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월이다. 연말이면 늘 인도의 보도블럭을 교체하는 시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지금은 덜하지만 지자체들이 남는 예산 처리하는 식이어서 눈총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황당하고 어이없는 예산 낭비 소식이 전해졌다.

초중고등학교에 때아닌 예산이 나오면서 학교마다 멀쩡한 전자 칠판을 교체한다거나 남아도는 방역 물품을 또 구매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교내 멘토링 사업에 문자 하나만 달랑 보내도 멘토링 횟수로 인정받아 돈이 지급되고 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인고 했더니 2021년도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백년지대계가 무색하고 백성들의 교육에 지대하게 관심이 많았던 세종대왕이 곡할 노릇이다. 작금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우리나라는 매년 걷어들이는 세금의 20.79%가 교육계로 흘러가도록 돼 있다. 이는 의무적으로 배정되다 보니 변화하는 환경과 상관없이 세수가 늘면 교육교부금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올해 정부가 걷어들인 세금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10조 원이 더 생겼다고 한다. 9월 기준 세금이 31조 원이나 더 걷히면서 6조 원이 교육예산으로 배정됐고 12월까지 더 걷히는 세금이 19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4조 원이 교육교부금으로 또 쌓인다.

더불어 남아도는 교부금이 시도교육청에 의무 배정이 되니 학교들도 어안이 벙벙하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두달 동안 8000만 원을 쓰라고 예산이 떨어졌단다. 그 학교의 한 해 예산이 4억 원이니 횡재맞은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 쓰라고 하니 교사 연수비, 학생들 체력단련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지출하고 있다. 일부 중학교는 전자칠판 교체 사업이 활황(?)이다. 5000만 원 들여서 구축한 좋은 시스템도 예산이 남아도니 뜯어내고 새로 달고 있다. 이렇게해도 지난해까지 각 시도교육청에 남아도는 예산이 4조 5000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따져볼수록 기가 막히니 페이드아웃하고 장면 전환을 해보자. 고등교육예산은 어떠한가.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로 미선정된 대학을 추가 지원하기 위해 12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교육위에서 의결했지만 3일 새벽 통과된 607조 원 규모의 초슈퍼 정부 예산을 보니 무참히 짓밟혔다. 늘어나는 교육교부금으로 인해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될 89조 6000억 원의 교육부 예산이 배정됐지만 고작 320억 원만 허락했다. 미선정된 대학의 학생들은 하루 아침에 ‘별로’인 대학에 다니는 셈이 됐다. 그런 것 때문에 학생들이 직접 서울 광화문, 국회앞, 정부세종청사 등에서 시위에 나서고 교육부의 방침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헛된 수고가 돼 버렸다.

우리나라 법은 따지고 보면 참으로 관대하다. 내국세의 20.79%를 교육교부금으로 배정하도록 한 것은 중학생 수가 증가하고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오전오후반을 나눌 정도로 학생들이 넘쳐났을때 모자라는 교육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1971년 지방재정교부금법으로 도입됐다. 또 미래세대를 키우는 것인만큼 교육부 예산을 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지극히 잘한 것이다. 다만 환경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늘 씁쓸할 뿐이다.

아울러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해 반성의 기미를 따져 형량을 재는 것도 그렇다. 교통사고든 마약 범죄든 피고인들이 반성문을 쓰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거나 피해자와 합의를 보는 등의 노력을 하면 혹여 죄질이 나쁘더라도 그것을 감안해 형량을 깎아주는 일이 관행화 돼 있다. 판사의 재량이긴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딱 한가지 관대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거나 최근 마약을 하고도 법정에서 판사에게 버럭했던 어떤 사람처럼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피고인에게는 가차없는 형량이 내려진다. 이 또한 판사도 사람이니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이럴 때 판사는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을 두고 판결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개전의 정이 없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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