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한양여대 교수

이정표 한양여대 교수
이정표 한양여대 교수

교육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를 통해 세계 석학들의 강연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대한민국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공정’과 ‘능력주의’를 화두로 랜선 토론 수업에 참여해 능력주의 신화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가 10년 만에 발간한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저서는 미국사회의 능력주의(meritocracy) 한계를 비판하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에 주는 울림은 더 크다. 사회학에서 능력주의 담론이 갖는 한계는 그리 새로울 것은 없으나 세계 석학의 통찰을 통해 던져주는 메시지의 힘은 강력하다. 마침 능력주의 이념을 선언한 새 정부의 국정기조를 조망하면서 향후 전개될 고등교육정책 방향을 점검하고 기대와 바람을 전해 본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새 정부는 조직 개편 및 국정과제 선정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정권의 흔적을 없애거나 차별화하는 새 판짜기가 예상된다. 새 정부의 정책 기조는 향후 5년 국정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능력과 성과’의 원칙을 천명한 윤 당선인의 의지는 인수위가 내놓는 정부조직 개편 및 인선 방향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아직은 국정과제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고등교육정책의 방향에도 능력주의 신념이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역대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학력주의, 학벌주의 철폐를 위한 능력중심사회 구현이다. 유난히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우리 사회에서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를 얻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물론 청년세대 역시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능력주의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폐해인 학력주의, 학벌주의 사회를 합리화하고 고착화시키고 있다. 학력과 학벌은 능력주의 소산이고 가장 공정한 게임이라는 논리가 내재돼 있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데 노력했기 때문에 개인의 성공 여부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은 이러한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고 주장한다.

새 정부의 행보가 초기부터 심상치 않다. 통합·다양성보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하는 능력주의 인사 철학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정권의 속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강자의 논리, 기득권자들의 논리로 고등교육정책이 추진될까 우려된다. 교육을 시장과 경쟁논리로 접근하면 입시위주의 교육경쟁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학력주의, 학벌주의는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고착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 불평등은 심화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 심각한 청년실업과 사교육비 문제, 학력 간 불평등, 소득 양극화 문제 등이 그렇다.

지난 정부는 국정운영의 핵심 키워드로 사회적 포용가치를 일관되게 교육정책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포용지향적인 고등교육정책을 제대로 구현해 내지는 못했다. 일반대학 중심의 고등교육정책, 일반대학에 편중 지원하는 고등교육 재정 배분은 공정성을 저해하는 고질적 문제다. 최근 몇 년간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간 격차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개선은 없었고, 학생 1인당 재정지원액은 오히려 차이가 더 벌어졌다. 전문대학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의 46.6%에 머물고 있다. 전문대학의 열악한 교육여건은 양질의 인력을 양성하는 데 한계를 주고, 전문대 졸업자들은 임금차별은 물론 사회적 차별로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져있다. 포용을 강조했던 지난 정부의 불공정한 고등교육정책은 학력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파심이지만 능력주의를 앞세운 새 정부가 학력차별을 공정으로 여겨 불균형한 정책을 합리화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윤 당선인은 실용주의와 국민의 이익에 우선해 국정과제를 선정한다고 선언했다. 실용주의와 국민의 이익이 과연 무엇이고, 이러한 가치들이 고등교육정책에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들의 구현은 다양성과 통합에 기반한 공공선을 목표로 하면서 생산적인 고등교육정책을 지향함으로써 가능하다. 학력 차별 없이 꿈과 희망을 주는 사회, 고등직업교육의 위상과 매력을 높여 무조건 일류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열망을 흡수하는 사회,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직업교육으로 평생 책임지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실용주의 고등교육정책은 아닐까.

이제 우리 사회는 시장과 경쟁논리보다는 오랫동안 경쟁에 가려져 왔던 소외집단을 배려하고, 형평과 공정, 공유와 통합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부디 새 정부는 공정에 기반을 둔 능력주의와 실용주의 전략으로 고등교육정책을 실현함으로써 학력주의, 학벌주의의 폐해를 해소하고 모든 국민에게 힘과 소망을 주는 정치를 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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