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V 난청』으로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고통 받는 삶 담아내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소설가의 꿈…17년의 노력으로 꽃 피워
“소설적 문체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통계학 서적 내고파”

박정수 전남대 통계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고통 받는 삶을 담아낸 단편소설 『V 난청』을 썼다. 이로 인해 그는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박정수 전남대 통계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고통 받는 삶을 담아낸 단편소설 『V 난청』을 썼다. 이로 인해 그는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통계학과 교수가 쓴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팬데믹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을 실감나게 묘사한 소설 『V 난청』이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에 오르면서, 이 작품을 쓴 박정수 전남대 교수(62)는 소설가로서의 두 번째 삶을 향한 꿈을 펼쳐내는 데 성공했다. 소설 쓰는 통계학과 교수라니, 범상치 않다. 숫자와 그래프 속에 살던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들어 봤다.

그의 소설 『V 난청』은 쉽게 읽힌다. 우선 인물의 삶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매우 쉽다. 소설 속 주인공은 코로나19 확진자의 밀접접촉자로, 자신 역시 코로나19에 감염되지는 않았을지 두려워하며 문득 귀에 이상 증상이 생겼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문득 과거 군사 독재정권에서 고통 받았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박 교수는 이 두 가지에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했고 이를 소설에 그려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2년 넘게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딱한 처지에 놓인 우리의 모습을 소설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마스크를 써야 하고, 모임에도 못 나가죠. 그러면서 우리의 귀는 이전보다 많은 피로해졌습니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음성의 비중이 더 커졌고 배달이 늘어나니 오토바이 소음도 심해졌죠. 이런 상황이 과거 군사 독재 하에서 통제를 겪은 사람들의 상황이나, 항쟁 속 폭발음으로 인해 청각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함을 느낍니다. 양성인지 음성인지 모르는 채로 결말을 맞이하죠. 바이러스 감염에 있어 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바이러스로 인한 괴로움을 마냥 가볍게 그리고 싶지 않아, 그 무게감을 역사적 사실과 연결해 표현해보고자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지금은 현실이고 개인이 겪는 일이지만, 먼 훗날에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일이죠.”

박 교수는 소설에 많은 공을 들였다. 사소한 장치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설정했다. 코로나19라는 이름에서부터 독자가 피로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소설 속에서 ‘코로나19’를 바이러스를 뜻하는 ‘V’로만 표현했다. 덕분에 독자들은 익숙한 상황을 보면서도 주인공의 입장을 낯설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면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주인공의 동선과 지명은 고유명사를 그대로 차용했고, 캐릭터들의 표정, 말투는 구체적으로 그림 을 그리듯 묘사했다. 주인공이 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채 끝맺는 결말에도 그는 희망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소설 결말 부분에 이르러, 난청으로 고통 받던 주인공은 아름다운 고향의 소리를 듣고 싶다는 간절함을 드러냅니다. 군부 독재에 맞서 싸워 끝내 자유를 맞이했듯이, 코로나19도 잘 견디면 더 좋은 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개인의 선택권 없이 맞이한 상황이지만,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소망도 담고자 했던 것이죠.”

문학을 전공하기는커녕, 평생을 통계학에 매진해온 그였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이루지 못한 소설가라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무려 17년간 소설을 쓰기 위해 준비했다.

박정수 전남대 통계학과 교수
박정수 전남대 통계학과 교수

“중‧고등학교 시절, 소설을 즐겨 읽었고 여러 작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자연스레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하지만 대학 입학을 앞두고 ‘이과로 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던 아버지의 말씀을 따랐고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를 하게 됐습니다. 통계학 공부를 할 때나 교수가 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소설은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이 45살이 되던 즈음,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고 집안도 안정이 됐으니 소설을 써보자 싶었죠. 소설 창작반 같은 곳의 문을 두드려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결과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인생은 60살부터’라는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냈다는 것일지 모른다. 현실을 살면서도 꿈을 잊지 않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나이가 들어 하려니 실력이 느는 속도가 젊은 사람보다 더디긴 했지만 습작을 해보고 평가를 들으며 꾸준히 배웠습니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려니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60세가 넘으면서 조바심이 생기더군요. 10년 이상 해 온 일인데, 이제는 정말 내 이름을 알려봐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지난해에는 좀 더 집중에 소설을 썼습니다. 문학 아카데미에 가 보면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고, 직장 생활을 하거나 주부들도 많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은 4050, 더 나이 드신 분들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통계학 교수로서의 여정도 마무리를 할 때가 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소설가 박정수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소설만큼이나 많은 애정을, 더 많은 시간을 들여온 통계학 역시 완전히 놓지는 못할 것 같다.

“2,3년 뒤 정년퇴직을 한 뒤에는 단편집을 출판하고 싶어요. 그간 써놓은 습작들이 10여 편 이상 되는데, 그 중 그럴듯한 것을 잡아 퇴고를 좀 해서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계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설적 문체로 쉽고 재미있게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소설의 핵심은 재미와 감동인데, 통계학 이론도 그렇게 써서 책으로 내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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