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 ‘3초 컷’ 인기강좌 ‘성과 문화’ 강의, 성 칼럼니스트·성교육 상담가로 25년째 활동
국민의힘 ‘젠더 갈라치기’ 전략은 패착…성차별 혐오 이용한 정치인들 문제 꼬집어
언론이 젠더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려…선한 영향력 미치는 방향으로 성찰해주길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Sexual Health/Sexual Harmony/Sexual Happiness.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행복한 성문화센터’에서 만난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보건학 박사)의 명함 뒷면에는 ‘3H-Sex’라는 붉은색 글씨가 선명했다. Harmony(조화)라는 단어에 어쩔 수 없이 눈길이 더 가게 되는 까닭은 유독 ‘분열’이 두드러졌던 20대 대선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25년째 성교육 상담가로 활동해온 배정원 교수. (사진=본인 제공)
25년째 성교육 상담가로 활동해온 배정원 교수. (사진=본인 제공)

성 칼럼니스트와 성교육 상담가로 25년째 활동해온 배정원 교수는 20대 대선의 특징을 ‘세대와 성별의 갈라치기’로 규정했다. 실제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 그리고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으로 모여들고 있는 2030세대 남성들을 결합해 대선에서 승리하는 ‘세대포위론’을 줄곧 강조해왔다. 설혹 40대와 50대에서 밀리더라도 청년층과 노년층으로 둘러싸면 무조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게 세대포위론의 요지다.

이 대표의 세대포위론은 20대, 특히 젊은 남성을 전국 선거판의 주요 변수로 활용한 첫 대선 전략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배 교수는 세대포위론과 같은 젠더 갈라치기 전략이 나타난 원인으로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20대 남성의 몰이해를 교묘하게 부추긴 정치인’을 제시했다. “요즘 20대들이 얼마나 힘들어요. 20대 남성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교제살인 등의 공포는 물론이고 졸업 후 채용과 승진에서의 차별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20대 남성들의 관점에서는 군대 문제가 가장 큰 불평등인데 일부 정치인들이 20대 남성들의 불평등을 상대 성별의 탓으로 전가하도록 이용했죠.” 그는 또 “남성과 여성 전부의 마음을 얻으면 되지 왜 갈라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배 교수는 이 같은 ‘젠더 갈라치기’ 전략이 이득을 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의 젠더 갈라치기 전략은 이미 패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2030 남성들이 윤석열 당시 후보를 지지한 데에는 여성혐오 정서보다는 부동산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실책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여성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젊은 남성들이 현수막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일도 있었다. 2030 남성들로 구성된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은 지난달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대남’은 있어선 안 될 차별적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혐오와 차별로 얼룩진 퇴행적인 정치 문화를 바로잡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여성의 투표율에 대한 무시도 한몫했다고 봤다. 배 교수는 “국민의힘에서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보다 낮다고 주장했는데 여성들의 투표율은 10년 전부터 이미 남성보다 높았다”며 “특히 20대 여성들은 투표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왔는데 이걸 무시했기 때문에 그들의 젠더 갈라치기 전략은 패착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20대 남성의 투표율은 68.1%였고 20대 여성의 투표율은 70.2%였다. 이번 20대 대선에서도 20대 남성의 투표율은 62.5%, 20대 여성의 투표율은 68.4%로 조사됐다. 

갈등과 혐오를 봉합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혐오를 조장했다는 게 배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화합을 통한 희망의 메시지를 내야 할 정치권에서 갈라치기를 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행태가 정치에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배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장혜승 기자)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배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장혜승 기자)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20년 가까이 대학에서 성에 대한 강의를 해오고 있는 배 교수가 보기에 성별 갈등 지형도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20대 남성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성인지 감수성’은 서로가 어떤 상황인지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며 “요즘 20대 남성들은 성관계 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동의를 구하지 않을 때 본인에게 돌아오는 피해를 인식해서일 수도 있지만 성인지 교육의 효과가 분명히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남성 페미니스트인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의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한다고 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왜 이런 책을 읽게 하느냐”는 남학생들의 항의도 있었다. 배 교수는 “남의 의견을 듣는 게 경청이다. 경청은 그 사람이 맞거나 틀리다고 판단하는 재판관의 입장에서 듣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내 가치관과 비교하면서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말해준다. 결국 민주주의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라는 게 배 교수의 생각이다.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배 교수는 수강생들의 독후감 중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했다. 한 남학생은 “여성들이 혼자 산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게 두려울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고 썼다. “무지했다. 여성들의 어려움을 몰랐고 미안했다”는 남학생도 있었다.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도 강조했다. 배 교수는 “정치권과 언론이 각성해야 한다”며 “특히 언론이 젠더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방향으로 성찰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030세대 남성과 여성들에게도 잊지 않고 한 마디를 남겼다. “이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에요. 기성세대가 만든 불공정한 시스템의 문제인 거죠. 남성과 여성이 힘을 합쳐 시스템을 부서뜨려야지 왜 서로를 부수려고 하나요. 똘똘 뭉쳐서 그 불공정한 시스템을 부숴줬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이나 정치권이 조장하는 성별 갈등과 갈라치기 구도에 매몰되지 말고 똘똘 뭉쳐서 불공정한 시스템을 해체하고 더 나은 사회로 이끌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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