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부경대 총장

장영수 부경대 총장
장영수 부경대 총장

올해는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이 개교 76주년을 맞은 해다.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인 1946년에 문을 연 대학들이 올해 76년째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 이전에 설립됐지만, 올해 개교 76주년인 대학들이 있다. 서울대학교와 부경대학교가 그곳이다. 이 두 대학은 각각 1924년 설립 경성제국대학, 1941년 설립 부산고등수산학교가 전신이지만, 일제강점기 시기를 제외하고 해방 이후를 개교 기준 연도로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 대학 설립을 간절히 열망하는 시대적 요청이 있었다는 점도 그렇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대학’과 ‘전문학교’가 있었다. 교육과 연구 기능을 모두 수행했던 대학은 경성제국대학 하나였다. 1919년 3‧1운동이 문화통치를 이끌어내면서 민족교육을 위한 민립대학 설립 시도가 본격화했다. 조선교육회가 조선민립대학기성준비회를 발족하고, 총회를 개최해 대학 설립을 위한 모금계획을 세우며 국내는 물론 재외동포의 호응을 얻었다. 비록 1923~1924년 홍수와 간토 대지진에 따른 경제공황으로 그 기세가 꺾이면서 민립대학이 설립되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열망이 있었기에 관립대학으로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될 수 있었다.

당시 교육 기능을 주로 수행했던 전문학교는 1942년 기준 관립 7곳, 공립 2곳, 사립 11곳이었다. 1941년 관립 전문학교로 설립된 부산고등수산학교도 그중 하나였다. 그 이전 한국의 수산교육기관은 중등 혹은 보습학교 정도만 전국에 몇 군데 있었을 정도로 수산교육은 부진하고 빈약했다. 이에 부산 등지에서 수산 고등교육기관 설립 시도와 요청이 이어졌는데, 조선수산회가 그 중심에 있었다. 조선수산회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수산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위해 힘썼지만, 당시 일제의 대륙침략전쟁 장기화로 인한 예산 부족으로 이 같은 요청은 관철되지 못했다. 이에 조선수산회는 고등수산학교설립기성회를 결성해 설립자금을 모금, 기어코 학교 설립을 이끌어낸다. 경성설립기성회의 250만圓, 부산설립기성회의 100만圓 등 수산업계 기금 350만圓과 국비 17만5천圓으로 1941년 부산고등수산학교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부산 최초의 대학인 부산고등수산학교는 이후 종합대학교인 부산수산대학교로 승격했고, 부산공업대학교와 통합을 거쳐 현재 국립부경대학교가 됐다.

우리나라 초창기 대학 설립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대학에는 저마다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만의 역할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 역할의 핵심은 교육과 연구라는 개념으로 정립되지만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이른바 ‘대학의 위기’라 불리는 지금에는 어떤 교육과 연구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학 스스로 무겁게 답해야만 하는 지점에 서게 됐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대학은 저마다의 본질적인 목적을 되새기고,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시대적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지역과 국가, 우리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과 기술 발전을 위한 첨단 분야를 연구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모든 것은 대학이 해야 한다. 대학이 혁신의 중심이 돼야 하며, 그것이 대학의 역할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대학은 살아남고, 못하는 대학은 도태된다.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학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특성화하는 것이다. ‘대학의 위기’라는 말이 ‘지역대학의 위기’라는 말과 다름없는 것처럼, 수도권이 아닌 지역대학일수록 특성화는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바로 이 지역이라는 정체성이야말로 특성화를 위한 가장 훌륭한 원천이 될 수 있다. 고등 수산교육을 위한 대학이 부산에 설립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지역의 산업적, 지리적, 환경적 특성은 대학의 특성화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부산을 보면, 청년인구가 줄고 노인인구는 늘면서 ‘노인과 바다’만 남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청년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면 그들을 교육하는 대학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일까? 역발상으로 접근해보자. 이제 대학은 이 같은 추세에 뒤따를 미래에 주목해야 한다. 노인인구 증가에 대비해 필요한 청년 인재를 키우고, 관련 분야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다. 국립대 중 처음으로 의공학과를 만들었던 부경대가 미래 첨단 분야인 방사선 의‧과학 분야 인재를 키우기 위한 의과대학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 그 사례다.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방사선 치료 수요에 대비해 부산시 기장군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단지’에 방사선 의‧과학대학 설립을 추진하는 것. 설립용역 결과 입학정원 30명 수준의 방사선 의과대학을 이곳에 건립, 운영하면 30년간 총 투입비용은 1조379억 원인 반면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유발(1조7619억 원)과 부가가치 유발(1조3563억 원)을 포함한 3조1183억 원에 이르고 고용창출도 1만4532명으로 추정됐다.

특성화는 지역의 특성과 함께 융복합적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국제 해양도시인 부산이야말로 첨단 기술의 융복합을 통한 국가 해양신산업 선도 도시에 걸맞은 곳이다. 부경대가 국책사업으로 운영 중인 해양바이오닉스융합기술센터는 해양바이오와 바이오메디컬 기술융합형 거점연구센터다. 해양수산자원에서 유래한 바이오메디컬 응용 유효물질을 연구하거나, 해양 융합형 의료소재 및 기기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부가가치 해양신산업 맞춤형 전문 연구인력을 배출하고, 부산 중심의 글로벌 해양 네트워크도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대학이 특성화에 집중하면 그 강점 분야의 성과가 다른 분야에까지 파급되며 특성화 종합대학으로 발전하는 선순환 체계로 이어질 수 있다.

특성화의 방향은 대학 스스로 지역 등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 찾아내야 하지만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도 필수적이다. 자원을 투입하지 않고 혁신적인 결과를 바라서는 안 된다. 최근 지역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나눠먹기식 예산 배분이 아닌 지역 대학의 특성화를 집중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특히 독창적인 특성화 분야를 키워나가는 데에는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또 특성화를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지금 추세에 맞지 않는다. 힘을 합쳐야 한다. 현재 국립대는 거점국립대, 국가중심국립대 등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고, 초광역권역 대학 간 산학협력벨트 협의체가 운영되는 등 공유와 협력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여기에 더해 협력 대상을 지역, 전국에서 세계로 확장해야 한다. 교육부가 한‧일‧중 대학 간 공동학위, 교류 활성화를 위해 운영하는 ‘캠퍼스 아시아 한‧일‧중 확장사업’에 전국의 많은 대학이 함께 참여해 교류하는 것처럼, 교류 확대를 통해 각 대학 특성화의 바탕을 다져야 한다.

‘대학의 위기’라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대학의 혁신을 위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제 많은 대학들이 지역과 환경, 정체성을 바탕으로 특성화에 힘을 쏟으며 지역과 국가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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