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중략) 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가수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의 노랫말이다. 24년전 나온 노래지만 구구절절 현재의 대학이 처한 상황과 맞아 떨어지고 향후 그려질 미래까지 제대로다.

대학은 명목상 교육부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고등교육이라는 존재만으로 방치되고 있다. 13년째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감소, 관리감독으로 인한 기본역량진단평가 등 무수한 비바람과 눈보라가 쳐도 대학은 늘 그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푸르게 말이다.

재정지원도 넉넉치 않아 가진 것 없지만 대학들은 역경을 뚫고 인재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공유대학 플랫폼도 만들고 있고 지역 대학들은 지자체와 연계해 학생들의 일자리를 챙기기에 바쁘다. 또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팍스 테크니카 시대’에 인공지능은 일상이 됐고 이제는 메타버스, ESG까지 적용하느라 그야말로 나갈 길 멀고 험하다.

대학이 어렵다고 주저 앉으면 국가 발전을 저해하기에 항상 푸르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와 급변하는 세계 정세로 2년 동안 대학이 짊어진 짐은 어마어마하다.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대지 말고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안내가 없어서일까. 눈치없는 교육부는 대학들 손보기에 여념이 없다. 눈으로만 보면 알아서 생존의 법칙대로 헤쳐나갈 대학들이 교육부가 손댄 평가에 맞서 이것하랴 저것하랴 정신이 없다. 대학 직원들은 마음 속에 천수관음을 품고 살고 있다.

익히 짐이란 무게가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500ml 물병도 팔을 펴고 잠깐 들고 있을땐 아무렇지 않지만 한시간, 두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것도 아닌 물병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3주기까지 8년에 걸친 대학 구조개혁 평가도 모자라 내년에 평가를 또 시작하겠다고 하니 지혜가 없는 것인가 근본없는 행정 따라하기인가.

인간은 슬기롭고 슬기로워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했거늘. 그나마 슬기로운 소식이라면 본지가 4분기에 주최한 프레지던트 서밋에서 유력한 여야 대선후보에게 이끌어낸 약속이다. 바로 대학의 자율성 부여와 규제 완화 그리고 교육부의 기능 축소다. 차기 정부 누가 들어서도 공통적으로 한 약속이니 안도감과 함께 기대감이 물씬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자이트가이스트는 공정이다. 대학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면 공동선을 바탕으로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논하는 공리주의에서 개인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도 효용론에 따라 합의할 수 있는 공동체주의야 말로 마이클 샌델이 얘기한 ‘정의’일 것이다. 허나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정의 잣대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의 입맛에 맞는 공동체주의로 싸우게 되면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시대정신이 삐뚤어지면 결국 피해는 개인이 입게 되고 넓게 보면 국민만 고스란히 피해보는 꼴이 된다.

제 아무리 교육부가 평가의 잣대를 씌워 또다시 대학을 줄세우기하고 학생들을 서로 다른 공동체주의로 몰아넣어도 대학은 고난을 헤쳐나가며 결국 깨치고 나아가야 한다. 늘 그랬듯 해결책은 그렇게 대학들이 지혜롭게 찾아낼 것이다. 대학은 국가의 기반이고 생산력의 기본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기에 한시도 좌고우면할 틈이 없다. 우직하게 나아가야 한다.

이제 곧 신축년 하얀 소의 해를 보내고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이하는 시기다. 공교롭게도 검은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보내고 복을 가져오는 희귀한 동물이라고 한다. 지긋지긋하도록 사람을 괴롭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나쁜 기운은 썩 물러가고 부디 좋은 기운만 생겨 대학에 힘을 불어넣고 그것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의 더욱 강건한 모습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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