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 대구경북 진로취업처장협의회 회장(대구한의대 진로취업처장)

김홍 대구경북 진로취업처장협의회 회장(대구한의대 진로취업처장)
김홍 대구경북 진로취업처장협의회 회장(대구한의대 진로취업처장)

“진로는 결정했니?”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학과 학생들과 진로 관련 상담을 나눌 경우 가장 흔히 하는 대화다. 대학 입학 시 자신의 진로로 전공을 선택했음에도 확신이 없다. 대학 진로 관련 조사결과 여전히 30% 이상의 학생들이 성적에 맞춰 대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학생의 진로에 대해 대학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다. “대학이 학생들의 진로를 잘 설정해줘야 산업 현장의 미스매치 현상이 줄어듭니다.” 다양한 진로 관련 세미나나 진로취업처장 워크숍에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이야기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몇 년간 프라임(PRIME) 사업을 진행했고 지금도 정부의 각종 대학 재정지원사업에 ‘진로지원’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산업현장의 인력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데 진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도 창업도 진로에서 시작한다는 인식은 어느 정도 모든 부처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비록 정부가 진로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대학의 진로지원에 제도적·재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진로와 취업 현장 경험자로서 봤을 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정부 부처 간 ‘진로’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경우 자기이해를 하고 생애 전반에 걸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진로’라고 여긴다.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입장에서는 각각 취업을 결정하는 과정이, 창업을 결정하는 과정이 진로라고 인식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모든 부처가 직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은 같지만 세부적인 접근방식과 내용은 다르다.예를 들면, 교육부 진로탐색학점제 사업에서는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자기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프로그램이 다른 재정지원 사업으로 가면 예산 사용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 창업에 도움이 되는지, 혁신적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산학협력에 해당되거나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예산 지원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진로’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 발생하는 일이다. 개념이 다르니 제도가 다르고, 제도가 다르니 평가지표가 다르고, 평가지표가 다르니 지원여부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어느 대학도 정부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뜩이나 등록금이 십수년간 동결돼 대학재정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학을 평가하는 지표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대학은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도움으로 재정지원까지는 아니지만 대학 진로종합지원계획 컨설팅을 받고 대학 특성에 맞는 진로지원 로드맵을 만들 수 있었다. 우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나 대학인증평가, 여타 다른 평가에서 활용할 수가 없었다. 우리 대학은 진로가 상위개념이고 그 결과로 취업, 창업, 진학을 결정하는 것으로 정리했지만 재정지원 평가위원은 진로, 취업, 창업에 대한 학생지원의 한 형태로 동일한 수준의 개념으로서 각각의 로드맵과 방법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껏 대학의 특성을 살려 만들어놓은 진로개념을 모두 평가지표에 맞출 수밖에 없었고 결국 본래 대학만의 특성은 사라지고 진로, 취업, 창업이 각각 기획되고 진행되게 됐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한 학생이 진로취업처 진로개발센터에 와서 자기이해 및 진로개발 수준을 진단받고 이후 직무탐색을 통해 하고 싶은 직업군을 우선 선택했다면, 이 상담은 진로상담인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이것이 진로와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함과 동시에 평가기준이 정확히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추가적으로 이러한 개념의 차이로 인해 진로 관련 재정지원 사업의 추진 자체를 힘들게 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의 진로탐색학점제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대학의 진로 관련 재정지원사업은 없다. 중요성은 알지만 대학 자체 재정으로 진로를 추진할 여력도 없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진로는 당연히 대학이 하는 것이 아니냐”는 개념을 가진 정부 관계자나 재정지원 평가자들이 여전히 많다.

한 마디를 더 하자면 대학은 전공을 가르치는 교수가 모여있는 곳이다. 당연히 전공에 대한 진로는 학과 교수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교수들에게 전공이 맞지 않는 학생들을 새롭게 자기이해와 진로탐색, 진로설계를 지도해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게 하는 능력은 없을 뿐더러 시간은 더욱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수들에게 진로지도와 상담에 대한 역량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공학생들을 더 잘 지도하기 위한 것이지 비전공자들을 가이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대학, 정부 각 부처, 학부모, 학생 등 교육의 주체들이 함께 모여 진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진로를 통해 무엇을 얻고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의 장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국감이나 기획예산처 각종 평가에서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시킬 수 있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니 불필요한 예산으로 평가되어 진로지원을 시작도 못해보는 현실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다. 

대학의 진로지원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정부 내 진로정책을 진두지휘할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이든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게 최대한 단순화되고 단일한 메세지를 줘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통합적인 진로조직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개념이 같아지고 하나의 메세지가 만들어지려면 정부 부처 내 진로지원 조직은 특화되면서도 융합적 조직으로 구성돼야 한다. 현재 취업은 고용노동부가 책임지고 있고, 창업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책임을 지고 있는데 진로분야는 특화된 부서 없이 모든 재정지원 사업에 약방의 감초처럼 활용되고 있을 뿐 어떤 부서도 중심에 서 있지 않다.  

또한 정부 부처별 진로 관련 실무 담당자를 두고 있지만 해당 부서 업무만으로도 일이 과중하기 때문에 타부서와 연계성이 있더라도 업무협조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현실이 이러하니 현장에서는 진로 관련해 사업별로 각각 실무 담당자를 물어보아야 하고 실무 담당자들은 통일된 룰이 없으니 기존 사업의 룰을 적용하고 결과적으로 진로의 다양성과 창의성은 사라져 버리게 된다. 진로는 평생교육의 상위개념으로 융합성과 다양성 그리고 지속적 지원이 핵심이기 때문에 반드시 진로지원을 위한 정부 내 통합적 전담조직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조직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취업, 창업, 진학, 해외 일자리 등 모든 분야를 융합적으로 다루기 위해 해당 분야별 전문인력 파견형태로 상설기구를 조직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된 생애주기별 맞춤형 진로지원 정책을 만들 수 있고, 현장은 단일 창구를 통해 애로점과 제안을 할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현 시점이야말로 대학의 진로 관련 제도를 제정한 경험이 있는 교육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을 중심으로 정부 부처 내 진로 담당자가 있는 모든 부서 및 전국진로취업처장협의회와 함께 통합적인 진로지원 전담조직 구성에 대한 논의를 할 적정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새 정부가 대학의 진로지원이 산업현장의 빈번한 이직과 미스매치에 따른 사회적 낭비를 감소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 인식한다면 이 제안에 대해 진지하게 귀기울여 주길 기대한다. 

대학은 ‘교육’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는 ‘교육’의 수준과 내용이 시대에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교육의 방법이 혁신적인지 검토하고 그렇게 가르치면 정말 국가에 도움이 되는지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대학은 ‘연구’로 말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들이 만들어지는지,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이 생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현장에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정부는 ‘진로’라는 새롭고 혁신적인 씨앗을 대학에 심어야 한다. 현재까지 대학은 자체적으로 ‘진로’를 추진할 동력이 부족하고 받아들일 준비도 부족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초·중·고를 거쳐 진로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대학진로 관련 법도 미흡하나마 재정이 됐다는 것이다. 정부도 미흡하나마 진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부처별 진로 관련 정책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진로에 대한 공통의 개념을 정립해 공유하고 전 부서가 함께 융합적으로 하나의 진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취업, 창업, 진학으로 연결되고 새로운 산업의 물줄기로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 우물쭈물 말고 기회가 왔을 때 당장 시작해 보자. 진정으로 대학의 혁신을 바란다면, 진정으로 대학의 진로, 취업, 창업역량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을 되새겨 보면 된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자와 같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부는 정상이길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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