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좋아하던 어린아이에서 중앙대 4번 타자까지
타고난 힘과 어깨, 중심타자로 ‘우뚝’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치명적 부상에도 마음을 다잡다
프로 입단 앞두고 외야수 전향한 올해 마지막 투혼 불사른다··· “포기하지 않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정태 중앙대 좌익수 (사진=김한울 기자)
최정태 중앙대 좌익수 (사진=김한울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한울 기자]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단연 프로야구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야구대표팀의 선전 이후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현재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 종목으로 남아있다.

대졸 선수를 선호하는 프로농구와는 다르게 프로야구 구단들은 고등학교 때 훌륭한 성적을 보인 선수를 앞다퉈 지명한다. 그래서 대학 야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이 다시 한번 프로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장이다. 염종석 동의과학대 야구부 감독은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대학의 문을 두드린 선수들이지만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학생 선수들을 항상 압박해온다. 그래서인지 대학야구는 선수를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설정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그만큼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선수가 많지 않기에 프로야구가 갖는 인기와는 무색하게 대학 야구에 대한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이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배트를 열심히 휘두르는 한 학생 선수를 만나볼 수 있었다. 최정태 중앙대 외야수는 현재 중앙대 야구부의 좌익수 겸 팀의 해결사인 4번 타자를 맡고 있다. 그를 소개한 고정식 중앙대 야구부 감독은 “힘이 타고난 선수”라며 “타자로 전향하면서 내·외적으로 한층 더 성장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야구 경기장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꿈꾸는 최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중앙대 안성캠퍼스의 야구장 덕아웃에서 훈련을 앞둔 그를 만나볼 수 있었다.

■ ‘1년 선배’ 이정후와 함께한 야구, 마음가짐이 바뀌다 = 자영업을 하던 부모님을 따라 가끔씩 봤던 프로야구가 그의 첫 번째 야구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게에 찾아온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의 한 마디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어릴 적 야구를 해보자는 생각은 없었다. 야구 보는 것을 좋아하다가 해보자는 감독의 권유에 무작정 야구를 시작했다”며 웃어 보였다.

단순 흥미로 시작했던 야구는 어느새 선수라는 직업까지 꿈꿀 정도로 그의 삶에서 많은 영역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휘문중학교를 거쳐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쟁쟁한 선배들과 야구를 한 그는 현재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1년 선배’ 이정후 선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재미로 하던 야구가 큰 어려움 없이 술술 풀리니까 야구에 대한 진지한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정후 선배는 달랐다. 그렇게 장난기도 많고 후배들에게 잘 대해준 선배가 야구 경기에만 나가면 눈빛이 바뀌고 크고 작은 것에 아쉬워하며 자신의 실력을 자책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다. 그렇게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 선배의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그동안 내가 야구를 소홀히 임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2016년에 열린 ‘제4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했던 경험이 지금까지 야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정후 선수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그는 1년 차이지만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이뤘던 우승은 잊을 수 없는 고마운 기억이자 추억이라고 설명했다.

■ 찾아온 시련…“오히려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 하지만 신인드래프트에서 그의 이름은 불리지 못했다. 프로에 지명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처음으로 그의 인생에 찾아왔다. 그는 “함께한 동기들 중 지명된 선수들도 있었지만 내 이름은 없었다”며 “크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야구를 해야할지 걱정이 처음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는 다르게 이미 그에게 있어 야구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인생을 걸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가 돼 있었다. 주위의 여러 조언과 고심 끝에 중앙대 야구부로의 입단을 선택했다. 또한 송구 능력이 좋아 어렸을 때부터 3루수를 봤던 그에게 투수 전향이라는 새로운 모험이 시작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깨가 강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투수라는 포지션에 욕심이 나기도 했고 새로운 환경에 걸맞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각만큼 투수 전향은 쉽지 않았다. 제구가 잡히질 않아 구속이 점점 줄기 시작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경기를 뛰던 중 무릎 통증이 심해 검진을 받았더니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십자인대 파열은 프로야구 선수에게도 선수 생명과 직결되는 심각한 부상이다.

처음에 낙담했던 그는 “오히려 좋다”며 자신을 다잡았다. 부상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긍정적인 사고로 야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은 그는 휴학을 선택하며 재활에 몰두했다. 그는 “야구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이 정도 시련으로는 날 무너뜨릴 수 없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며 “재활을 하면서도 먼저 지명된 동기들과 후배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강했다”고 강조했다.

■ 마지막 기회 앞둔 ‘4번 타자’,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죠” = 무사히 재활을 마치고 그는 다시 한번 포지션 전향을 선택했다. 투수에서 타자로의 길을 선택한 그는 내야가 아닌 외야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4cm의 다부진 체격과 강한 송구 능력을 겸비한 파워 타자는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올해 ‘2022 KUSF 대학야구 U-리그’에서 좌익수로 출장하는 그는 타율 0.389, 장타율 0.611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중앙대 야구부를 이끌고 있다. 특히 3루타 2개를 때려낼 정도로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중앙대 야구부는 B조에서 5승 무패로 부동의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고정식 중앙대 야구부 감독은 “밀어서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에게 4번 타자를 맡기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올해 드래프트를 앞두고 자신을 증명할 마지막 시기이기에 스스로 채찍질하며 마음을 다잡는 모습은 후배들에게도 큰 모범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주위 평가에도 그는 살짝 미소를 띠고 “부족함을 인정했기에 더 노력할 수 있었다”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존경받는 선수가 되는 것이 제 야구 선수의 목표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밝힌 그의 포부에서 그가 야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와 시련에 굴하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는 중앙대 야구부 연습을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최정태 선수를 포함한 야구부 선수들이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대학 야구 선수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그의 손엔 흙먼지가 묻은 배트가 들려있었다. 배트가 공을 맞을 때 나는 경쾌한 소리는 기자가 야구장에서 멀어질 때까지 계속 들려왔다.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는 중앙대 야구부 연습을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최정태 선수를 포함한 야구부 선수들이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대학 야구 선수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그의 손엔 흙먼지가 묻은 배트가 들려있었다. 배트가 공을 맞을 때 나는 경쾌한 소리는 기자가 야구장에서 멀어질 때까지 계속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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