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목불인견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건만 정치권은 자고 일어나면 꼴불견이 하나씩 늘어난다. 역대 대통령선거 중에 이렇게 혼탁한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AI, 로봇,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무속인 논란이 웬 말인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무속인 수행원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윤 후보의 정치 입문 시절부터 함께한 조직으로 알려진 네트워크본부에 전 아무개란 사람이 각종 사안마다 윤 후보에 조언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고 본인 또한 이를 자랑삼아 주변에 말하고 다닌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부랴부랴 국민의힘은 네트워크본부를 해체했지만 한심한 노릇이다.

윤 후보의 무속 논란은 손바닥에 써놓은 王자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설마했던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제1야당의 대선 후보 캠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최측근 역할을 하던 인물이 무속인라니 혀를 찰 일이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서원 씨(최순실에서 개명)가 오방색을 운운하며 굿판을 벌였다는 소문이 돈 것이 불과 5~6년 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후보의 주변에 무속인이 있다는 소문이 계속 돌았지만 의혹에 불과하다며 일축하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향후 국가 중대사안을 무속인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추론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차라리 대선 후보들간의 자질 문제와 케케묵은 진영 논리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치인이 점을 보러다니는 일은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상당히 오래되기도 했고 정치인 개인을 생각한다면 일정 부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개인의 판단을 위한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무속인을 동행하고 무속인이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는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정치권의 무속 논란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커피 한 잔의 여유일까. 뜬금없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 상황이 커피 생태계와 비슷해 보여 하는 말이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은 에티오피아에 있는 열대림 안이었다. 커피나무는 주변의 큰 나무들이 만들어놓은 그늘 밑에서 천천히 자라며 여러가지 향을 열매에 담아내고 그렇게 느리게 자란 덕분에 특유의 향을 우리가 느낄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커피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숲을 없애고 커피나무만 심기 시작했다. 빠르게 많은 양의 생산을 원하는 현대식으로 커피 열매의 재배 환경이 바뀌면서 햇빛만 받아 올곧이 자라면서 커피 본연의 향은 없어졌다.

커피의 맛과 향은 원두 속에 있는 자당 성분이 결정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늘에서 자란 커피나무의 열매가 햇빛만 받고 자란 열매보다 자당 성분이 더 많은 것은 한 연구소의 연구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선거철만 되면 말도 안되는 공약 남발에 제 아무리 병불염사가 허용된다지만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심산으로 양산되는 공수표 때문에 정치 생태계는 망가진지 오래다. 커피나무야 모두 뽑고 다시 심으면 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발본색원하기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돌이켜보면 커피나무의 생태계가 주는 교훈은 느림의 미학이다. 다른 나무들 밑에서 그늘만 보며 천천히 자란 덕에 키는 작지만 그 다른 나무들의 향을 전부 배워 담아낸다. 그렇게 열대림 안에서 생성된 아열대 기후에 맞춰 자라면서 커피 열매 본연의 멋을 뽐내고 우리에게 향긋한 맛을 선사해 왔다. 가짜 정보는 빠르게 양산되지만 진실은 늘 느린 법이다. 본연의 맛이 이상해 여러가지 조미료를 첨가하면 혀는 잠시 속일 수 있어도 건강은 속일 수 없는 것이 이치다.

흑호로 불리는 임인년 새해가 어느 덧 한달이 다 돼가고 설날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혼탁해진 정치권을 보며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는 커피 한 잔이 제격이다. 위스키 테이스팅하듯 커피 한 모금 입에 물고 목으로 넘기기전에 코로 한 번 향을 뿜어보는 재미를 즐기면서 설날 이후의 계획도 점검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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