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인기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야구팬들에게 5월은 어쩔 수 없이 야구의 달이기도 하다. 거리두기가 없어지면서 야구장에서 야구를 즐기는 것에 대한 제약이 거의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보는 팬들은 크게 줄어들었다. 줄어든 관객 수는 확실히 야구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야구로 글을 시작한 것은 필자가 야구팬이기도 하지만 야구 관객 수가 줄어든 이유를 생각하다가 혹시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 증가가 야구장에 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필자도 집이나 카페에서 야구를 보고 있고 아직 구장에 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야구와 관련해서는 최근 몇 년간 악재가 많았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미디어 소비 행태 변화보다는 야구 자체의 인기 감소가 관객 수 감소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거리두기 해제는 사회 각 분야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기왕 야구 얘기로 글을 시작한 김에 야구 관련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한다. 김홍중의 산문집 《은둔기계》를 보면 ‘야구’가 세 명의 타자가 어떻게 죽게 됐는지에 대한 기억이라는 지점에서 여느 스포츠와 다르다고 얘기한다. 김홍중은 삶 자체가 ‘축적’되기보다는 ‘비워지는’ 이야기이며 이 점에서 야구가 삶과 닮아있다고 본다. 역동적이고 화려해 보이는 야구의 이면에는 세 타자의 죽음이 놓여 있다. 다시 김홍중의 표현을 빌리면 야구는 산문적이자 고독한 영역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홍중은 야구를 은둔지라고 말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중 가장 가혹했던 것은 물리적인 대면을 줄여야 하는 것이었다. 김홍중의 말처럼 삶이 비워지는 서사에 가깝다면 코로나19는 비움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익히도록 만든 삶의 기예는 바로 ‘은둔’이다. 은둔에 지친 사람들은 은둔을 거부하고 밖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누구나 코로나19 이전보다는 은둔에 익숙해졌다. 이제 거리두기가 모두 해제됐다. 그동안 은둔에 지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 식당에서 오밀조밀 앉아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2년은 짧지 않은 기간이다. 은둔 상태를 지속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코로나 기간 동안 익힌 ‘은둔’의 기술이 코로나 이전의 삶에 침투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개강 후 강의 때문에 월요일 저녁마다 학교에 간다. 강의 때문에 학교에 간 것은 2년 만이다. 반가운 마음이 크지만 아직은 대면 강의가 낯설다. 2년 동안 비대면 강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강의하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미 비대면 강의에 익숙해진 이들과 학생들도 많다. 비대면 강의는 분명 효율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비대면 강의로는 채우기 어려운 부분들도 많다. 많은 학생이 대면 강의를 원하는 이유다.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대면과 비대면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더라도 비대면 강의의 유용성이 확인됐기 때문에 비중이 줄더라도 비대면 강의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인한 강제적 은둔 상황에서 사람들 사이를 이어준 것이 바로 미디어다. 비대면 강의도 미디어로 인해 가능한 학습 활동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보편화된 재택근무 역시 비대면 강의처럼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로 인한 강제적인 은둔이었지만 물리적인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서 코로나 이전에는 어려웠던 활동이 가능해진 직장인들도 있을 것이다.

지난 2년간 미디어 소비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OTT 이용의 보편화다. 코로나 이전에 OTT를 이용하는 연령대가 젊은 층에 집중돼 있었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40대, 50대, 60대에서도 OTT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OTT의 가장 큰 특징은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마다 1% 이하로 증가하던 스마트폰 과의존은 2019년과 2020년 사이에 3.3% 증가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1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코로나 기간 동안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것이다. OTT 이용량 증가도 이와 관련돼 있다고 봐야 한다.

코로나19 이전과 코로나 이후의 삶의 형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코로나 이후 미디어 소비도 코로나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인해 자가격리하는 과정에서 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도움이 됐다고 얘기하는 이용자들이 많다. 미디어 소비는 체험의 영역이며 체험은 흔적을 남긴다. OTT에 특화된 소비 형태라고 평가받았던 몰아보기는 코로나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OTT 사업자들은 신규 가입자 유치와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서 시리즈물을 제작하고 수급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갈 것이다.

미디어 소비가 역설적인 것은 ‘연결’과 ‘은둔’ 모두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결하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하기도 하고, 은둔하기 위해 미디어를 활용하기도 한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은 일을 마치고 집에서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코로나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것은 유용한 은둔의 기술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어떤 삶의 기예를 체득해야 하느냐다. 코로나 장기화 기간 동안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면 자신의 미디어 소비에 대해 성찰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 소비는 필수적인 측면과 여가적 측면이 공존하는 행위다. 은둔을 포함한 삶 전반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중요한 행위이니만큼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강제로 은둔해야 했던 시기는 지나갔다. 하지만 은둔했던 시기의 관성은 남아 있고 은둔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어떤 삶의 기예가 필요할까? 분명한 것은 코로나 이후에도 여전히 미디어는 우리 삶과 깊은 관련을 맺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디어와 함께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무엇이 돼야 하는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기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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