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를 맞이하는 대학가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봄을 시샘하는 늦추위가 세인의 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하듯 수년간 누적돼 온 대학 재정 위기는 구성원들의 움츠린 어깨를 더욱 옥죄고 있다. 

평시라면 졸업식 등 학사 일정과 신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을 대학가에 예년에 없던 재정 관련 회의가 자주 개최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로 빨간등이 켜진 대학 재정상황을 교직원들에게 설명하고 고통 분담을 구하는 회의로 분주한 모양새다.

신입생 미충원에 따른 등록금 결손상황이 보고되고 학과 구조조정 및 인건비 조정을 비롯한 경비 절감 방안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모양이다. 대학 당국과 구성원간의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고 대책 없는 현실에 낙담한 구성원들의 체념과 한탄이 회의장을 가득 채우고 있단다.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는 듯 인건비 깎는 대학들이 늘어나고 있다. 변변한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대학에서 등록금 결손액만큼 인건비를 삭감해 최소 교육비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눈물어린 호소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립대학은 심각한 재정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학령인구 감소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13년간의 등록금 동결, 입학금 폐지 등으로 인한 재정수입 감소로 대학재정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본지는 대학 재정악화가 초래하는 문제점을 지적해왔고 대학의 구조조정과 정부지원 확대 필요성에 대해서 집요하게 여론전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대학은 최소한의 교육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재정절벽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말로만 듣던 대학파산이 현실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운영의 묘를 살려 버텨왔던 일부 대학도 대량 정원미달 사태를 겪으며 재정운영상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대학은 인건비 비중이 높은 노동집약적 사업체라, 구조조정을 하려면 인건비부터 손을 보려 한다. 그러나 인건비는 생존권의 문제다. 결코 타협하기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부분 대학에서 수년 간 인건비가 동결됐다. 물가상승률에 따른 급여 인상은 고사하고 지급됐던 수당마저 폐지하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교직원들에게 추가적 급여 삭감은 더 할 수 없는 고통으로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일부 수도권 대학을 제외한 지방 소재 사립대학의 급여수준은 현재도 매우 낮은 편이다. 한때 ‘신이 내린 직장’으로 선망의 대상이 됐던 대학도 이제는 ‘신이 포기한 직장’으로 전락된 지 오래다. 대학가에는 갓 졸업한 제자보다 적은 봉급을 받는 교수들이 즐비하다. ‘교직원=철밥통’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연 3000만 원도 못 받는 대학교수들이 대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자료(한국사학진흥재단, 2021년 대학 재정분석보고서)에 의하면 반값등록금 정책이 실시된 이후 사립대학 교비회계의 총 결산규모는 해가 갈수록 감소되어 2020년도에는 전년 대비 4562억 원이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13년간 누적된 감소금액은 가히 천문학적 수치라 할 수 있다. 교비회계 수입 중 등록금 및 수강료 수입이 56.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부분이 큰 폭으로 감소된 것이 문제다. 학생들의 직접 교육에 사용되는 관리운영비, 연구학생경비가 대폭 감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정상적인 교육이 어렵다. 

이런 분석결과는 사학의 재정난이 온전히 대학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대학재정 형편을 외면하고 고집스럽게 반값등록금 정책을 고수해온 당국의 정책실패로 보는 것이 맞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금의 대학재정 위기는 대학만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 재정지원을 구실로 대학의 책무성만을 강조해온 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의 재정적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다. 

교육에 대한 국가적 책무성은 헌법적 규정 사항이다. 국가가 할 일을 민간에서 대신하고 있는데 어려운 사정을 외면해서 될 말인가? 대학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할 정부 차원의 획기적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대선국면이다. 각 후보자들의 공약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교육대통령을 자임하는 후보자를 찾을 수 없다. 교육공약, 특히 대학교육 관련 공약은 뒷전으로 밀린 느낌이다. 무한경쟁 시대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우수한 인적자원뿐이 없는데 위정자들이 너무 소홀히 생각하는 듯하다. 이래서는 미래가 없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그 기세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우수인재 양성의 책무를 지고 있는 대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OECD 교육 선진국들은 정부가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현행 고등교육법에서는 근거규정이 미약하고 강제규정이 없어 실효성 있는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칫 타이밍을 잃기 전에 대학 재정지원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현 21대 국회에도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대학균형발전특별회계법 등 고등교육재정지원 관련 법률안들이 발의돼 있다. 이번만은 어정쩡하게 끝내서는 안 된다. 이들 법률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여야 각 당이 긴밀히 협력해야 함은 물론, 대선후보자들 또한 지금의 엄중한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해 대학 재정위기 돌파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촉구한다. 

< 한국대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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