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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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의 공부방 책상 전등이 하나 나갔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제 A군은 과외를 받아야 하는 시간이라 과외 선생님은 이미 공부방에 온 상태다. 그런데 A군의 엄마가 그 전등을 고치고 있었다. 공부방의 다른 전등을 빼서 책상의 전등에 끼우면 되는 작업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빨리 전등을 고쳐 주고 싶었다. 그러나 잘하지 못하였다. 그냥 ‘이 등을 고쳐야 해, 새것으로 끼워야 해’라고 하면서 애를 쓰고 있었다. 이를 본 A군은 왜 지금 그것을 하느냐고 짜증을 냈다. 수업을 마친 후에 갈아 끼우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지금 전등을 갈아 끼워야 공부하는데 어둡지 않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열심히 애를 썼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들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해보겠노라고 말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A군이 키가 크니까 충분히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아들에게 맡겨보세요. 조금 천천히 A군이 하면 될 것 같아요. A군아 천천히 해 봐.”

A군은 엄마를 책상에서 내려오게 한 후에 자신이 시도했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전등 갈아 끼우기는 쉽지 않았다. 어떻게 끼워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생각해야 했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는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라고 계속 이야기하다 성이 차지 않았는지 다른 전등으로 가서 그 원리를 연구했다.

얼마 후 엄마는 A군이 전등을 보면서 연구하고 있는 책상으로 와서 자신이 고치겠다고 말했다. 그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A군도 전등을 고치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아요. 조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그러나 엄마는 들은 체도 않고 아들을 내려 오게 했다. A군도 그 원리를 이제 알아서 충분히 고칠 수 있었음에도 엄마가 책상 위로 올라가서 전등을 고쳤다. 그러나 그 시간이 결코 빠르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전등을 고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 선생님에게서 들었다. 필자는 엄마의 사랑이 참으로 크지만 아들은 자신의 책임을 경험하거나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엄마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들이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부 이외에는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공부만 하기 바랐을 것이다. 나머지는 엄마, 아니 부모가 다 해주고 아들은 꽃길만 걷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A군도 분명히 전등을 고치는 원리를 알아냈고 충분히 전등을 고칠 수 있었다. 단순하게 전등을 갈아 끼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단순한 일도 엄마가 자신을 밀어내고 대신 했다는 사실은 엄마가 자신을 전등도 갈아 끼우지 못하는 아들로 인정하고 있다고 인식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조금 늦어도 기다려주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따스한 사랑이 아니라 차가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들을 사랑한다면 능력을 키워서 힘을 갖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대신 한다는 것은 아들의 능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A군이 전등을 고치고 엄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다려주고 응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우리는 아기가 어릴 때 기다가 걸을 때의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일어서다가 몇 번이고 뒹군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일어선다. 그렇게 얼마간의 실패를 반복하면서 서기를 쉽게 할 수 있다. 아기가 성장하면서 그런 실패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쉽게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넘어진 아이를 보면서 빨리 일으켜 주고 싶은 것은 엄마의 마음이다. 그러나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이 본인의 책임이다. 엄마의 마음보다 아이의 책임이 인생에서 더 필요하다. 

인생은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그래서 스스로 일어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엄마가 대신 일으켜 주면 순간적인 결과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세상에서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힘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은 엄마가 아들을 대신하는 마음보다 아들이 책임지도록 믿고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큰 원동력이 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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