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현 만화평론가(만화문화연구소 엇지 소장)

그림=손영오
그림=손영오
박세현 만화평론가(만화문화연구소 엇지 소장)
박세현 만화평론가(만화문화연구소 엇지 소장)

만화에도 미학이 있다고?

만화에도 예술성이 있는가? 아니, 그냥 읽고 보고 버리면 되는 게 만화인데, 대체 만화도 미학을 따져가면서 봐야 하는가? 솔직히 만화에서 미학과 예술성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고 괜히 만화를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만화도 역사와 이론을 알고 보면 또 다른 각도의 재미와 만화예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사실 만화는 미술에 적잖은 빚을 지고 있으며, 반대로 현대미술은 만화에 빚을 지고 있다. 원시시대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만화 같은 그림을 그려왔고, 많은 작품들이 만화적 요소를 띠고 있다. 심지어 만화가를 꿈꾼 위대한 예술가도 많았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다다이스트(dadaist)이면서 예술계의 이단자였던 마르셀 뒤샹이었다.

그림=손영오
그림=손영오

태초에는 만화가 먼저 있었다!

미술이 그렇듯, 만화의 기원을 찾는 일은 1만 5천 년 전의 프랑스 남부 라스코 동굴벽화와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벽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스코 동굴과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소, 말 등 가축들 그림에서 만화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 동남부 아르데슈에서 발견된 3만 5천 년 전의 쇼베 동굴벽화는 훨씬 더 만화적이다. 1994년에 발견된 이 쇼베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 그림에는 앞뒤 동물들의 거리감과 원근감이 표현되어 있으며, 달리는 짐승의 다리와 뿔 등은 여럿 겹치게 그려 애니메이션 기법이 적용됐다. 사실 원근법은 16세기 초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고, 움직이는 사물의 동적인 표현은 20세기 미래주의 화가들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쇼베 동굴벽화를 그린 인류의 조상들은 시대를 초월했던 존재들인 셈이다.

그림=손영오
그림=손영오

스토리를 가진 알레고리 예술로서의 만화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알레고리는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상징보다 사물들의 무상성에 대한 통찰과 이들을 영원으로 구원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표출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알레고리는 인간 세상에 대한 풍자와 교훈, 욕망, 현실, 고통, 희망 등을 가장 구체적으로 설명해내면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신화, 우화, 전설 등이 알레고리 예술 장르였다면, 대중문화 시대에서 알레고리 예술 장르는 소설, 영화, 만화 등이다.

정지된 이미지로 창작된 회화는 추상적 개념 상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만화는 회화의 표현미와 소설의 이야기, 영화의 연출미가 결합된 스토리를 가진 최고의 알레고리 예술이다. 같은 시각예술이지만 회화와 만화는 결을 달리한다. 가장 큰 차이는 만화에는 스토리, 즉 내러티브가 존재한다는 데 있다. 상징이 가득한 회화는 해석적 범주에 속한다면, 알레고리로서 만화는 이야기 범주에 속한다. 다시 말해, 회화는 그림 속의 대상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인식과 감상의 관건이었지만, 만화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를 결정한다. 이 알레고리의 내용, 구조, 종류에 따라 그 작품의 장르가 결정된다.

그림=손영오
그림=손영오

만화에도 기호학이 있다고?

사실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다 기호다. 돈, 신호등, 말, 광고, 노래, 달력, 책, 대화, 주역, 타로, 화투… 심지어 아침마다 보는 똥까지도. 그래서 기호학은 인간이 생활하고 다루는 모든 상징체의 구조와 그것이 재현하는 사상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만화에도 기호가 존재한다. 글과 그림으로 이뤄진 만화는 여타 예술보다 훨씬 다양한 기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기호들의 의미도 매우 복잡하다. 대사, 말풍선, 의성어, 의태어, 칸, 선, 점, 색, 면, 지문 등이 만화기호다. 만화기호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이야기를 글과 그림, 그리고 그림 연출로써만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는 영화, 문학, 음악, 회화, 연극, 건축, 사진 등 모든 예술의 특징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에 다가서게 된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만화를 읽고 보기 위해서 우리가 만화기호학을 따로 배우지 않다는 데 있다. 만화도 보기 전에 만화기호학부터 배워야 한다면, 만화를 보겠는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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