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지난달 30일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선 10개 거점국립대 총장과 대통령직인수위·국회·교육부 관계자 등 30여 명이 참석한 금년도 제1차 고등교육 정책 포럼이 열렸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10개 국가거점국립대학은 지역과 국가 균형발전을 이끌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주어졌다는 게 논의의 기조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학과 인구구조의 변화, 대학 구성원의 안이한 대응과 기득권 지키기 등의 문제도 제기됐다. 인구와 자원의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선 지역대학의 육성이 최선의 해결책이고, 거점국립대를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학들이 곧 출범할 신정부에 요구하는 자리였다. 

#이에 앞서 지난달 24일엔 전국 24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전국대학생네트워크’가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금 의존율을 낮추는 정책을 촉구했다. 윤 당선인의 공약대로 대학의 규제를 완화하고 거점대학에 지원을 집중하면, 규제 완화와 자율성 확대로 그동안 억제됐던 등록금이 올라 학생들이 피해를 볼 거라는 우려를 전달했다. 일반 대학 190개 중 156개가 사립대학인 상황에서 국립거점대학에만 관심을 두면 소규모 대학과 사립대학은 소외될 수밖에 없고, 대학재정의 절반 이상이 등록금 수입인 현실을 고려해 보편적인 지원책을 주장했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 측의 요구였다. 

주체마다 내놓는 다양한 요구에는 공감과 우려가 함께 한다.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선 지금보다 정부의 대학재정을 더 늘여야 하는 건 맞다. 교육의 수요자와 공급자 그리고 공급자 간 입장의 차이가 분명한 게 문제다. 대학의 교육은 공공재인가. 어디까지 국가의 재정으로 공공성을 보장할 것인가. 그렇다면 수요자 스스로 선택하는 교육 서비스의 가격 결정을 자율에 맡길 수는 있는 걸까. 정부가 그동안 교육의 시장가격을 규제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고, 예산을 투입해 모든 대학의 재정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도 분명하다. 90년대부터 급격히 늘어난 대학 대부분이 사학인 현실에서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신정부 출범 때면 표출되는 기대감이 이번엔 특별하고 절실하다. 지금 대학이 처한 현실이 교육제도의 개선, 선진화, 혁신, 개혁을 반복해서 논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모든 대학의 재정은 부실해졌다. 정원미달이 심각한 일부 대학은 이제 한계상황까지 몰려 있다. 기업이라면 법정관리를 들어갈 만큼 경영난이 심각한 것이다. 대학의 운영자와 학생, 지역사회와 국가의 균형발전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지금의 위기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관계 법령과 교육행정의 기능을 심도 있게 논의하다 보면 적당히 미봉책을 찾는 수준에서 개혁이 그칠지도 모른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원점으로 돌아가 접근해야 한다. 대학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족하는 교육시장의 작동원리를 먼저 생각하자는 얘기다. 

전 세계적으로 대학은 위기다. 종전의 콘텐츠와 전달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전환은 대학이 적응해야 할 새로운 환경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인생의 로드맵을 완성할 세상이 만들어진 것도 또 다른 도전이다. 점차 메타버스 환경으로 바뀌면서 교육의 공급망이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까지 경험한 수요자들은 혁신을 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그 위기가 앞당겨졌다. 출생인구가 정점을 찍었던 1970년생 100만6000명이 진학하던 90년대 전후의 대학은 상대적으로 풍요로웠다. 2000년까지만 해도 82만7000명이던 대입 학령인구가 금년엔 41만4000명으로 줄었다. 작년에 출생한 26만3000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2040년까지 더해지게 될 위기는 불 보듯 뻔하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모두 생존할 수 없는 인구통계의 확실한 불균형이다. 근본적인 해법이 그래서 절실하다. 

정부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최선의 정책이 어렵다면, 최악을 피하고 역기능과 순기능을 비교해 큰 쪽을 택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교육부 폐지를 논하는 건 무모하고 성급하다. 그동안 교육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문제부터 짚어야 한다. 대학을 지원하는 현행의 고등교육 정책은 옳은 방향인가. 교육부는 그동안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평가와 재정지원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긍정적 성과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만성적으로 재정난을 겪는 대학의 입장에선 국고지원에 목을 매었고, 혁신을 위한 노력은 획일적인 평가 기준의 틀 안에 갇혔다. 기본역량진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대학마다 혁신과 그 성과를 추구하지만, 객관적인 평가의 잣대를 염두에 둔 혁신으론 진정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통된 기준으로 모든 대학을 평가하는 건 오히려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저해하는 역기능만 더한다. 평가점수로 서열이 정해지는 대학 간 경쟁과 제로섬 게임보다는 교육의 콘텐츠나 인프라를 공유하는 상생의 방식으로 바꾸고, 대학의 운영에는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만큼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은 늘어나고 대학의 재정부담은 줄어든다. 혁신을 촉진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최선이다. 

부실대학에 대한 퇴로도 마련해야 한다. 교육의 공급을 줄여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선 대학 간의 자유로운 인수·합병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에선 대학이 문을 닫으려 해도 재단이 청산되는 순간 잔여재산은 국고로 귀속된다. 그래서 정리되지 못하는 대학이 많다. 고등교육의 초기 인구 팽창기인 1963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사학의 운영권 이전을 제한하는 사립학교법(제35조)이 걸림돌이다. 구조조정이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설립자에게 적정한 지분을 챙기도록 하면 대학은 새 주인을 맞을 수 있고, 생태계가 유지되는 토양이 형성된다. 2019년 교육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대학혁신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3년이 넘도록 여전히 진전은 없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악용의 가능성이 우려되긴 하지만 대량 부도의 ‘폭탄’이 먼저다. 실천이 미루어지는 동안 대학의 상아탑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낡은 틀을 깰 정책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모든 대학을 가부장적으로 보살피려는 현재의 재정지원방식을 바꾸고, 꽉 막혀 있는 부실대학의 출구부터 찾아줘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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