 봤던 것을 이미 들었거나 보았던 것처럼 그리고 자메뷰는 일찍이 수없이 들었거나 보았던 것을 어느 순간 갑자기 들어본일도 보았던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억착오를 일으킨 것이라면 설단현상(Presque vu)는 이미 경험했던 것에 대한 기억이 날듯 말듯하여 말이 혀끝에서만 맴도는 현상 (Tip of the Tongue Phenomenen)이다. 위의 세 유형으로는 나의 탄생도를 설명해 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가의 해답을 구하되 최초로 데자뷰 용어를 만들어낸 의학자 에밀 보아라크(Emile Boirac)의 신경화학적 접근을 포함해 정신의학적 또는 심리학적 접근에 기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날 손주들이 준 큰 생일 선물은 만찬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16개 유형의 성격검사를 내게 적용 시킨 결과를 발표한 것이었다. 미리 은밀하게 나에 대한 MBTI 성격검사를 한 다음 그날 식탁에서는 공개적으로 약 15분간 수십 개 항목의 설문조사를 숨 쉴 틈도 없이 나의 즉답을 요구하며 강행했다. 그러더니 자기네들의 사전 검사 결과의 정확성이 실증적으로 확인됐다며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했다. 알고 본즉 나의 성격유형이 자기들의 예측대로 매우 균형잡히고 건강한 ESTJ형(외향형, 감각형, 사고형, 판단형)으로서 지도자 내지 엄격한 관리자 타입으로 나왔다며 예상대로라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처럼 혼탁하고 불안한 세상 속에서나마 그날 저녁만은 아내와 아들·딸 내외, 손주들의 삼대가 모여 왁자지껄했던 참으로 즐겁고 격조 높은 생일잔치였다. 무엇보다도 손주들이 MBTI를 이용해 ESTJ 판정을 내린 것은 나에게 더 살아야할 명분을 부여한 최상의 생일 선물이었다.

※ ‘살며 생각하며’는 대한민국 저명인사의 인생 스토리와 철학, 경험담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살며 생각하며’에는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전 교총 회장)이 함께 합니다.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와 미국 존스 홉킨스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처장, 사회과학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았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건국대 총장, 호남대 총장, 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연세대 명예교수와 학교법인 홍신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