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커뮤니케이션학이나 미디어학 관련 과목을 강의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 동기나 미디어 이용 동기에 대해 자주 다루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서도 얘기하게 된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는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에 근거해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다음으로 ‘애정·소속 욕구’를 설명하면서 인간은 집단에 소속되길 원하고 구성원들로부터의 사랑을 갈구함에 대해 언급한다. 루빈과 동료들(Rubin, Perse, & Barbaton, 1988)이 개발한 대인 커뮤니케이션 동기를 설명할 때에도, 인간은 자기표현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연결’을 위해 소통함을 강조한다. 미디어 이용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도 타인과의 소통과 연결 혹은 집단에 대한 소속은 특정 미디어를 이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기들로 알려져 왔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수업 시간에 설명한다. 여기서도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은 재차 강조된다. 이에 더해 시민성(Citizenship), 디지털 시민성(Digital Citizenship), 조직시민행동(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에 대해 설명할 때도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 국가나 단체에 소속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고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음에 대해 사뭇 진지하게 말해왔다.

이처럼 우리는 여러 단계의 교육을 받아오면서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관점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협력, 이에 기반한 사회 정의 구현에 대해서는 참으로 자주 들어 왔다. 그러나 ‘지구’라는 측면에서 “인간과 그 외의 환경이나 생명체 간의 이해와 배려 그리고 협력에 대해서는 얼마나 자주 배웠을까?” 그리고 “우리는 주변의 환경과 그 속의 생명체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경을 써왔을까?”라는 질문이 최근 들어 좀 더 자주 머릿속에 떠올랐다. 환경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강의를 정기적으로 제공했고 환경 관련 논문을 몇 편 게재했는데,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계기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필자의 본가는 충청북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꽤나 오랫동안 유지해 왔었다. 특히 본가로부터 1㎞ 정도 떨어진 윗 마을은 야트막하지만 참나무와 아카시아 나무 그리고 감나무로 우거진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최근까지도 윗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바라보면 녹음이 짙었으며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 버스에서 내려 고개를 넘어 아랫 마을인 본가까지 걸어가곤 했는데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논 한가운데와 냇가를 따라 유난히 많았던 버드나무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지면서 어릴 적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렇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랬던 곳인데… 얼마 전 윗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를 차로 넘어가면서 지구라는 공동체에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아프게 경험했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실제로 얼마나 살릴지는 미지수다) 명분으로 공단을 조성하기 위해 수백, 수천 만년에 걸쳐 형성됐고 우리의 조상들이 조화롭게 적응해 살아왔던 산들을 밀어버리고 헤집어놓은 것이다. 환경커뮤니케이션 수업을 하다 보면 심리적 거리감이라는 개념을 들면서 사라지고 있는 산호초나 북극곰의 고통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가 해당 현상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에 겪은 것은 지극히도 직접적이고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인지 너무나도 통렬하게 그 아픔이 느껴졌다. 사실 너무나 미안했다. 도대체 인간이 무슨 권리로 환경을 마구 파헤쳐서 그 속의 모든 생명체를 없애버릴 수 있는가? 탄소 저감이나 중립을 그렇게 외쳐대면서 이 무슨 역발상이며 도대체 누가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길래 이렇게 인간 마음대로 파괴할 수 있을까? 일련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비록 필자는 환경운동가가 아니고 환경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은 미디어학자이자 커뮤니케이션학자로서 지구라는 관점에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인간들로만 구성된 집단 내에서의 사회성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하나됨(Oneness)”를 추구할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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