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구분 폐지하고 융합형 인재 양성 위해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된 통합수능
교육계 “국영수 부담 완화와 통합사회·과학 가르칠 교사 양성” 필수
전문가 “공통교육과정 과목과 수능제도 일치하고 교사 양성해야”

지난 9일 치러진 6월 모의평가에 응시한 N수생 비율이 지난 13년간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통합수능이 입시왜곡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지난 9일 치러진 6월 모의평가에 응시한 N수생 비율이 지난 13년간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통합수능이 입시왜곡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통합형 인재 양성인가, N수생 양산인가. 박근혜 정부 당시 융복합 인재 양성을 기치로 내걸고 도입된 통합수능이 논란에 휘말렸다. 문이과 간 통합을 지향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게 이과생들이 높은 표준점수를 무기로 인문계 학과에 지원해 합격하는 이른바 ‘문과침공’ 현상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실시된 6월 모의평가(모평)에 응시한 N수생 비율이 16.1%로 최근 13년 동안 치러진 6월 모평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한 것도 이런 논란을 부추겼다.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이 아닌 점수가 잘 나오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전문가들은 과목만 통합형 과목을 만들고 학생들에 대한 통합형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통합형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 양성과 대학 입학 후 융복합 교육을 통한 통합형 교육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나아가 교육과정도 입시제도의 일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융복합인재 양성 위해 도입된 통합수능…“국영수 완화는 필수” = 통합수능은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당시 교육계에서는 국영수 완화가 필수라는 의견이 대두됐다. 

통합수능의 핵심은 계열 구분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수험생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국어·수학 선택 과목을 고를 수 있고 사회·과학탐구 과목도 계열 구분 없이 선택할 수 있다. 국어 공통과목은 ‘독서’와 ‘문학’, 선택과목은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다. 수학은 ‘수학Ⅰ’과 ‘수학Ⅱ’가 공통과목이며 선택과목은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3년 당시 2017학년도 수능개편안의 하나로 ‘문·이과 완전 융합형’을 제시하면서 통합수능이 새로운 수능 체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당시 핵심정책으로 ‘과학기술 중심 국정운영’과 ‘창조 혁신 기반 창조산업 육성’ 실현을 선결과제로 제시하며 복합적 소양을 갖춘 전문인력 양성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통합수능 안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문이과 통합엔 국영수 완화가 필수라는 의견을 냈다. 김무성 당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수능을 기초학력평가로 대체하지 않으면 완전 융합안은 학생들에게 되레 공부 부담만 늘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난이도는 조절하지 않았는데 시험 봐야 할 과목 수가 늘어나면 학생으로서는 그만큼 공부해야 할 양만 많아진다는 설명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도 “새 입시안이 성공하려면 국어·영어·수학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도 “탐구영역이 늘어난 만큼 국·영·수 부담을 줄여야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수능체제에 맞는 교사 연수도 필수과제로 언급됐다. 김무성 교총 대변인은 “수능 문·이과 통합에 따른 통합사회·융합과학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할지도 고민해봐야 한다”며 “학생에게 융합적 사고능력을 길러주려면 교사가 먼저 새로운 교육과정의 의미와 교습방법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도록 이에 맞는 교과서 개발과 교사 연수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6월 모평 N수생 비율 최대...이과생의 ‘문과침공’까지, ‘입시왜곡’ 부르는 통합수능  =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통합수능이 입시왜곡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그 배경에는 지난 9일 치러진 6월 모평에서 N수생 비율이 16.1%로 최대를 기록한 것과 이른바 이과생의 ‘문과침공’ 현상이 자리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과 종로학원에 따르면 6월 모평에 응시하는 수험생은 총 47만7148명으로 이 중 재수생과 반수생을 비롯한 ‘N수생’은 16.1%인 7만6675명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N수생 증가 원인으로 △정시확대 기조 △통합수능에 따른 문과 학생들의 피해 △이과 학생들 문과 교차지원까지 기회 확대돼 이과 재수생 증가를 제시했다. 이어 “올해 반수생 또한 통합수능에 따른 이과 학생 문과 교차지원에 따른 부적응과 통합수능에 따른 이과 유리 등의 복합적 원인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수생 추가 증가로 본수능에서는 재수생 비율이 매우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 학과에 이과생 수험생들이 대거 진학하는 ‘문과침공’ 현상도 통합수능이 입시왜곡을 초래한다는 비판의 근거다. 2022학년도 대입 정시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거점 국립대 10개교의 정시 최초 합격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인문계열 338개 학과의 60.4%인 204개 학과에서 미적분·기하 응시자가 나왔다. 통상적으로 미적분과 기하 응시자는 이과생으로 간주된다. 서울대는 26개 중 25개(96.2%) 학과에서 나타났다. 연세대와 고려대도 지난해 인문계 지원 응시생의 절반 가까이가 이과생이었다.

자료=종로학원
자료=종로학원

■ 전문가, 교육과정과 입시제도 일치 관건 = 전문가들은 당초 통합수능 개편안 제시 당시 교육계가 우려했던 대로 교육과정과 입시제도의 불일치 해소를 해결책으로 주문했다. 통합사회‧과학 과목을 가르칠 교사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 통합수능 과목 체제가 교육과정 개편 취지대로 설계됐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교육과정에서 공통사회와 과학 중심으로 입시를 치르게 하고 심화과목은 수시나 학생부 자료로 보도록 했는데 지금 입시제도에 당초 취지와 달리 여러 난이도 있는 과목을 집어넣다 보니 수학에서 유리한 학생이 점수를 잘 받는 구조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공통교육과정을 위한 소양 과목을 교육과정에서 설계한 대로만 수능에 반영하면 되는데 현행 수능에 기하나 벡터와 같은 난이도 있는 과목이 추가된 불일치가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은 “통합수능의 정책적 보완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학생들을 통합형 인재로 키울 수 있도록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통합사회‧과학을 가르칠 교사 양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당초 취지대로 통합형 인재를 교육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관은 “교사가 통합형이 돼야 하는데 과학만 해도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을 아울러서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양성되든가, 모든 교사에게 통합과학을 가르칠 수 있게 교육해야 하는데 현장에선 그럴 여건이 안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통합과학이나 사회 과목 자체도 통합형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이 그 과목을 배웠다고 융합 역량이 생기겠느냐”고 반문했다.

대교협에서 10년간 입학 업무를 담당했던 정명채 전 대교협 대학입학지원실장(세종대 지구자원시스템공학과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정 교수는 “통합사회나 과학을 가르칠 교원 확보가 필수과제”라며 “교사 연수를 통해서 교육의 다변화을 시도해야 한다. 수학 교사라고 해서 수학만 가르칠 게 아니라 통계도 공부하고 경제도 익히면서 교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재도 바뀌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교재 자체도 수학의 경우 과거의 덧셈, 뺄셈만 가르치는게 아니라 경제와 관련된 과목을 반영해 개편한다면 폭넓은 교육이 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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