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기 한국기술교육대 총장

이성기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총장
이성기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총장

“19세기에 콜레라가 도시 문명을 재탄생시킨 것처럼, 21세기에 발생한 코로나19는 완전한 디지털 문명을 열어갈 것이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최근 발간한 『코로나 이후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 주 저자인 이승민 박사의 분석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세상이 마비될 것 같은 현실에서 디지털 기술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육 분야에서의 영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지난 2년간 대부분의 강의가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면서 대학의 교육현장에서는 10여 년이 지나도 이뤄질 것 같지 않았던 혁신이 불과 2년 만에 기적처럼 펼쳐지고 있다. 인류학자인 칼레르보 오베르그(Kalervo Oberg)가 주창한 문화충격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당황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6개월을 기점으로 적응하기 시작하고 1~2년이 지나면 완전히 적응한다고 한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학생은 물론 교수들도 비대면 수업을 더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충격이론이 우리 현실에도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위기론은 낯선 주장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로 대학 캠퍼스가 폐쇄된 동안 무료 온라인 강의 플랫폼 ‘무크(MOOC)’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지성의 요람으로 여겨지던 대학의 존재 의미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온라인 방식의 교육이 확산됨에 따라 대면 교육을 위해 거대한 캠퍼스를 유지해야 하는 대학이 점차 소멸돼 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고등교육이 과거에도 수없이 많은 기술 혁신을 받아들이면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멀게는 금속활자의 발명부터, 계산기,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등 혁신적인 발명이 고등교육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의 고등교육 또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 에듀테크를 활용해 더욱 발전할 것이고 현재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한 대학들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최근 오미크론 변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많은 대학이 전면 대면수업을 시행하고 있고 일부 대학의 혁신 사례들이 돋보인다. 먼저 교육방법의 측면에서 지난 2년간 축적된 비대면 수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 PBL 등 신교수법을 대폭 강화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우리 대학에서도 올해부터 모든 교수들이 최소한 한 과목 이상의 과정에서 신교수법을 활용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대부분의 교수들이 시행을 하고 있다. 

또한 비대면 수업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터득한 노하우가 적극 활용되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면 중심의 대형 강의에선 학생을 소그룹으로 나누고 다시 대강의실로 부르는 수업 방식은 쉽지 않다. 그러나 메타버스 또는 줌 등 온라인 수업에서는 쉽게 가상의 소그룹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소그룹 활동이 활성화되면 학생들은 긴 시간 동안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지 않게 된다. 이는 소통이 부족한 온라인 수업의 단점을 보완하고 학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직적 교육과 수평적 교육을 통합하는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다. 캠퍼스 활동과 온라인 교육을 결합해 전통적인 방식의 고등교육 모델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며 대학이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첨단의 에듀테크를 활용해 적합한 교육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에듀테크를 통한 교육 방법의 혁신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교육 과정의 혁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데일 존슨 미 애리조나주립대 디지털 혁신처장은 “교육은 대량생산(Mass Production)에서 대량개인화(Mass Personalization)로 옮겨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인해 대학, 학과 간의 장벽이 허물어진 융합교육이 화두인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통일된 형태의 표준화된 교육보다는 개별적·수준별 맞춤 학습으로 변화시키고 학위나 자격증도 훨씬 더 유연한 형태의 마이크로 내지 나노디그리 형태로 전환돼야 한다. 전공 역량을 키우기 위한 지식을 체계화한 TTR(Technical Training Roadmap)을 설계하고 그에 따른 세부 전공지식을 모듈화해 관련 전공 간 연계를 통한 교육과정의 융합 및 효율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학습자의 특성에 맞춘 교육과정의 개인화가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설립한 국책대학인 한국기술교육대학교는 미래교육의 혁신을 위해 ‘미래교육혁신처’라는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미래학습 및 대학교육의 혁신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최신 산업동향 및 기술 수요를 반영한 TTR을 작성해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한편 메타버스, 홀로그램 등 최첨단 에듀테크를 활용한 다양한 교육방법, 정규교육과 평생직업능력개발 교육 연계를 위한 다양한 에듀테크 기반 학습자 중심의 실천공학 교육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확실하게 구현되고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해 ‘다담 미래학습관’을 건립 중이며 올해말 완공할 예정이다. 미래학습관에는 미래형 자율주행차, 스마트러닝팩토리, 인공지능(AI), 데이터 사이언스, 수소연료전지, 2차 전지, 지능형로봇 등 4차 산업 핵심 분야의 최첨단 실습실을 비롯해 에듀테크 강의실, 텔레프리즌스 기반 융합·연결 강의실 등 미래형 강의실과 가상현실·메타버스 체험관 등을 구축해 미래교육을 혁신해 나가는 공간으로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그간의 전통적인 대학 간의 경쟁에서 우리나라 대학들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권의 명문대학에 늘 뒤처져왔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는 코로나 이후 대학 간 경쟁에서는 우리나라가 앞설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다. 뛰어난 IT기술력과 인터넷 환경, 변화에 대한 욕구가 넘치는 국민성, 미래교육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 등이 그러하다. 미래교육의 혁신이라는 눈앞에 닥친 거대한 과제 앞에 정부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우리 대학이 추진하는 미래교육 혁신을 향한 다양한 연구와 시도가 자그마한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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