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학술정보기획팀 부장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학술정보기획팀 부장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학술정보기획팀 부장

건축학자인 김광현 교수는 그의 저서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고딕(Gothic) 대성당을 두고 ‘돌로 만든 성서’라고 한다. 대성당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곧 건축이 말이라는 뜻이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인쇄된 책이 대성당이라는 건물을 죽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바꾸어보면 건축은 말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그의 주장대로 ‘성당이 돌로 만든 성서’라면, ‘도서관은 돌로 만든 책’이다. 물리적 공간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도서관들이 지난 자료들을 지하 밀집서고 형태로 저장하는 것과 달리 스페인 빌라오에 있는 비스케이 법정도서관(Biscay Statutory Library)은 전면 유리로 된 6층 건물을 지어 보관서고로 활용하고 있다. 책이 가득 찬 서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인류의 지식과 지혜의 전달자로서의 책과 도서관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최근 국내 대학도서관들은 이용자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또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든 접할 수 있는 쾌적하고 화려한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도서관의 근본적인 역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국가의 정치나 경제 하물며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구멍가게도 기본을 벗어나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광현 교수도 건축설계 시 이와 같은 점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건축설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 하나는, 건축설계는 매번 용도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며 그것을 이용하는 사회도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건물이든 특정한 사회를 위해,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용도를 위해 지어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면 건축물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주문생산품처럼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용도’를 단지 편리함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관점을 잠깐 멈추고 짓고자 하는 시설의 본래 목적을 되짚어보라. 모든 건축에는 이러저러하게 만들고자 하는 본래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는 늘 ‘시작’이라는 본질이 있다.

대학도서관의 시작 즉, 본질은 무엇일까. 대학도서관이 물리적 건축을 통해 구현하고 추구해야 할,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변한다고 해도 유지하고 지켜야 할 본래의 목적과 기준은 무엇일까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공간(Space)이 있는 그대로 주어진 물리적 실체를 의미하며 경험과 주관 등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하지 않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공간에 개인이 애정을 주고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장소(Place)가 탄생한다. 인간은 공간을 장소로 만들며 살아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장소는 인간 삶의 가치, 마음의 중심지가 된다.

대학도서관의 본질은 이와 같이 ‘공간’이 아닌 ‘장소’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도서관이 화려하고 독창적이며 최첨단을 지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어떻게 하면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이 자신만의 느낌과 사유를 통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학도서관은 수많은 지식 앞에 겸손함을 느끼고, 그런 지식의 전달자로서 인간의 역할을 기억하게 하는 모든 이용자를 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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