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원 한국전문대학교무학사관리자협의회장

오장원 한국전문대학교무학사관리자협의회장
오장원 한국전문대학교무학사관리자협의회장

봄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캠퍼스에도 봄날 같음을 느낀다.

지난 2년간 수많은 꽃들의 향기는 주인 잃은 잡초처럼 떠돌았지만, 요즘 캠퍼스는 꽃보다 아름다운 「학생꽃」으로 채워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럴 때면 지나가는 그들의 손을 잡고 “잘 버텨주어서 고맙고,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지금도 대학 구석구석에 모여 삼삼오오 떠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고맙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지난해를 되돌아보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신입생 충원율과 경쟁율 하락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결과를 마주 대하니, 대학이 감내하기 힘든 충격에 가까웠다.

우리나라의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화하고 있다. 오는 2040년을 기준으로 약 30만 명(2021년 대비 -35% 감소)으로 추산하는 통계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입시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학과 통폐합, 대학 본부조직 개편 등 암울한 소식을 여러 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하다 보니 대학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걱정이 뇌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이 사립인 전문대학의 경우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21년 대비 신설학과 870여 개(11%↑, 8665개→ 9531개), 학과명 변경 1450건(15%)으로 변화가 있었다. 단편적인 데이터지만 ‘4차 산업협명’의 소용돌이에서 대학이 생존하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6년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세상에 나온 이후 벌써 6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던 초창기의 미래학자들은 특정 직업군의 점진적 소멸과 전통적인 일자리의 빠른 변화를 예견했다. 이와 함께 인구의 노령화와 변화된 노동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평생직업교육’과 ‘고등직업교육’과 관련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앞으로의 직업교육은 위기에서 대학이 건재할 수 있게 해줄 큰 원동력이다. 대학은 이를 뒤받침하기 위해서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유연한 학사제도를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 대학 학사구조 체제 변환을 꾀해야 한다.

그럼 우리 대학들은 체제 변화를 통해 교육수요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변화가 있었을까?

- 학사구조 개편이라 부르는 무늬만 융·복합 교육환경
- 교과목은 변경되었는데 교육 내용은 똑같은 표지갈이형 교육과정
- 교육 수요자들의 눈높이를 무시하는 소통 부재 교수법

위 3가지 중 한 가지만이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결과를 떠나 절반의 성공적인 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학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대학은 과연 교육수요자들에게 얼마나 높은 만족도를 받을 수 있을까? 소심하게 자문해본다.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인 정약용 시대로 시간을 되돌려 보자. 1차 산업혁명기와 비슷한 200여년 전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 선생님은 한국 최고의 실학자이며 개혁가였다.

그 당시의 ‘실학사상’에서 출발한 개혁은 현재의 ‘4차 산업혁명’과 그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이 드론으로 농사를 짓고 스마트폰으로 비닐하우스 온도를 제어했다면, 「다산」의 실학사상과 기술은 ‘거중기(기중기)’를 제작해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고 비탈길도 사용가능한 ‘유행거(수레)’를 만들어 사용했다.

물질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의미로만 본다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개혁이었고 그때의 개혁 정신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다가오는 인구절벽의 큰 파도를 알면서 바라만 볼 수는 없기에 현실을 극복하고 고등직업교육의 목적 달성을 위해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 수요자들 모두「창조 가능한 능력을 갖춘 직업전문가」, 스스로 기술력 업그레이드 가능한 교육인프라 구축이 절실히 요구된다.

최우선 과제가 개혁에 가까운 ‘교육과정’의 혁신이라고 본다. 지난해 대학가는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학과 통폐합, 융복합학과 재편 등 대학의 많은 노력에도 일부 대학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존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과목명만 바뀐 강좌, 이름만 바뀐 학과명 무엇이 달라졌는가? MZ세대에게 XY세대의 교육을 가르치는 것이 정당한 것이 될 수도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까지 대학은 잘 되기 위한 투자였다면, 앞으로는 살아남기를 위한 방편으로 바뀔 것이다. 교수자의 눈높이가 아닌 교육수요자가 눈높이에 맞는 특화된 교육과정을 펼쳐야 한다. 이를 통해 비교 우위에서 배움의 성취감을 느낄 때, 10년 후에도 다음 세대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지쳐온 학생들의 마음을 향한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야 할 때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보다는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줘여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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