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환 동의대 총장

한수환 동의대 총장
한수환 동의대 총장

지난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신없이 바쁠 대통령 당선인이 지방 군수와 단독 회동한 것이 화제가 됐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지자체 중의 하나인 경북 군위군(郡) 군수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지역 존립을 위한 군위군의 절박한 호소는 ‘지방 소멸’이라는 암울한 미래가 얼마나 가까이 와있는지를 시사한다.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현상이 맞물려 점점 더 심화되는 지방의 위기는 이제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간 불평등이 가중되면 국가 전체의 성장과 발전을 억제하는 제동효과(braking effect)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지방의 위기는 곧 수도권의 위기이자 국가 전체의 위기이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그동안 정부는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해왔다. 1964년 ‘대도시 인구집중방지시책’을 시작으로 2021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비수도권 지역으로의 분산을 도모했다. 그러나 정책의 성과는 미미했고, 인구의 수도권 집중은 해마다 늘어나 1970년대 전체 인구의 20%대에 불과했던 수도권 거주인구 비율이 현재 50%를 넘어섰다. 이렇듯 지역균형발전은 해결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 난제가 됐다. 그렇다고 지역균형발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개념이라거나 정책 채택의 정당성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지역불균형 문제 해결을 포기한 국가는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은 우리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국가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의 책임과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국가적, 사회적 위기 시에 대학의 존재가 주목받은 것은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10년 설립되어 대학 역사상 최초로 학문 연구를 지상 과제로 삼았던 베를린대학이 한 사례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물리적인 힘에서 상실한 것을 정신적인 힘으로 보충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하기 위해 대학을 세워 가르치고 연구하는 실천으로 이어졌고, 이후 연구는 교육과 함께 대학의 핵심 사명이 됐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넘어 국제사회 및 국가, 지역사회가 연계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게 됐다. 

1970년대 이후 유엔인간환경회의, 유네스코 세계고등교육회의 등은 대학의 사명으로 기후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위기에 대처하고,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을 촉구했다. 1990년대 경제성장이 위축된 유럽의 국가들은 대학이 지역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을 요구하며, 지역과 지역민을 위한 시민대학으로서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2000년대 미국 대학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정책제안을 위해 구성된 켈로그위원회(Kellogg Commission on the Future of State & Land-Grant Universities)는 사회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대학의 사명으로 학습, 새로운 지식창출, 지역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2020년대 한국의 지역대학은 지방 소멸의 극복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대학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대학이 각 지역사회가 보유한 최고의 자원이자, 지역공동체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체라는데 기인한다. 대학은 지역경제와 산업, 사회 및 문화 발전을 이루는 인적, 물적 자원의 집약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발전의 발판이 되어 온 지역대학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쇠락한다면 지역균형발전은커녕 지역의 존립 자체를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최근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개별 지역이 지닌 고유한 자원과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그 지역만의 특화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원동력이자 핵심으로서 지역대학의 존재는 더욱 중요하다.

지역균형발전은 지역인재의 육성에서 시작해 그 인재의 지역 정주로 이어질 때 구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대학이 인재를 잘 육성할 수 있는 상황과 그 인재가 지역에 남아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절대적이다. 물론 지역대학이 인재를 잘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학 스스로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교육 및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동시에 지역대학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함께 조성돼야 한다. 

무엇보다 14년째 동결된 등록금은 대학을 재정 위기에 빠트려 양질의 교육을 위한 인적, 물적 투자를 약화시키고, 이는 결국 교육 역량의 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등록금 규제 완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현재 대학생 1인당 교육비가 초등‧중학생 1인당 교육비보다도 낮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등교육 공공투자 비율 확대를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재정 악화로 인한 문제는 우리 고등교육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 사립대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나 고등교육재정지원특별법의 제정 등 적극적인 방안 모색이 절실하다. 자율적인 대학운영과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보장함으로써 지역대학이 지역인재 양성의 책무를 다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잘 키워진 인재가 수도권 등으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에 정주토록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고용, 수준 높은 일자리가 보장돼야 한다. 지방의 만성화된 경제 약세 속에서는 탄탄한 일자리와 고용을 약속할 수 없다. 현재 각 지역은 신산업을 유치하고 활성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바이오, 로봇, 차세대 에너지, 신소재, 융합부품 등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한 산업생태계 조성은 대학의 관련 인재 육성, 연구개발을 통한 뒷받침이 없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인재양성과 연구개발 역량은 물론 그 지역 여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지니고 있는 지역대학과 기업 간의 산학협력은 지역산업발전의 주요한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이 창조하는 기술혁신이 지역 기업들에게 가치 창출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산업 활성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 연구개발의 질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인재양성, 연구개발, 기술사업화, 지역산업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제 구축의 중심에 지역대학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지역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건강한 창업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대학, 기업, 투자자가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는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지역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 실질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립대학의 유휴 교육용 시설에 대한 규제 등 대학에 부여돼 있는 다양한 규제 완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 제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방 주도의 지역 혁신전략 구축, 지역균형발전 관련 법제도의 정비, 지역산업과 대학에 대한 규제 완화, 인재양성을 위한 재정 투자의 확대, 지방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의무채용 비율 상향 조정 등 어느 하나 사소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제안들이 기본적으로 지역대학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지역균형발전은 지역대학이 경쟁력을 가질 때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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