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IB 한국어화 과정

1. IB 한국어화 결정 과정

  공교육 차원에서 IB 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2017년 여름 서울시교육청에서 수업・평가 체제 혁신의 일환으로 IB를 공교육에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자고 필자에게 제안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서울시교육청의 IB 프로젝트가 진행되자 2017년 하반기에 제주도교육청에서는 아예 IB 프로그램을 한국어화해서 국내에 도입하는 절차를 연구하자고 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한국어화에 대한 협상이 공식적으로 논의된 것은 제주도교육청이 2018년 1월 초 IBO에 IB를 한국어화하여 공교육에 시범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첫 공문을 보냈을 시점부터다. 그러나 공문을 보내고도 논의에 진전은 없었다. 

  본격적인 논의는 싱가폴에서 시작됐다. 2018년 3월 싱가폴에서 열린 IB 글로벌 컨퍼런스에는 제주교육청, 충남교육청, 대구교육청에서 사전 기획 없이 자발적으로 30명의 대표단이 구성되어 참여했다. 이때 제주교육감, 충남교육감 및 대구교육청의 간부들을 비롯하여 한국의 교육청 대표단이 IBO 회장단과 공식 회담을 갖고 IB 한국어화를 정식 요청했다.

  IBO는 처음에는 한국어화에 큰 관심이 없었다. IBO는 유엔(UN), 유네스코(UNESC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처럼 비영리인 국제 교육 기구라서 수익을 축적할 수 없는 조직이다. 그래서 수익에 의해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어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담당자들을 별도로 배치하고 업무를 할당하는 등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영어, 불어, 스페인어 버전만으로도 지금 한창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이 엄청난 작업을 할 여력 자체가 조직 내에 별도로 없었다. 중국어나 아랍어처럼 수요가 훨씬 많은 언어로도 번역이 아직 안 되어 있는 상태여서 굳이 언어의 확장성이 없는 한국어에 관심을 둘 리가 만무했다. 또한 이사회에 있는 18명의 이사는 대부분 유럽 기반이어서 서구 쪽의 사업에 주요 관심이 있었다. 한국어화에 반대하기보다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이들의 주 업무와 너무 다른 새로운 업무를 굳이 추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2018년 5월 하순 제네바에서 열린 이사회에 IB 한국어화 개발 의제가 상정되었을 때만 해도 IBO 이사들은 대체로 무관심했다. 그러던 이들이 한국어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된 데에는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2018년 5월 스위스에서 이사회가 열릴 즈음에 마침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정상 회담 관련 뉴스가 연일 유럽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측에서는 “IB가 추구하는 가치 중의 하나가 세계 평화인데 작금의 세계 평화는 한반도에서 시작하지 않겠느냐, 이런 시기에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지 않는 세계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의 씨앗을 한반도에 심는다면 이는 IB가 추구하는 세계 평화에 역사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아니겠느냐”라며 설득을 했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이는 2019년 4월 17일에 열린 ‘IB 한국어화 추진 확정 기자 회견’ 직전의 사전 회의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아시시 트리베디 IB 아시아 태평양 본부장은, IBO와 이사회에서 한국어화 추진을 동의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에서 IB 학생이나 IB 학교의 양적 확장이 아니라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의미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2019년 11월에 방한한 시바 쿠마리 IBO 총재 역시 IB의 탄생 배경이 세계 대전 이후 더 이상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지 않는 글로벌 시민을 양성하자는 취지였다면서, IB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인 세계 평화가 평화로운 미래를 갈망하는 한국의 비전에 잘 맞는다고 언급했다.

  2018년 5월의 이사회 권고에 따라 IBO와 대구교육청 및 제주교육청은 2018년 7~9월 동안 한국어판 IB의 공교육 시범 도입에 대한 타당성 검토 작업을 수행했다. IB를 도입할 공립학교의 인프라를 분석했고, 교원 및 학생 현황을 검토했으며, 주요 대학들의 입학처에서 IB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서강대, 이화여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 12개 대학 입학처의 입학 사정 실무 책임자를 직접 전화 인터뷰한 결과, 모두 그동안 국내외 IB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입학 사정 경험이 누적되어 있어서 IB 프로그램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으며, 현재 별도의 IB 전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IB 학생들이 수능 최저 없는 학종 전형으로 지원하게 되면 IB가 신뢰할 수 있고 공정하기 때문에 기존의 학종 지원자들보다 경쟁력 있을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이상의 타당성 검토 결과는 IBO에 전달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IB 시범 도입의 긍정적 가능성을 상호 확인했다. 

  이에 따라 시바 쿠마리 IBO 총재단은 2018년 9월 26일 대구교육감과 제주교육감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IB 한국어화의 총론을 합의하는 회담을 했다. 이후에는 교육청들과 IBO가 어느 과목부터 한국어화할지, 교원 연수는 어떻게 할지, 채점관 양성은 어떻게 할지 등 각론을 수개월 동안 협상했다. 국제 계약이기 때문에 협력 각서에 대한 문구 하나 단어 하나까지 세심하게 논의하고 협의했으며, 행정적, 법적 검토와 재정 계획에 대한 교육청 및 지역 의회의 협의를 거쳐 드디어 2019년 4월 17일 제주교육청과 대구교육청은 IBO와 함께 IB 한국어화 도입 확정에 대한 공식 기자 회견을 했고 2019년 7월 12일자로 협력각서(MOC: Memorandum of Cooperation)를 체결했다.

  한국어화된 IB 도입 합의의 첫 유효 기간은 일단 5년이고 이후 갱신할 수 있다. 1차년도부터 참여하는 교육청은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이지만 시도 교육청별로 추가로 참여할 수 있다. 현재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은 시범 학교에 IB의 초·중·고등학교 프로그램을 모두 도입하고 있다. 다만 초·중학교 프로그램은 수능과 같은 외부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IB 채점관 양성 등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IBO와 맺은 협약 세부 내용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프로그램과 관련한 것이다. 물론 모든 초·중·고에 당장 전면 도입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학교에만 시범 도입한다.

  한국어 IB 시험 문제와 채점 기준은 영어판 IB 시험 문제 및 채점 기준과 동일하다. IB 시험의 운영 및 채점의 최종 질 관리 책임은 IBO가 맡는다. 한국어 IB 시험의 점수도 영어 IB 점수와 동일하게 전세계 대학에서 인정받게 된다. 그렇기에 IB 한국어화는 단순히 시험 문제를 번역하는 차원이 아니다. IB 대입시험을 한국어로 치르고 엄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IB 교원 연수를 하고, 영어판 채점과 동일한 수준으로 한국어판 채점이 가능한 우리 채점관을 양성하게 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시범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 교사들도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의 평가와 수업을 접하게 하길 기대한다. 이것은 영어로 운영되는 IB 교육 및 평가 시스템을 국내 공교육에 생체이식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단위학교에서 IB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의 지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다음은 국내의 한국어 IB 시범 도입 추진 경과를 요약한 것이다. 

국내의 IB 시범도입 추진 현황 요약

• 2017. 6. 서울시교육청의 IB 정책 연구 최초 시작
• 2017. 12. 제주교육청 IB 한국어화 추진 및 시범학교 도입 공개 선언
• 2018. 1. 제주교육청이 IBO에 IB 한국어화 협의 요청 공문 보냄
• 2018. 2. 충남교육청 IB 정책 연구 시작
• 2018. 3. 싱가폴 IB 글로벌 컨퍼런스에 한국 시도교육청 등에서 자발적으로 30명의 대표단이 참석함.
• 2018. 3.26. 싱가폴 회담: 한국대표단(제주교육감, 충남교육감, 대구교육청, 경북대 사범대학장: 서로 사전 협의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이 IBO 회장단과 공식 회담을 갖고 IB의 한국어화 체제 개발을 공식 요청함. 
• 2018. 5.26. IBO 이사회에 IB 한국어화 의제 상정
• 2018. 7~9. IBO의 한국어화 타당성 검토 작업 착수
• 2018. 9.26. 싱가폴 회담: IBO 회장 vs 대구교육감 및 제주교육감
• 2018. 10~12. IBO와 MOC(Memorandum of Cooperation) 각론 협상(교과목 및 타임라인)
• 2018. 12. 대구교육청, 제주교육청의 IB 예산 지역 의회 승인
• 2019. 1~4. MOC 법적 검토 및 각론 협상(법률 및 행정)
• 2019. 4.17. IB 한국어화 추진 확정 기자회견(IBO, 제주교육청, 대구교육청)
• 2019. 5.1. 대구시청-대구시교육청-대구시의회 간 IB 도입 양해각서 (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 체결
• 2019. 4~7. MOC 세부 문구 검토 및 협의
• 2019. 5. 한국인 IB 연수 강사 온라인 연수 시작
• 2019. 6. LOI(Letter of Intent) 체결(대구교육청, 제주교육청, IBO)
• 2019. 7.12. MOC 최종 체결(제주교육청, 대구교육청, IBO)
• 2019. 8. 한국인 IB 연수 강사 오프라인 연수 최초 실시(제주)
• 2019. 9. IB 교사 국제 워크숍의 국내 최초 개최(인천 채드윅)
• 2019.11. Siva Kumari IBO 총재 방한(서울대학교, 서울교육청, 대구교육청, 제주교육청 방문)
• 2019.11. IB Country Advisory Council in South Korea 발족
• 2021. 대구와 제주에 IB PYP, MYP, DP (초·중·고) 인증 학교 탄생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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