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문 전북대 조경학과 교수

김정문 전북대 조경학과 교수
김정문 전북대 조경학과 교수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사람은 동물과 달리 끊임없이 배우려 하고 또 배워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동물은 태생적으로 생존 기능을 가지며 어미는 그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약간의 도움만 준다.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녀석은 바로 도태되고 생존의 기능을 터득한 녀석은 환경에 본능적으로 적응할 뿐, 더 이상 다른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들은 몇 만 혹은 몇 천 년 단위로 파악할 수 있는 진화론적 변화를 조금씩 보일 뿐 가진 문화도, 역사도 없다. 3000년 전 동물의 삶이나 지금 동물의 삶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려 한다. 자연으로부터도 배우고 선각자가 쓴 책을 통해서도 배운다. 일상 속에의 배움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이란 무엇인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와 어울림의 연속이다. 그래서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가다보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고 했다. 세 사람 중 나 외의 두 사람을 보며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통해서는 그 ‘잘함’을 배우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통해서는 ‘나는 저렇게 하지 않아야겠다’라는 반조와 반성을 하며 또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관건은 타인을 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반성도 하려 하는 나의 의지다. 의지가 곧 배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도 다를 것이 없다. 세 사람이 모인 곳이 곧 사회다. 잘하는 사람, 못 하는 사람,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이 서로 배우며 조화를 이뤄가는 곳이 바로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 배우려는 삼인행이 아니라, 싸우는 삼인행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여당과 야당이 극심하게 싸우면서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내고 심지어는 거짓말까지 퍼뜨린다. 진보는 진보대로 자기주장을 하고, 보수는 보수대로 자기 노선에만 충실하며 서로 국민을 향해 자신을 따르라고 선동한다. 국민들도 대부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자신에게 이로운 쪽을 택하려고 혈안이다. 거짓말이 난무하다보니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마저 흔들리고 있다. 시비에 대한 판단이 무뎌지고 왜곡되면서 국가관이나 민족관은 물론 개인적 삶의 가치 소재까지 불분명해졌다. 그저 돈 많이 벌어서 풍요롭게 사는 거의 ‘동물적’ 본능만 작동할 뿐,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서로 살피며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참 어지러운 세상이다.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서로 대화하며 내게 부족한 점을 채우기도 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나누어 주기도 하는 평화로운 세상이 돼야 한다. 바른 가치관이 설 때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보며 배우고자 하는 정신이 살아난다.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한 인문학의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최고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나서서 이런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때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