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전 교총 회장)

국무회의에 회부되는 모든 주요 안건은 반드시 당해부처에서 또는 당해부처와 관련된 부처의 실무자 선에서 신중한 검토와 협의를 거친 다음 차관회의의 심의 절차를 통과해야만 총리실(국무조정실)에서 국무회의에 상정하기 때문에 국무회의에서는 새삼스럽게 논란이 제기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1991년의 어느 날, 그날만은 사정이 좀 달랐다. 교통부 제안 법안 중에 견도(肩道)란 용어가 이어령 문화부 장관의 안목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나도 그때서야 그게 눈에 띄었다. 이 장관은 “우리 말에 견도란 말은 없다”면서 그 대안으로 ‘갓길’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서 교통부 장관은 “내가 말하는 견도라는 용어 속에는 차량 통행을 금지한다는 개념이 들어있는데 갓길이란 용어에는 통행을 허용하겠다는 개념이 우선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반론을 폈다. 나도 입을 열었다. “언어란 흐르는 역사 속에서 개념이 다소 풍부해지거나 또는 더욱 확실해지게 되어 있다. 견도의 잠재 개념이 일반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는 것이라면 갓길이란 이름으로도 똑같은 내용이 담겨질수 있지 않으냐?”했다. 결국 그날의 국무회의는 ‘갓길’로 낙착됐다. 

짐작컨대 교통부 실무자들은 영어의 the shoulder(of a way)를 직역해서 어깨길 즉 肩道(견도)라고 작명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로가다(路肩) 즉 길어깨라 하며 중국에서도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갓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말의 재발견이라 하겠다. 이는 누가 뭐래도 이어령 장관이 주은 값진 이삭이다.

밖에서 보는 국무회의와 안에서 몸으로 겪는 국무회의는 사뭇 다르다. 서울시내 모 대학의 대형 도서관 건립 계획이 관계 당국의 불허로 수포로 돌아갔다. 알고 보니 설계도면상 구조물의 오른쪽 뒷끝 부분이 녹지대를 약간 침범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대학의 대지가 워낙 협소한지라 앞으로 더 나을 수도 없고 그 때문에 건축 규모를 더 이상 줄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국무회의에 상정토록 요구했다. 정원식 총리가 의사봉을 잡았다. 나는 발언권을 요청했다. “녹지법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것이냐? 국가적으로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는 민간의 거대한 교육투자를 녹지대의 끝자락을 약간 침범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이를 거부함이 현명한 조치인가?”하는 내용의 반론이었다. 건설부  장관과의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원식 총리의 유능한 중간조정으로 그 안건은 나의 뜻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나도 국무위원으로서 흔쾌하게 귀한 이삭을 주은 셈이다.
 
내가 재임중에 목격한 국무회의의 낙수는 그 밖에도 적지 않다. 내가 이를 두고 ‘낙수’라 함은 헌법이 제89조 1호에서 17호에 걸쳐 명시한 국무회의 심의·의결 사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수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일이 의미 있는 이삭줍기였다고 나는 믿고 있다. 지금도 그 장면을 회상하면 나는 마치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대표적인 작품 “이삭 줍는 여인들”(The Gleaners)과 만종(L’Angelus)을 겹쳐서 보는 느낌이다.

국무회의는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선전포고와 강화조약체결, 기타 중요한 대외정책, 예결산안, 국유재산 처분의 기본계획, 행정 각부의 중요정책의 수립과 조정 등 실로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무회의는 언제나 조용하고 신속하게 안건을 처리한다. 

국무회의의 낙수 중에는 뜻밖의 수확도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이어령 문화부 장관의 하소연을 들은 일이 있었다. 예술 부분의 영재들에게 걸맞은 특수 교육기관 설립이 자신의 장관취임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뜻을 못 이룬채 근 2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곧 있을 개각시에 자신이 교체 대상 1호이니 그 뜻도 못 이루고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일을 내가 떠맡아 성사시키기로 약속했다. 이 장관은 단독으로 특별법을 만들고자 하여 실패했으나 나는 그와 반대로 내가 주관하는 교육법에 한 조항만 신설했다. 국무회의에서 제안설명을 내가 직접 했다.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는데 건설부 장관만이 수도권 인구집중억제법을 내세워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즉석에서 학교를 수도권밖에 설립하겠으니 이를 조건으로 동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교육법 개정안은 그 자리에서 통과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출범이 법적으로 확보됐다. 이 장관은 기쁨에 넘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2년간의 소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참으로 아슬아슬하게도 바로 그날 오후 발표된 개각명단에 그의 이름이 포함됐다. 
그런가 하면 국무위원끼리 국무회의 석상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상공부에서 상공부 산하에 상공 대학을 직접 설립하겠다는 안건을 상정했을 때의 일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교육체계가 공중분해할 위험이 있고 현행 교육법에 저촉된다는 내용의 반대 발언을 했다. 그 안건은 심의 보류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며칠 후 대통령의 호출이 있어 청와대 특별회의실에 출두했더니 놀랍게도 이미 상공부의 이봉서 장관과 최각규 경제 부총리, 이연택 교육문화 수석이 좌정하고 있었다. 대통령께서 관계자 네 명을 앞에 놓고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교육부와 상공부의 두 장관이 의견을 직접 개진하라는 것이었다. 상공 장관과 나는 국무회의에서의 발언 내용을 되풀이했다. 그랬더니 “이 문제는 없었던 일로 합시다.” 이것이 대통령의 결론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나는 새삼스럽게 대통령의 합리적인 통치·조정 스타일을 실감하게 됐고 이 과정을 겪어내면서 이봉서 장관이 보여준 유연한 성품과 고매한 인격에 대해서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이 또한 잊을 수 없는 국무회의의 낙수라 하겠다.

이처럼 국무위원의 이삭줍기는 국무위원이 각자의 개성과 전문성과 열정을 발휘하면서 나라의 정책과 행정의 사각지대를 메꾸며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바 크다 하겠다. 본시 국무위원은 본직이요, 장관은 보직이기 때문이다. 


※ ‘살며 생각하며’는 대한민국 저명인사의 인생 스토리와 철학, 경험담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살며 생각하며’에는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전 교총 회장)이 함께 합니다.

■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와 미국 존스 홉킨스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처장, 사회과학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았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건국대 총장, 호남대 총장, 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연세대 명예교수와 학교법인 홍신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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