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이다. 이들이 누리지 못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나타났다. 바로 킹메이커 ‘김종인 박사(이하 김종인)’다.

누가 시켰는지는 모르지만 3김씨가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후 ‘김종인’은 대선이나 총선 때 마다 ‘어마무시’한 괴력을 발휘하며 정치무대를 휘젓고 있다. 그의 독특한 개인기에 내로라하는 정치고수들이 납작 엎드리고 언론조차도 그의 발언을 실어내기에 바쁘다.

일본만 하더라도 막후 실력자들이 정치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사에 김종인만큼 자신의 조직도 자금도 없이 보수, 진보 그리고 여, 야를 넘나들며 대선과정을 조율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과연 김종인의 세월과 이념을 초월한 킹메이커 역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정치학자들도 이 기이한 현상을 분석해서 평가할만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대단한’ 역할을 학문적 분석 대상에 올리지 않고 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후보 공천은 정당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이다. 당원은 물론 일반인들을 공천 과정에 참여시켜 가장 당선가능성 있는 후보자를 가려내어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과정은 정당 중심으로 치러진다. 그런데 유독 근래 치러지는 선거에서 이런 공식이 깨졌다. 대선후보 선출 과정이나 선출 이후 ‘김종인’의 지도를 받겠다는 후보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알려진 바 김종인은 가인 김병로 전 대법원장의 손자이다. 서강대 교수를 거쳐 5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헌정 사상 최초로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이 된 기이한 경력 소유자이다. 그 과정에서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사법조치를 받은 전력도 있다.

김종인의 5선 이력은 제11, 12대 민주정의당 전국구의원으로 시작해 제14대 민주자유당 전국구의원, 제17대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의원, 제20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의원으로 이어진다.

김종인이 선거 지도자로 데뷔한 해는 2004년이다. 그는 17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일반에게는 낯선 인물이었다. 그가 주목을 끌게 된 것은 2012년 박근혜 대선경선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이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야당으로 건너가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맡아 공천을 주도하며 총선승리를 가져오자 그의 주가는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 비로소 세상에 없는 ‘선거 구원전문투수’가 등장한 것이다.

김종인의 주가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후보가 대통령이 되며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의 밀월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는 새누리당 후신인 미래통합당이었다. 21대 총선에서 황교안 대표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했다. 참패였다. 그러나 다시 일어났다. 그는 2021년 4월 8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아 재·보궐선거를 지휘했다. 보기좋게 승리했다. 그는 승리한 바로 다음날 물러났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김종인은 킹메이커 내지는 부실정당(不實政黨) 구원전문투수이다. 선거에서의 승률만 본다면 김종인은 패장 보다는 승장이다. 한마디로 승리를 가져오는 승부사이다. 승률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선거의 계절만 되면 김종인을 모셔가기 위한 각 당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대선을 100일 정도 남긴 이 시점에서도 김종인과 국민의 힘 윤석렬 후보간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김종인은 속칭 대중을 열광시키는 인기정치인은 아니다. 비례대표 5선 경력의 원로정치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여의도 정치판 생리를 누구 보다 꿰뚫고 있는 여의도 정치문법의 대가인 것이다. 거기에 선거판의 흐름을 읽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치감각의 소유자이다.

이제 여야를 넘나들며 ‘괴력’을 발휘하는 그의 존재는 어느덧 정치판의 상수(常數)가 된 느낌이다. 우리는 어느새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그의 모습에 익숙해진 듯 하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정당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정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김종인이 여야를 넘나들며 비례대표 5선의원을 역임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지만 그도 ‘철새정치인’이란 점에서 보면 내세울 일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그를 선거지도자로 모시려는 각 당의 움직임은 선거공학적 사고일 뿐이다.

우리는 ‘선거꾼, 정치꾼’이란 말을 많이 한다. 선거판을 기웃거리며 한 몫 챙기려는 자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물론 김종인을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야를 초월하는 그의 선거판 행보는 정당정치 발전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김종인 모시기가 여야를 초월해서 추진되고 있다. “윤석렬 진영으로 안가면 우리 쪽(이재명 진영)으로 모시자”는 말도 들린다. 우리나라 정치의 현 수준을 보는 것 같다. 정치를 희화화(戲畫化)하는 짓이다. 보수, 진보 떠들어도 그 물이 그 물이다. 한통속이란 말이다.

이게 정상인가? 정치를 ‘정치공학적’으로 ‘선거공학적’으로 그리고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가는 오늘의 한국 정치인들에게 실소를 보내며 하루빨리 우리 정당정치가 정상으로 복원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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