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영 전국대학교입학처장협의회장(극동대 입학처장)

유인영 전국대학교입학처장협의회장(극동대 입학처장)
유인영 전국대학교입학처장협의회장(극동대 입학처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전제로 하여야 가능하다.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유경쟁이기 때문에 ‘자유’는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지속적으로 대학에 자유를 제공하고 있다. 어떤 대학에는 참 고마운, 하지만 어떤 대학에는 다소 부담스런 이 친절을 모든 대학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된다. 

‘대학의 자율화 확대’는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정책 기조였으니 대학에 자유의 바람이 분지도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자율’이라는 보기 좋은 포장지로 감쌌지만 그 내용은 ‘경쟁’이다. 당시 대통령은 성공한 기업인 출신답게 대학에도 기업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전국 대학을 무한 자유경쟁 체제로 내몰았다. 2008년 1월 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했던 전국 대학의 총장들은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이명박 당선인의 대학 자율화 확대 공약에 희비가 엇갈렸다. 주로 수도권의 대학들은 기대감을 나타낸 반면에 비수도권 대학의 총장들은 깊은 우려감을 나타냈었는데 2022년 현재 그 우려들은 ‘기우’가 됐을까? 

정부의 개입이 갈수록 줄어들고 각 대학들의 자율권이 더 많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각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투자하며 선의의 경쟁을 해 왔고 지금까지 저마다의 전략으로 잘 운영하고 있다. 실상은 잘 버텨온 것에 가깝지만 최소한 겉으로 봤을 때 큰 문제가 없어 보이기라도 했던 것은 정부 정책이 잘 맞아 떨어져서가 아니라 학령인구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해가 바뀔수록 급감하는 학령인구로 인해 그동안 감춰진 대학들의 실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민국 대학들이 위기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대학 관계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비수도권 대학의 위기이며, 더 엄밀히 말하면 비수도권 사립대의 위기이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으며 예외적인 대학도 존재한다. 대학 자율화에 대한 비수도권 대학 총장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경쟁을 통해 망하는 대학도 나와야 한다는 당시 이명박 당선인의 주장도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입시는 대학들이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전쟁이 됐다. 신입생 경쟁률과 충원율은 그 결과에 따라서 잘 되는 대학의 필수 선순환 요건이 될 수도 있고 잘 안 되는 대학의 악순환 요건이 되기에 대학들은 신입생 모시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비수도권 사립대는 학생들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자율경쟁 체제 하에서 도태되는 대학들은 그들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고 학령인구가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도태될 대학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두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의 섭리 아닌가?  

전국 대학들의 2022학년도 입시 현황을 보면 어릴 적 했던 부루마블 게임이 생각난다. 땅과 건물이 많은 플레이어에게는 더 많은 이용자가 몰리고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수입이 발생한다. 그리고 발생된 그 수입으로 다시 더 많은 땅과 건물을 사고 더 많은 수입을 올린다. 반면 땅과 건물이 적은 플레이어는 수입보다 많은 지출에 가진 재산을 팔아가며 근근이 버텨보지만 결국 파산에 이르고야 마는 빈익빈부익부의 전형을 보여줬던 게임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나머지는 모두 파산하는 것이 이 게임의 결과이다. 이 게임은 끝을 봐야하는, 말 그대로 ‘게임’이었기 때문에 이런 구조가 가능했지만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이며 시장경제체제인 대한민국이지만 모든 것을 자유방임에 맡기지 않는다. 보호해야 할 것은 보호하고 제한해야 할 것은 제한을 하는 등, 정부가 관여하여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할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다. 정부는 국가의 모든 분야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미 2003년 4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켜 지역 간 불균형 해소와 지역의 균등한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의 수도권 집중화와 비수도권 사립대의 소멸은 정부 정책 기조인 지역균형발전 방향과도 정면으로 상충되는 심각한 문제다.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의 격차는 대한민국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축소판이다. 지금도 수험생들 사이에서 ‘인서울’이라는 단어가 입시 성공의 뉘앙스를 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의 경쟁은 출발선부터가 다른 불공평한 경쟁임을 인정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균형발전을 통해 지역 간 격차를 없애고 특정 지역에 대한 우월인식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가 그런 토대를 만들어 주었는지 반문해 본다. 이런 기본적인 토대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들을 무한경쟁 체제로 내몰고 “알아서 살아남아라” 하는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에 따른 많은 문제가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변화는 필요하다. 그것이 대학의 수를 줄이든 정원을 줄이든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지만 확실한 것은 균형적인 축소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상황이 다르고 국립대와 사립대의 상황이 다르다. 현 대한민국의 환경은 이들을 한데 묶어 경쟁시키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현 상황을 방치한다면 결국 한쪽으로 편향된 특정 부류의 대학들, 다시 말해 비수도권 사립대 중심으로 문을 닫게 될 것인데 과연 이것이 정부가 바라는 바인가? 결국 비수도권 사립대들이 줄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때 가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급하게 뒤늦은 미봉책들을 쏟아내게 될 것이다.    

많은 대학들이 신입생 충원과 대학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지금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당장의 미봉책이 아닌 거시적인 안목으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 주요 후보들의 교육·입시 관련 공약들을 보면 많은 걱정이 앞선다. 모두가 마치 짠 것처럼 입시의 공정성을 첫 번째로 내세우고 있다. 정책적 중요도보다 최근 이슈와 사람들의 입맛을 고려한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느껴져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대학가에서는 이미 ‘입시’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는데 ‘입시’가 없는 마당에 ‘입시’의 공정성을 가장 우선시 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 현실적이고 더 필요한 구체적인 공약들이 많이 나오리라 생각된다. 그 안에는 ‘지방대’란 카테고리 안에 있는 비수도권 대학들의 고충을 고려한 공약들도 반드시 포함되리라 기대해 본다. 올해 대선에 누가 당선될지 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대통령이 된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는 현명한 정책을 마련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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