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국정과제에서 지방대 행‧재정 권한 지자체 위임하기로
대교연 “지자체장과의 친소관계 등에 따라 나눠 먹기할 가능성 매우 높아”
대학노조 등 대학단체들 “골치 아픈 고등교육 문제 지방 정부에 떠넘기나”
고등교육 전문성, 지원 체계, 경험이 미흡한 지자체로 위임할 경우 부작용 우려 커
지역 사립대 지도‧감독 권한 가진 제주도 역시 도내 사립대 각종 지표서 최하위 ‘고전’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도입,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 정부 고등교육 재정 비중 확대 요구돼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지방대에 대한 행·재정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위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자 고등교육계에서는 우려는 물론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쏟아내고 있다. 지방대학에 대한 지원이 더욱 열악해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 110개 가운데 지방대 정책과 관련해서는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지역대학에 대한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로 위임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역대학에 대한 지자체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다.

지자체, 지역대학, 지역 산업계 등이 참여하는 (가칭)지역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약 하에 지역산업, 대학, 교육청 등과 연계해 인재를 육성하는 ‘지역인재 투자협약제도’도 2023년 도입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큰 틀의 국정과제만 제시돼 아직 세부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고등교육계에서는 걱정스러운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는 11일 논평을 통해 “정부의 책임 있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기에 정반대 결정을 내렸다”며 “학령인구 감소가 수도권 대학보다 지방대학에 주는 충격이 더 크기 때문에 지방대 육성 정책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인수위는 지방대학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하겠다고 밝혔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방대학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할 경우 지자체장 권한이 매우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지자체장은 선출직 공무원이고,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사립대학 이사장이나 교수들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행‧재정 지원이 지자체장과의 친소관계나 선거를 의식한 지역사회 영향력 등에 따라 몰리거나 나눠 먹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의 이유를 설명했다.

전국대학노동조합·전국대학노동조합·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대학민주화를위한대학생연석회의·대학무상화평준화운동본부·대학공공성강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도 국정과제가 발표된 뒤 인수위 앞에서 ‘대학위기 대책 수립과 고등교육재정 확충을 위한 대학노조 투쟁결의대회’를 지난 4일 열고 국정과제의 미흡함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지방대 권한 지자체 위임 방안에 대해 “고등교육 재정을 대폭 확충하는 방안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 사무를 고등교육에 대한 전문성이나 지원 체계, 경험이 미흡한 지자체로 위임할 경우 자칫 골치 아픈 고등교육 문제를 지방 정부에 떠넘기는 것에 불과한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안선회 중부대 교수는 “지역살리기의 핵심 당사자는 바로 시‧도지사다. 지역대학에 대한 중앙정부의 규제는 축소하고, 시‧도자치단체장이 대학 지원하는 책임을 맡도록 하는 방안이 지방대 위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특정 한두 지역만이 아닌, 모든 지역을 고르게 살려야 한다. 그렇기에 여러 지역에 대한 균등한 재정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지역소멸의 해결방안을 만들 수 있다. 지방대에 대한 재정지원 시스템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은 그간 중앙정부의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이 수도권에 편중됐기 때문이다. 연덕원 대교연 연구원은 “역대 정부는 지방대학 육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으나, 오히려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 ‘자율과 경쟁’ 논리에 의존, 수도권 대학보다 경쟁력이 낮은 지방대학에 대한 책임을 외면했기 때문”이라며 “김영삼 정부 시절 추진한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정원 자율화 정책은 ‘규모의 경쟁’을 부추겨 지방대학 양적 팽창을 초래하고, ‘부실’대학을 양산해 지방대학을 구조조정의 주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지원도 ‘선택과 집중’의 경쟁방식을 도입해 지방대학에 불리했다. 경쟁이 심화하면서 교육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학생 충원 또는 취업 등이 비교적 쉬운 지리적 환경에 놓인 대학이 재정지원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현상이 오랜 기간에 걸쳐 고착됐다. 그 결과 서울지역과 광역시 지역에 있는 대규모 국·사립대학에 집중지원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책의 의도와 달리 지자체에서 대학 지원에 있어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양쪽으로부터 지역대학이 외면 받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정책 분야에서 활동해온 한 전문가는 “지자체 역시 지역소멸의 문제로 위기를 겪고 있고 재정이 열악하다고 호소하고 있는데다 지자체별로 여건이 각기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대학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중앙정부도 해결하지 못한 지방대의 어려움을 지자체의 노력으로 해소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역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광역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대학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A씨는 “관내 대학과 소통을 하다보면 지자체에 대해 대학이 지나치게 지원만을 요구하고 대학 자체적인 노력은 부족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자체가 대학에 큰 규모의 재정을 지원하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립대를 지자체가 관할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 B씨는 “제주도가 몇 년 간 도내 지역과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여러 시도를 하려 했으나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제주도는 2012년 5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도내의 사립대 설립 인가, 지도‧감독업무 권한을 교육부로부터 이양 받았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도내 사립대의 예산과 결산, 회계 관리 등을 지도 감독하고 있다.

실제로 제주도내 대학은 각종 정량평가 지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학생 충원, 유지 충원(중도탈락 방지), 산학협력 수입 등에서 모두 최하위 지표를 보이고 있다.

대교연이 2020년 7월 펴낸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 방안’을 보면 제주는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입학가능인원 감축률은 13.5%로, 충청(13.7%)과 함께 유일하게 감축률 20% 미만 지역이었다. 2037년까지 감축률이 가장 낮은 지역도 제주(12.8%)였다. 이 기간 강원은 45.3%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제주권 신입생 충원율이 지난 9년간 6.7%p 급감해 2019년 86.3%로 미충원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의 유일한 4년제 사립대인 제주국제대의 2019년 충원율이 41.6%로 매우 컸던 탓이다.

4년제 대학 중에서 2018년 중도탈락률이 가장 높은 권역도 제주권(8.1%)이었다. 2018년 지방 사립대학 학생 1인당 산학협력수익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수도권은 100만 원이었으나 지방은 30~42만 원 수준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제주권은 22만 원으로 특히 낮았다.

현재 지방대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재정난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방대에 대한 재정 지원 방안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지자체로 지방대의 행‧재정 권한을 이양하더라도, 재정 확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김병국 대학노조 정책실장은 “서울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 대학의 학생 1인당 고등교육 재정 규모가 열악해 이를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 확충이 필요한데,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이나 현 대통령 임기 내 실현 가능한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재정확보 방안이 반드시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대에 대한 지자체의 권한 강화에 긍정적 뜻을 내비쳤던 안선회 교수 역시 재정 확보가 이뤄진 상황을 가정한 뒤 지자체의 책임을 키우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대학에 대한 교부금을 지자체에서 내주고 시‧도지사를 중심으로 대학을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교육 재정에는 엄청난 편차가 발생하고 있다. 고등학생 공교육비보다 대학생 공교육비가 적은 경우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외에는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정과제 최종 발표에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만든 국정과제 및 실천과제안에 포함됐던 내용이 주목된다.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는 4월 말 15대 국정과제 및 76개 실천과제를 발표하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지원을 지역대학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이 내용은 최종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과 같은 ‘지역대학에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지자체 책임성 강화’ 정책의 한 과제로 제시됐다. 정부가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가 제시한 내용을 수용한다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지역대학 적용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고등교육계에서도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보낸 정책 건의서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를 위해 초·중등교육 중심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대학이 포함되는 교육재정교부금법으로 개정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국회에서도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와 유사한 의도의 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9월, 사용되지 못하고 적립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일부를 고등교육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국가 재정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자는 취지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매년 불용돼 적립되는 지방교육재정 예산 중 일부를 ‘고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대학, 전문대학, 산업대학 등에 지원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지방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하는 데는 장애물이 존재한다. 당시 개정안에 대해 교육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경우 시‧도교육청의 유‧초‧중‧고 교육을 위해 활용되는 것이므로 고등교육에 교부금을 활용하도록 하는 동 개정안은 관련 법률들과 상충된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표했다.

법제처 역시 “개정안에서 ‘교육부장관이’ ‘「고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에 직접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는 교부금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지방자치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 관련 법률을 고려할 때, 고등교육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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