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반도체 인력 확충” 질타에 교육부 반도체 비상
산업계 “인력 수급” 요청에 수도권 대학 증원 카드 꺼냈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제한·지역 대학 반발 등 걸림돌 있어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교육부에 ‘반도체 특명’이 떨어졌다. 교육부 전 직원들이 반도체 ‘열공’모드에 나서는가 하면 교육부 차관을 팀장으로 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양성 특별팀’까지 출범했다. 이 모두가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 수급’ 필요성을 강조한지 약 일주일 만에 이뤄진 일이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산업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반도체 산업이 잘 되려면 교육부가 잘 해야한다”며 “교육부가 그런 인재를 키워내는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질타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 직후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장상윤 차관은 출입 기자 간담회에서 “대학에서 반도체 관련 인력을 산업계가 원하는 만큼 키워내야 하지만 대학 규제가 걸림돌로 남아있다”며 “기존보다 파격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반도체 인력 부족을 경고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반도체 산업기술인력은 3만6000명 수준으로 매년 1500명의 인력확보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15일 교육부에서 열린 ‘반도체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 공개토론회’에서 황철성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 고급인력은 2032년까지 5565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4대 분야인 메모리반도체, 시스템반도체, 공정장비, 소재 등에서도 석·박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한 반도체학과 교수는 “학부생 중에 반도체를 전공한 사람은 전체 인원의 15%로 재교육이 필요한데 그나마도 학부 인력이 부족하면 대학원생 인력도 부족해진다”며 “인력을 대기업에서 다 데려가는데 중소·중견 기업은 더더욱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라고 분석했다.

교육부는 15일 '반도체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 공개토론회를 열고 반도체 관련 교수와 산업계 인사 등 전문가를 초빙해 전 부서 교육을 진행했다. (사진= 교육부)
교육부는 15일 '반도체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 공개토론회를 열고 반도체 관련 교수와 산업계 인사 등 전문가를 초빙해 전 부서 교육을 진행했다. (사진= 교육부)

■ 수도권정비계획법 따라 증원 힘든 수도권 대학…계약학과 우회로 = 상황이 어렵다 해도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기 위한 증원은 또 다른 문제다. 현재 수도권 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대학 정원이 총량제로 묶여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은 학교를 비롯한 인구집중유발시설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신·증설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학과를 신설하는 대부분의 대학은 ‘계약학과’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계약학과는 정원외로 분류돼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다. 국내 반도체 주요 기업들은 인재 확보를 위해 수도권 주요 대학 선점하기에 바쁘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은 손잡고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고 있다.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에 이어 서강대는 지난 3월 SK하이닉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한양대는 4월 SK하이닉스와 협약을 체결했다.

교육부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안에서 증원할 수 있는 첨단학과 규모는 8000명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규모를 약 2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계약학과 정원외 선발을 입학 정원의 20%한도에서 50%로 늘리는 방안 등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다음달 중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산업계는 계약학과가 단기적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계약학과만으로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반도체 인력 양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형환 SK하이닉스 부사장은 “기업주도로 신설되는 계약학과가 (인재 양성에) 가장 빠르지만 교수 모시기가 힘들다”며 “교수들의 신분 보장 유지와 신진 교수 채용 시 어려움 등이 있다”고 토로했다.

■ ‘인력 양성도 지역대학부터’…커지는 목소리에 정부 딜레마 = 무엇보다 대학과 시민사회를 포함한 지역의 반대도 큰 걸림돌이다. 지역 대학이 고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첨단산업 인력 양성을 이유로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를 완화하면 지역 대학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지방시대’를 약속한 윤석열 정부인만큼 지역의 타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정부의 수도권 정원 확대를 검토 입장이 나온 후 ‘균형발전을 촉구하는 영남·호남·충청 시민단체’는 공동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을 빌미로 수도권 대학 첨단학과 증원을 늘리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을 가중화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우선권을 비수도권 대학에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 대학교육연구소도 논평을 내고 “수도권에는 학부 정원이 1만5000명 이상 세계 최대 규모 수준의 공룡 대학이 16곳이나 있어 교육부가 반도체 학과 정원 증원을 할 경우 이들 대학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교육부가 수도권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증원 검토를 곧바로 들고 나온 것은 현재 우리나라 대학이 처한 상황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동석 경북대 교수도 “수도권 계약학과가 늘어나면 지방의 비계약학과 학생은 취업이 더 어려워진다”면서 “지역 인재를 키우고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학부 정원 증원만이 답은 아냐…석박사 양성·교수 확보 등 장기적·현실적 대안 필요 =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무작정 관련 학부 인원만 늘리는 정책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당장 학부 인원을 늘리게 되면 그에 필요한 교수진과 교육 시설과 장비 등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전문성 있는 교수 확보가 어려운 상황인데다 시설과 장비가 노후화 돼 사실상 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힘들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15일 교육부 토론회에서는 이처럼 현실적인 지적들이 이어졌다. 황철성 교수는 “학부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하기 어렵고 특히 실험·실습이 반드시 필요한 반도체 분야에서 위험한 장비는 안전한 클린룸에서 사용해야 하는데 계약학과를 위한 클린룸이나 장비는 전무하다”라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반도체를 연구하는 교수가 충분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키워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방안이다”라고 강조했다.

한동석 교수는 “고등학생도 한 반에 30명 이하인데 대학은 70명 이상 듣는 수업이 많아 학생과 교수가 토론할 기회도 없고 기업이 안 쓰는 노후화 된 장비를 기증받아 사용하고 있다”며 “거점국립대에 장비를 투자한 뒤 주변 대학이 함께 활용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이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이화여대 교수는 “학부 정원만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학생 수가 늘어나면 교수가 늘어야 하고, 그럼 거기에 따른 공간과 지원을 늘려야 한다”면서 “반도체가 주목받는다고 해서 대학에서 반도체 분야만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단순히 정원을 늘리는 것 외에 후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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