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종혁 서강대 총장

심종혁 서강대 총장
심종혁 서강대 총장

좀 넓은 지평에서 보면 대학만큼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위기를 직접 경험하는 조직은 드물 것이다. 한국 대학의 위기에 대해서는 입학 연령 인구의 급감과 함께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에 64만 명이었던 출생아 수가 2021년에는 약 26만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대학 입학자원 부족 현상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학 그리고 소위 한국에서 상위권 대학이라고 불리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에서 모두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과는 상황이 아주 다르겠지만 재정이 건전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하버드대학교는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회계연도 기준 약 114억 원의 손실을 내었고, 2021년도에도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또한 구글에서 2020년부터 새롭게 온라인으로 제공하기 시작한 구글 경력 인증서 프로그램, 온라인 교육 플랫폼(서비스) 코세라(Coursera), 그리고 캠퍼스가 없으면서 강의는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네르바(Minerva) 대학은 우리에게 대학의 존재와 형태, 운영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보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간 평균 학비 약 4000만 원의 미국 대학과 평균 연간 등록금 770만 원 수준(2019년 사립대학교 결산 공시 기준)인 한국의 대학은 1년 등록금이 약 100만 원 수준인 구글과 경쟁을 해야 한다. 또한 수료자 수가 7700만 명에 달하고, 2000개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20여 개 학위과정과 수천 개의 단기 교육과정을 제공 중이고, 더욱이 매출의 50% 이상이 미국 이외에서 발생한 코세라와 전통적인 대학들이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해방 이후로 ‘제도’의 틀 안에서 한국 내 또는 지역 내 경쟁에 익숙해진 한국의 대학들은 이제 무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인재 육성의 의미는 어떻게 보면 공허할 수 있다. 

특히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비율은 대학마다 다르지만 사립대학재정통계연보에서 발표한 ‘2019년 결산 기준 등록금 의존율 53%’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재정 수입원은 여전히 등록금이다. 등록금 수입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대학들도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과 연구비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대학의 관계자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연구비 지원의 규모는 이공계 교원 수와 높은 상관 관계를 보이는 것을 고려한다면, 인문 사회계열 비중이 높은 대학들의 경우 등록금 의존율을 낮추고 재원을 다양화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의 대학들은 환경적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들은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의 총장으로 이러한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1986년 개봉된 영화 ‘미션’이 떠올랐다. 아마 40대 이상의 연령이라면 한 번쯤 보았거나 들어보았을 명화 중의 하나로, 남미의 오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순교하는 가톨릭 수도자들의 활동이 아마존의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큰 감동을 주었다. 이들 선교사는 ‘예수회’ 소속의 신부들로 동방 항로 및 신대륙의 발견에 따라 미개척 지역으로 선교사업을 위해 파견됐다. 이들은 논리학, 수학, 과학, 법학 등 학문적 지식이 뛰어난 지성인들이었다. 특히 현지의 언어와 문자를 배워서 현지인들의 사상과 문화에 철저하게 적응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가톨릭을 떠올리겠지만, 역설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했다는 것은 변화에 적응이 늦고 보수적이라는 대학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이 구글의 온라인 교육과정이나 코세라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이미 기성화 된 2차원적인 온라인 환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것이 필요한 점에서 더욱 그렇다. 나라마다 다른 특성을 갖고 있지만 대학의 재정도 상장기업인 구글과 코세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수입 모델의 발굴을 통해 이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일부 대학 및 교육계에서도 이러한 현실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아직 그 수준은 부족하다. 여러 대학이 창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들을 명목상으로는 강조하고 있지만 학내에서는 공과 계열만의 이슈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벌어들인 전 세계 수익이 약 1조 원을 넘고, ‘킹덤’의 성공과 함께 네이버 웹툰이 프랑스 웹툰에서 여러 주간에 걸쳐 1위를 기록한 것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창업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공학 기반의 창업모델과 더불어 인문사회의 콘텐츠가 이들과 융합하는 창업모델로 방향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만든 차세대 플랫폼에 우리의 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유통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을 통한 수익은 대학의 지속적인 발전에 다시 선순환적으로 도움을 주어 대학의 미래 운영 방식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버스(Metaverse)의 시대가 언택트(Untact) 및 온택트(Ontact) 사회로의 전환에 의해 재조명받으며 가속화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한국의 대학들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예수회 수도자들이 일찍이 그랬던 것처럼 대학이 가상공간의 개척을 선도하는 것은 대학의 사명이 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마인크래프트가 구현한 가상공간 면적이 지구의 8배인 40억km²인 것처럼, 약 22만km²인 한반도를 무한히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여러 개의 복수 아바타를 만들 수 있기에, 가상공간에서는 학령인구의 감소도 문제도 없을 것이다. 전 세계 학생들이 한국의 대학에 가상공간을 통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중심의 가상공간에서 상점이 열리고 지역 상인들이 참여해 홍보가 이뤄진다면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강대학교는 개교 이래 개척 정신으로 무장한 대학이었다. 그리고 개척의 방향은 항상 불확실한 곳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이는 서강대의 가치였다. 최근에는 ‘메타버스 비즈니스, 테크놀로지, 엔터테인먼트’의 3개 전공으로 구성된 메타버스 전문대학원을 국내 최초로 설립했다. 또한 LG전자 그리고 스마일게이트와 함께 일반대학원 내 인공지능전공을 설립했고, 이공계열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계열 학생도 선발해 장학금을 주고 취업까지 연계하고 있다. 정부에서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아온 창업지원단 프로그램을 민간 창업보육기관인 ‘오렌지플레닛’과 함께 글로벌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국적 규모의 창업 프로그램 개발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서 ‘산학협력형 창업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한다. 

중세 이후 대항해 시대의 탐험가들처럼 한국의 대학들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개척한다면 한국의 대학에서는 해가 지지 않을 것이고, K-University의 붐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벤처형 대학의 새로운 운영 및 서비스 모델을 개발한다면 10년 뒤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대학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변화는 시작됐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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