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혁진 대종상영화제 사무국장(연출가)

조혁진 대종상영화제 사무국장(연출가)

‘동화처럼 예쁘게, 영화처럼 아름답게, 뮤지컬처럼 열정적으로’

오랫동안 내 삶의 모토가 되어줬다. 고3 수험생이 되기 전 마음을 다잡기 위해 대대적인 방 청소를 하다가 발견한 오래된 일기장 속에서 발견한 소중한 한 줄이다. 유치한 글 솜씨에 피식피식 웃다가 일기장을 넘겨보면서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일기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한 동안 이 문장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날 이후 이 한 줄의 문장은 내 삶의 기준을 잡아주는 앵커가 됐다.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내 삶의 모토는 바뀌지 않았다. 늘 모토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모토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연출가로 살아가고 있다. 

사실 모토는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모토의 사전적 의미는 ‘일상의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 지침이 되는 신조’다. 칼럼을 통해 여러분과 만나는 지금 이 순간 어떤 모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가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필자의 학창시절에 유행했던 모토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꺼내볼까 한다. 

‘현재 이 순간을 즐겨라’(Carpe diem! 영어로 번역하면 ‘Seize the day’). 당시 많은 이들이 모토로 삼았던 명문장이기도 하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에서 대사로 사용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암스)은 ‘Carpe diem’을 자주 외치는데, 다음과 같은 대사들로 그 의미를 설명해준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강요 받는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학생들의 자유정신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즉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에서 누려야 할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키팅 선생님이 강변하던 ‘Carpe diem’은 결국 제자들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자들은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Oh, Captain my Captain”을 외치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수많은 이들의 모토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Carpe diem’은 지금 이 시대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모토로 다시 나타나 회자됐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가 그것이다. X세대와 MZ세대가 ‘Carpe diem’과 ‘YOLO’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인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생각만 해도 짜릿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급변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장황하게 나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한 문장의 모토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참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자신에게 맞는 모토를 정해 여기에 맞게 생활해보라고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물론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 각자의 판단에 따르면 된다. 

다시 필자의 얘기로 돌아와서, 나만의 모토를 정해 살아간다는 것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필자의 인생 모토가 ‘동화처럼, 영화처럼, 뮤지컬처럼’으로만 정해졌다면 그냥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그런 인생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단서를 붙였다. ‘예쁘게’, ‘아름답게’, ‘열정적으로’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예쁘고 아름다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열정적일 수는 없다. 인생을 살다보면 밉고 추한 상황도 마주해야 한다. 때로는 대충 무관심하고 게으르게 살고 싶은 유혹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 지점에서 인생 모토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앵커가 되어줄 수 있다. 용기를 주고 힘을 낼 수 있게 해준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보다 내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렇게 나는 동화, 영화, 뮤지컬의 모든 배역과 모든 스텝의 주체가 됐다. 내가 만들어가는 동화, 내가 만들어가는 영화, 내가 만들어가는 뮤지컬이 인생 모토에 맞춰 펼쳐지게 된다.  

필자의 이런 생각들은 대학 시절을 보내면서 더 단단해지고 구체화될 수 있었다. ‘X세대’라 불리고 ‘마루타’라고 해석하며 단군 이래 최고의 개성파 94학번이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시대가 너의 꿈을 빼앗았다”, “시대가 너를 돕는다”와 같은 대사를 들으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그런 시절이기도 했다. 

대학 입학 후 나의 모토를 현실에서 테스트할 수 있었던 곳은 대학방송국이었다. 수습기간 1년 동안 30년간 전통으로 내려오던 수습교육을 받느라 정신 없었다. 2학년 때에는 TV방송을 준비하기 위해 매주 전국을 돌아다녔다. 특히 방학 동안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학교 선배들을 찾아다니면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밤잠을 설치면서 리니어 편집기와 넌리니어 편집기를 모두 공부해야만 했다. 3학년이 되자 TV방송을 개국하고 복학을 한 이후에는 산학연 창업보육센터에서 홍보용 CD를 제작하고 인터넷 방송국 개국을 준비했다. 삐삐에서 휴대폰으로, 수기에서 워드로, 오디오방송에서 TV방송으로, 리니어에서 넌리니어로, 아날로그에서 처음 겪어보는 인터넷이라는 세상까지. 여기에 나열을 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는 훈련을 해야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겪어야했다. 졸업은 IMF와 함께 찾아왔다. 역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이러한 이유로 내게 대학은 커다란 연습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드맵은 모두 사라졌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했기에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연습실 말이다. 이 시절 나는 ‘반푼이’였다. 완벽한 성공도 이루지 못했고 완벽한 작품도 만들지 못했다. 아직도 나의 동화, 나의 영화, 나의 뮤지컬은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 나는 그저 무대에 있을 뿐이다. 내 인생의 모토처럼 살아갈 뿐이다.

27년이 지난 지금, 대학을 바라보면 문 닫힌 연습실 같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었고 학생들은 그 무대에 올라가 있다. 자, 그럼 주인공들은 어떤 연기를 펼쳐나갈 것인가? 일단 각자 현재에 맞는 모토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 새로운 출발선이 그어지기 전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출발하길 권한다. 만약 문화예술 관련 직종에 관심을 가졌다면 상황이 좋다. 이제 전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멋진 활약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의 꿈을 키워준 영화 속 대사를 전달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현실 속의 우리의 삶은 누가 뭐래도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엔딩이 아닌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내 삶이 비극이냐? 희극이냐?’는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달린 일입니다.” -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1988) 中에서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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