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은 KAIST ‘거꾸로행정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박효은 거꾸로행정위원회 위원장 (사진=KAIST)
박효은 거꾸로행정위원회 위원장 (사진=KAIST)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KAIST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광형 총장이 수장을 맡은 이래 KAIST는 줄곧 ‘거꾸로’ 정신에 입각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실패를 실패로 해석하지 않는 ‘실패연구소’ 운영부터 총장실에 거꾸로 내걸린 대학 조직도까지, KAIST에서는 기존의 상식과 형식에서 벗어난 도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1일부터 새롭게 출범한 기구가 바로 ‘거꾸로행정위원회’다. ‘거꾸로행정위원회’는 참여와 소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행정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문화 혁신’의 일환이다. ‘거꾸로’라는 이름처럼 ‘거꾸로행정위원회’는 전체 위원 12명 중 9명이 MZ세대고 그 중 제일 어린 위원이 1995년생인 젊은 조직이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로 2030세대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 조직의 첫 위원장인 박효은 씨(32·교무처)는 자신을 ‘평범한 행정원 A씨’라고 소개했다. 박 위원장은 2017년 KAIST 공채로 입사해 인사팀을 거쳐 현재는 교무처에서 행정업무를 맡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행정원 A씨’는 위원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수락한 이유를 자신이 평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이 결코 KAIST 내 모든 MZ세대를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다양한 의견을 곡해 없이 위로 전달할 수 있는 무난한 사람이 위원장 자리에 적합하다고 한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 평범한 MZ세대 교직원이 ‘거꾸로행정위원회’를 통해 KAIST에서 동료 직원들과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거꾸로’의 시작은 위로부터였지만 변화는 아래로부터… = ‘거꾸로행정위원회’ 자체는 MZ세대 교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조직이 아니다. 그 시작은 방진섭 KAIST 행정처장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는 행정학을 전공한 직원 출신 처장으로 늘 대학 행정 혁신에 관심을 두고 조직 혁신의 원동력은 주체성을 지닌 구성원들에게서 나온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방 처장은 “그동안 행정 변화와 혁신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왔지만 결국 행정은 제도의 합리성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KAIST를 이끌어갈 젊은 교직원들이 술자리에서 뒷담화를 푸는 형식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조직에서 버티는 게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방진섭 처장은 MZ세대 교직원들이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의 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거꾸로행정위원회’를 조직을 제안했다.

KAIST의 교직원 중에 MZ세대로 분류되는 20대가 7.59%, 30대가 27.7%로 총 35.29%의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KAIST뿐만 아니라 한국 대학의 위계질서는 다른 어떤 조직보다 고착화한 조직”이라며 “대학이 발전하고 창의적인 조직으로 거듭나려면 새로운 생각과 변화를 만들어가는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상대적으로 젊은 교직원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어떤 조직이든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마련이다. 차이는 그 문제가 공론장으로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에서 생긴다. 박 위원장은 “기존 행정 체계에 뿌리를 둔 조직이지만 위원 구성, 안건 상정, 의견 조율 등은 위원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한다”며 단순한 행정 하위조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난 8일 이뤄진 첫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인사위원회 내에 평직원 위원을 두는 안’과 ‘초과근무수당 대신 보상휴가를 부여하는 안’ 등 두 가지 안건을 가지고 열띤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안건은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됐지만 일명 ‘관리자 그룹’으로 분류되는 대학 보직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박 위원장은 “이런 주제 자체를 교내에서 젊은 직원들이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충격이자 자극이었다”며 “논의를 해보기 전에는 젊은 세대가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줄도, 또 저마다 의견이 다른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세대 특히 젊은 세대라면 거의 비슷한 의견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는데 정작 모여서 논의를 펼쳐보니 12명의 위원들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와 놀랐다”며 첫 모임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거꾸로행정위원회’는 노조도 아니고 의결권이 있는 협의체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상급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교환하고 이를 통해 같은 세대 안에서도 서로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 자체가 이전에는 없었다”고 말했다. 방 처장 역시 “‘거꾸로행정위원회’를 통해 행정 윗선으로 올라온 내용을 그저 단순한 의견 정도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8일 첫 오프라인 킥오프 미팅을 개최한 ‘거꾸로행정위원회’  (사진 = KAIST)
11월 8일 첫 오프라인 킥오프 미팅을 개최한 ‘거꾸로행정위원회’  (사진 = KAIST)

■“MZ세대는 ‘YOLO족’? 시너지 일으킬 수 있는 ‘행복 추구형’ 사람이 많을 뿐” = “부모세대들이 MZ세대를 ‘YOLO족’으로 많이들 생각하는데 그게 아닌 젊은 친구들이 더 많다. 또 MZ세대가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것만도 아니다.”

박 위원장은 MZ세대를 향한 오해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 언급하며 MZ세대의 성향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분명 요즘 젊은 세대는 부모세대가 2030일 때와는 다르게 조직의 일에 희생적으로 나서지 않는 성향이다”면서 “개인의 행복이 조직의 행복보다 우선한다고 여기는 MZ세대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조직은 회사에 국한하지 않는다. 다수를 이루는 가정이나 학교도 조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MZ세대의 성향에 조직 혁신의 열쇠가 있다. 박 위원장은 “개인의 행복이 늘 조직이 이익과 반대 방향에 있는 것은 아니다”며 “조직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이 상충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서로가 연결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시너지의 동력을 찾기 위해 ‘거꾸로행정위원회’와 함께 발족한 기구가 ‘거꾸로 멘토링’이다. ‘거꾸로 멘토링’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기존의 멘토링과는 다르게 젊은 후배 직원이 멘토를 맡아 선배 보직자에게 MZ세대가 공유하는 정보와 생각을 알려주는 ‘역발상 프로그램’이다. 

‘거꾸로 멘토링’에서 멘토는 30대 미만 21명의 MZ세대로 구성돼 있고 현재 멘티는 7명이다. 멘티 한 명당 멘토 세 명이 붙고 운영 방식과 모임 장소까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구조다. 박 위원장은 “‘거꾸로 멘토링’은 MZ세대의 문화나 직업관을 나누며 세대 간 공감의 범주를 넓혀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소통의 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효은 위원장이 거꾸로행정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KAIST)
박효은 위원장이 거꾸로행정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KAIST)

■ ‘교직원 MZ’와 함께 나아갈 미래 = “‘거꾸로행정위원회’는 노조도 아니고 직원 민원을 받아 처리하는 CS 부서도 아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조직이다.”

박 위원장은 ‘거꾸로행정위원회’의 성격으로 ‘애매함’을 꼽았다. 하지만 박 위원장이 말하는 애매함은 결코 ‘힘이 없음’이 아니다. 누군가의 강요도 없기에 자신의 의견을 원할 때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고 낮은 직급이라 말하지 못했던 학내의 민감한 문제에 대한 의견도 위원회의 입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 주체성을 가지고 임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그 어떤 조직에서보다 자유롭게 논할만한 곳이란 의미다.

박효은 위원장은 “어떻게 보면 이러한 시도들을 ‘전시행정’ 내지는 ‘쇼’로 보는 시선도 있겠지만 그게 아님을 증명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또한 ‘거꾸로행정위원회’의 몫”이라며 “KAIST 안의 젊은 목소리들을 공식적으로 모으고 이끌어내 학교 측에 전달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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