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굴기’ ‘미국혁신 경쟁법’ 중국·미국 등 반도체 주도권 싸움
국내 반도체 분야 향후 10년간 매년 1500명 인력 확보 시급
대학-기업 손잡고 ‘계약학과’ 방식으로 반도체 육성 나서
전문가, “부족한 반도체 인력 늘릴 수 있는 방안 찾아야”

지난해 산자부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반도체 산업기술인력은 3만6000명 수준으로 향후 10년 간 매년 1500명의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 (사진= 아이클릭아트)
지난해 산자부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반도체 산업기술인력은 3만6000명 수준으로 향후 10년 간 매년 1500명의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 (사진= 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반도체 인력 부족으로 기업들에서도 인재 선점 경쟁에 나서는 등 반도체 산업에 인력 수급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도 ‘반도체 초격차 확보 방안’을 발표하는 등 발등이 떨어진 불을 꺼야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학들도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기업과 손잡거나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해외강국의 패권 전쟁이 가속화 되는 상황이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 실현을 위해 반도체 관련 인프라 구축은 물론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기업소득세 감면 등 파격적인 혜택과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인공지능·바이오 등 7대 첨단산업에 집중 투자를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국가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초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 공급망에 1000일간 검토를 지시했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공장을 세우는 기업에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세제혜택을 주는 이른바 ‘미국 혁신 경쟁법’도 준비 중이다.

상황은 급박하지만 국내 반도체 분야 전망은 밝지 않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반도체 산업기술인력은 3만6000명 수준으로 향후 10년간 매년 1500명의 인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산자부는 반도체 인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학사급, 석·박사급, 실무인력 등 맞춤형 인력양성 정책 아래 2022년까지 총 4800명 이상의 인재를 배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발표한 ‘2021년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은 12대 주력산업 중에서 6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산업기술인력 부족률은 1.6%로 나타났다.

지난 2월 열린 ‘반도체 투자활성화 간담회’에서도 반도체 인력 부족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가 쏟아지면서 문승욱 장관은 △올해까지 700여 명의 반도체 관련 대학 정원 확충 △반도체 전문 교육과정 신설로 매년 1200명 전문인력 양성 △반도체 대학원 지정으로 10년 이상 집중 지원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인수위는 지난 12일 “반도체 초강국 실현을 위해 인재 육성부터 규제 해소, 투자 인센티브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위한 지원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연구소장이 발탁되면서 반도체 관련 대학과 업계의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 주요 대학들 SK하이닉스·삼성전자와 손잡고 반도체 계약학과 협약 맺어 = 산업계의 반도체 인력 선점을 위한 경쟁은 이미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서강대는 지난 3월 SK하이닉스와 차세대 반도체 인재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전자공학과를 모체학과로 공대 내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계약학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정원은 30명 규모로 올해 말 첫 신입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서강대는 SK하이닉스에서 필요로 하는 설계와 반도체 소프트웨어에 특화된 커리큘럼으로 신설학과를 구성하고 기업 맞춤형 반도체 전문인력을 집중 양성하게 된다. 선발된 학생들은 SK하이닉스로부터 학비 전액을 지원받고, 졸업 후에는 SK하이닉스 취업과도 연계된다.

한양대도 SK하이닉스와 지난 11일 협약을 체결하고 반도체 인재 육성에 나섰다. 이번 협약에 따르면 한양대는 공과대학 내 반도체공학과를 신설해 올해 말 총 40명 정원으로 첫 신입생을 선발한다. 학생들은 한양대와 SK하이닉스가 함께 개발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이수해 반도체 관련 실무 소양을 익힌다.

이 학생들 역시 한양대와 SK하이닉스로부터 학비 전액과 매달 학업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졸업 후 SK하이닉스 취업 연계는 물론 회사 연구실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도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포스텍은 삼성전자와 손잡고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계약학과 설립에 협의했다. 포스텍은 삼성전자와 함께 2023~2027년까지 5년 동안 매년 40명씩 200명으로 반도체공학과로 모집해 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해당 학과 학생들은 등록금과 특별장학금을 지원 받으면서 다양한 반도체 전문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포스텍은 협약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을 △반도체 전 분야 기초·응용 지식을 갖춘 실전형 공학 인재 △최신 반도체 기술 동향 파악과 시장 분석이 가능한 리더형 인재 △가치관·소통·리더십·경영 마인드를 겸비한 인문학적 인재로 양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포스텍에 이어 카이스트와도 ‘반도체시스템공학과 설립 협약식’을 맺고 5년간 매년 100명 내외, 총 500명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해당 학과 학생 전원에게는 특별장학금이 지원되고 삼성전자와의 인턴십, 공동 워크숍 등에도 참여할 수 있다.

■ 반도체 인력 확충 시급하지만 제도적 뒷받침 안 돼 = 산업계와 대학이 반도체 인력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도권 대학들은 정원 증설이 쉽지 않아 대학들이 계약학과라는 우회로를 통해 인력 양성에 나서는 이유다.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인력 양성 증원을 위해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려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최근 통과된 반도체특별법에서도 해당 내용은 빠졌다. 반도체특별법의 정식 법안명은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에 대해 인프라와 인력을 파격적으로 지원하는 법안이다. 해당 법에 따라 국가첨단전략기술을 지정하고 여기 포함된 기술들을 육성·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들어갔다.

법안에는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정부로 하여금 인력양성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고, 산업교육기관에 계약학과 설치와 운영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성화대학과 전략산업종합교육센터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해 산업체에서 필요한 기술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학 정원 증대’에 관한 내용이 빠져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수도권 정원 총량제’ 때문이다. 수도권 대학은 해당 규제로 학과 정원을 늘리거나 새로운 학과를 신설하기 어렵다. 반면 지역에서는 인재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수도권 정원 동시 감축’ 논의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이 또한 쉽사리 풀 수 없는 문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1년에 1만 명 이상이 반도체 분야에 신규 취업되고 있는데 대략 학부생 중 반도체를 전공한 사람은 전체 인원의 15%에 불과하다. 취업자들의 재교육은 물론이고 학부 인력이 부족해 대학원생 인력도 없는 실정이다”면서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제 때문에 반도체학과 신·증설이 어려우니 제도적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인력 양성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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