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규정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
재정 여건 열악한 지방대들 운영비로 ‘난색’…인권 보호에 차등 생길 우려
모호한 ‘인권’ 개념으로 인권센터로 업무 몰려 고충 토로…가이드라인 필요
국립대의 경우 인권 전문가를 공무원 신분으로 임용 방안 거론도

지난해 7월 권인숙 의원 주최로 개최된 ‘대학 인권센터 법제화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 참석자들. (사진=권인숙 의원실 제공)
지난해 7월 권인숙 의원 주최로 개최된 ‘대학 인권센터 법제화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 참석자들. (사진=권인숙 의원실 제공)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인권 보호의 차등이 허용되면 안 된다.”

지난해 3월 고등교육법 개정에 따라 모든 대학에 인권센터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인권센터 설치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의 역량과 재정의 차이로 인해 인권 보호의 차등이 허용돼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대학 인권센터는 성희롱·성폭력, 갑질 등 학내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와 상담, 조치, 교육 등을 담당하는 기구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총 336개 대학 중 작년 10월 기준 인권센터를 설치한 대학은 129개다. 나머지 대학은 올해 상반기 계도기간에 의무적으로 이를 설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대학 인권센터의 인권 보호 기능이 평등하게 실현되려면 정부의 확실한 투자와 다각도 지원방안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권 전문가를 정부에서 파견하거나 대학에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등 관련 부처 간 협의체 구성도 실효성 있는 방안으로 제시된다.

■ 대학 인권센터 시범사업에 5억 원 지원한 교육부…대학들 “인건비 쓰고 나면 끝” = 교육부가 대학 인권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7개 대학에 5억 원을 지원한다고 나섰지만 대학가에서는 인건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부는 인권센터 안착을 위해 2022년도 대학 인권센터 선도 모델 개발 시범사업을 공모하고 평가를 거친 결과 선도대학 7개교를 지난 5일 발표했다. 선도 모형은 총 3가지 유형으로 △1유형(인권센터 운영 선도) △2유형(인권친화적 문화 조성) △3유형(인권네트워크 구축·활용) 등이다. 1유형에는 서울과기대와 중앙대가, 2유형에는 가톨릭관동대·건국대·경북대·창원대가, 3유형에는 충남대가 선정됐다. 총 사업비는 5억 원으로 1유형 대학에는 대학당 7000만 원, 2유형 대학에는 대학당 7750만 원, 3유형 대학에는 5000만 원을 지원한다.

대학들은 지원 규모가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경상북도의 한 대학 인권센터 관계자는 “시범사업 공문을 봤는데 금액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인건비로 쓰면 다 없어질 만한 규모라서 뭔가를 해보기가 힘든 금액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센터를 운영하려면 방음이 잘되는 상담실과 cctv를 갖춰야 하는데 결국 예산과 직결된다. 몇천만 원 말고 1~2억 원은 돼야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어떤 기관이든 제대로 운영하고 발전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가톨릭관동대 인권센터 관계자도 “처음 시작하는 사업인 점을 감안하면 교육부가 앞으로 투자를 더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있고 이 정도라도 감사하다”면서도 “다른 교육부 사업에 비해 금액이 적은 건 맞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대학들 “예산의 과감한 지원과 업무 가이드라인 제시 필요” = 결국은 사람과 돈이다. 대학들은 인력과 예산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있어야 인권 보호가 평등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업무 특성상 가이드라인 제시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모든 문제는 결국 ‘예산’으로 귀결된다. 대학 인권센터 관계자들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법정 의무 교육에 필요한 콘텐츠 구입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다 보니 전문 인력 확보에 쓸 인건비가 없다고 지적한다. 대구한의대 인권센터 관계자도 ‘인권센터 운영을 위한 전문 인력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실제로 2020년 설치된 대구한의대 인권센터의 2022년 한 해 예산은 851만 원에 불과했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폭력예방교육’이다. 폭력예방교육은 매년 실시하는 법정 의무 교육이다.  양성평등기본법 등 근거 법률에 따라 대학 기관장은 교직원 및 학생을 대상으로 △성희롱 △성매매 △성폭력 △가족폭력 등 4대 분야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문제는 폭력예방교육에 필요한 무료 콘텐츠가 매우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경상북도의 한 대학 인권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교육을 온라인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제작한 온라인 콘텐츠를 구입하고 있다. 이 콘텐츠의 학생용과 교직원용, 국문‧영문‧중문을 다 통틀어서 전체 금액이 500만 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나마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콘텐츠는 여성가족부에서 무료 제작해 배포하는 콘텐츠가 있지만 교직원용 콘텐츠가 부족해 다른 대학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구입하다 보면 복사용지 구입도 겨우 할 정도”라고 호소했다.

모호한 인권의 개념도 고충으로 언급된다. 가톨릭관동대 인권센터 관계자는 “‘인권’의 범위가 광범위하다 보니 모든 민원이 인권센터로 몰린다. 담당 부서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인권 문제가 아니냐고 해서 인권센터로 신고가 몰리는 경우가 많아 ‘대학 인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은희 (사)인권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의 ‘대학인권센터 운영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대학인권센터 관계자도 “그저 기분 나쁘면 인권침해라는 식은 곤란하다. 인권에 대한 정의가 대학 현장에 맞게 제대로 정립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전문가 “국가가 인권 전문가 파견하고, 부처별 협의체 구성해야” = 전문가들은 국가가 나서 인권 전문가를 파견하고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등 관련 부처들이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대학 인권센터가 운영됨으로써 득을 보는 건 결국 학생”이라며 “대학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국가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당연히 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령인구 감소로 생존 위기에 내몰린 사립대에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라는 규제만 하지 말고 국가가 인권 전문가를 파견해주고 인권 전문가에 대한 인건비 정도는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립대의 경우 인권 전문가를 공무원 신분으로 임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장희 창원대 인권센터장은 “창원대는 학교 자체 예산으로 인권전문가에 대한 인건비를 지출하고 있는데 인권전문가를 공무원 신분으로 임용한다면 신분 보장 측면에서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기관 협의회 운영을 통한 지원 근거 마련도 지원 방안으로 언급된다. 김은희 (사)인권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대학 인권센터 운영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결과’ 보고서에서 “인권센터가 담당하는 업무 자체가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관련된 부처도 다수일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 보니 학교 인권센터 업무 현장에서는 부처에 따른 업무의 분절과 보고 체계 중복 등의 어려움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무부처인 교육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효과적이며 실효적인 대학 인권센터 업무 지원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희 연구원은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들이 발의되고 있는 만큼 동법에서 교육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협의회의 운영을 규정하고, 이 협의회를 통해 관계기관이 대학 인권센터 등에 대한 지원 책무를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인권 전문가를 국가공무원 신분으로 파견하는 것에 대해 교육부에서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김태경 교육부 대학학사제도 과장은 “교육부가 인권 전문가를 공무원 신분으로 파견하는 방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검토는 하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며 “여러모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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