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환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이장환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이장환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코로나19 팬데믹 3년차.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빠르게 충격적으로 변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집콕의 시대를 경험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사적모임을 제한받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발(發) 생활 속 디지털화가 급속 진행되면서 모바일을 활용해 다양한 일들이 가능해졌다. 배달업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띵동띵동 ‘○○의 민족’ 앱 주문과 함께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음식이 조리 중이며, 이제 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팡’으로 주문한 신선식품이 당일 새벽 배송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수많은 음식과 상품을 주문할 수 있고 번개처럼 순식간에 바로 내 앞에 도착하는 마법 같은 플랫폼 시대에 살고 있다. 플랫폼(platform)은 일종의 ‘정류장’이다. 지하철, 버스와 승객이 만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정류장에 다양한 매장을 만들어 상품들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해 수익을 창출한다. 플랫폼은 승차요금 수익 이외에도 부가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많은 매출을 올린다.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용자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분산되는 순환구조는 물류와 유통의 중심이 되면서 많은 재화가 교환된다. 우리가 ‘플랫폼’에 주목하는 이유다.

사실 플랫폼은 모두에게 꿈과 가능성, 열린 공간으로 혁명적인 유토피아로 여겨졌다. 사람들이 이렇게 플랫폼을 환영하고 선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물품과 자원을 소유하지 않고 타인과 나눠 쓰는 경제 행위와 그 시스템)’ 때문이다. 플랫폼 시대 공유경제는 사용하지 않는 재화나 서비스를 누구에게나 효과적으로 제공하고 매개하는 중립지대다. 대다수 플랫폼 기업은 앱을 기반으로 이용자들에게 집, 자동차, 일자리, 여행, 음식 등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중개하면서 이익을 취한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직방, 야놀자, 알바몬, 쿠팡, 카카오택시 등이 대표적인 공유 플랫폼 기업인데, 이들은 ‘온라인 투 오프라인(online to offline)’을 지배하는 온라인 중개 플랫폼 시대를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노동 형태인 ‘플랫폼 노동’이 등장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 부동산 가격 폭등, 하늘 높이 치솟는 청년실업과 ‘위드 코로나’로 대량실업 및 소상공인의 폐업 등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플랫폼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서수 작가의 소설 《헬프 미 시스터》 주인공인 ‘수경’은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는 안전한 장소를 원하고 다시는 취직이 어려운 다른 가족들의 마지막 선택으로 ‘플랫폼 노동’을 찾았다. 수경과 어머니 ‘여숙’은 자차 배송, 남편 ‘우재’는 대리운전, 아버지 ‘천식’은 뚜벅이 음식배달을 시작한다. 코로나19 시대 보이지 않는 빈곤의 풍경을 빈틈없이 묘사하면서도 직설적인 화법과 비판을 통해 우리 가족의 플랫폼 노동 현실과 고단함을 땀땀이 담아낸다.

숫자를 통해 플랫폼 노동 현실을 좀 더 들여다보자.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3개월 동안 스마트폰 앱이나 웹사이트 등 온라인 플랫폼의 중개 알선을 통해 일자리를 얻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수입을 얻은 적이 있는 플랫폼 노동자가 약 220만 명이며, 이중 20~30대 청년은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플랫폼 노동이라고 하면 택배와 배달 대행을 떠올리기 쉽지만, 플랫폼으로 노동을 거래하는 영역은 날로 커지고 있다. 예를 들면 디자인, IT·프로그래밍, 게임, 영상·사진·음향, 마케팅, 번역, 비즈니스 컨설팅, 교육, 회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플랫폼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방식은 ‘임시직(긱, Gig) 노동’의 형태이며, 과거 고용주와 노동자의 고용 관계 방식이 아닌 플랫폼 기업이 제공하는 앱을 기반한 서비스 계약관계로 전환됐다. 긱 노동은 일종의 ‘주문·호출형’ 노동으로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고 필요할 때만 일하는 유연한 임시직 노동 방식이다. ‘배달 라이더’처럼 배달 대행 플랫폼에서 일하는 배달 노동자들은 자신의 ‘배달 건수’로 수입이 책정되며, 자신이 배달하고 싶지 않으면 비교적 쉽게 그만둘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 대행 노동자의 지위는 파편화되고 육체노동을 하는 배달 노동자는 목숨을 담보로 위험 노동을 하며, 디지털 기술과 감정서비스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는 비용 대부분이 개개인에게 외주화되는 형태를 띤다. 아담스-프라슬(Adams-Prassl) 옥스퍼드대학 법학 교수는 플랫폼 긱 노동의 속성을 저렴한 노동력 의존과 복잡한 공정을 개별 과업 단위로 나누는 ‘쪼가리 노동’으로 정의한다. 이는 노동자에게 사업의 위험을 전가하고, 노동법 적용 범위 밖 사각지대의 노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에 발표한 ‘플랫폼 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퀵서비스·화물운송 노동자, 음식배달 노동자, 웹툰·웹소설가, 플랫폼 택배노동자의 55%가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플랫폼 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어려움은 폭언·폭행에 그치지 않는다. 전체 플랫폼 노동자가 보수 미지급 경험이 43%, 무상 추가 노동 경험이 36%, 이외에도 업무상 상해에 대한 자비 치료 경험이나 업무상 손실에 대한 자비 배상 경험이 40%를 넘었다. 이처럼 플랫폼 노동자는 각종 위험과 부조리에 직면해 있으며, 이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재 지배적인 중개 플랫폼 노동방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술민주주의적 대안으로 사회 포용적인 플랫폼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먼저 플랫폼 사업자들이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자에게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알고리즘 기술의 플랫폼 노동 적용 방식이나 범위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배달·모빌리티 기업은 임금 책정 과정에서 노동자 수당, 노동 시간 등 근로 조건을 결정하는 근거를 산출하는 ‘알고리즘’은 영업비밀이라며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플랫폼 노동자들의 다양한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처럼 ‘커먼즈 조직 모델’이 필요하다. 지난 2019년 5월 1일 노동절에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이 ‘라이더유니온’을 설립해 배달노동자의 위험 노동의 심각성을 알리면서 노동 교섭권의 가능성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행될 수 있는 시스템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세 번째로, 윤석열 차기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이 요구된다. 과거 어정쩡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공허한 형식 모델로 인해 노동자 간의 갈등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슴 아픈 안타까운 사건이 많았다. 힘들겠지만 차기 정부는 대량 기술 실업과 불안정한 노동을 줄일 수 있는 강력한 중재력과 노동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 필요한 노동법과 정책 마련이 필요하며, 특히 안전하고 안정된 청년 노동 정책과 우리 사회의 따뜻한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