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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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대학 관계자, 즉 대학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공급자에 가까운가? 그렇다면 아마도 위와 같은 문구에 감동할지 모른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BK사업을 중심으로 팽창한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의 홍보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국내외에 그들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유용한 원천이자 도구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 즉 대학의 수요자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인다. 위와 같은 홍보 문구가 의도했던 바는 과연 달성되고 있을까? 

꾸준한 학령인구 증가와 치솟는 대학 진학률은 1990년대 후반까지 사학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대학 졸업장을 원하는 사람이 넘쳐나며 공급자 중심의 패러다임과 비대칭적 권력 관계는 차츰 공고해졌다.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이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대학의 수가 현저히 적다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계가 겪고 있는 충격의 본질이다. 오늘날 대학에서 ‘수요자 관점’은 이와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학생 중심, 학생 성공, 학생 참여가 대학의 효용과 발전 방향에 관한 논의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지식은 위기의 순간에만 도전받게 된다”고 했다. 대학이 위기에 놓인 이 시대는 그동안 대학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지식, 사고, 신념 체계로부터 과감히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치’와 ‘투자’는 고등교육 패러다임 혁명을 이끄는 핵심이 될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를 단순히 ‘고객(customer)’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이들을 ‘투자자(investor)’로 재정의하고 조직 내의 모든 구성 요소를 재구조화하는 것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유효한 전략이다. 공급자 관점의 성과는 투자자 관점의 가치로 전환돼 효과적으로 그들에게 전달됐을 때 빛을 발한다.

학생과 학부모를 투자자로 재정의하는 순간, 입학처는 투자유치본부, 입시홍보와 대외협력은 투자유치활동, 입학설명회는 투자설명회, 학생관리‧지도는 ‘IR(Investor Relations)’로 치환된다. 투자에 따르는 기대수익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은 미국대학에서 보편적 인식이다. 많은 미국대학은 학위 취득을 위한 총비용, 즉 투자원금을 세부적으로 공개한다. 수업료는 물론 기숙사비, 생활비, 학자금융자, 심지어 국제학생의 항공료, 수속비와 같은 비용까지 계산해두기도 한다. 이와 함께 졸업 후 첫 직장에서의 평균 연봉, 임금 증가 잠재력 등을 화폐단위로 제공하기도 한다. 투자수익률 개념이 정확하게 적용되는 대목이다.

대상의 재정의는 ‘가치의 재정의’와 맞물려 있다. 자본시장의 투자자는 화폐단위로 표시된 수익을 기대하지만 대학의 투자자는 고품질 학습환경에서의 변혁적 성장과 희망 진로 분야에서의 전망, 궁극적으로는 성공적 인생을 기대한다. 따라서 투자받은 자원 대비 어떤 가치 패키지를 제공하는지에 관한 명확한 아이디어는 대학의 소구력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뚜렷한 가치체계를 구축하고 대학에 투자하고자 하는 이해관계자를 세분화한 뒤에 이를 전략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국제학생 유치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교육의 질 개선 △우수학생 선발 △지역사회 공헌 △연구개발(R&D) 진흥 등 대학의 주요 의제를 관통하는 중심 활동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시대’ 고등교육과 기술혁신의 대가(大家)들이 미래의 대학과 교육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한 책의 부제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학의 선택을 받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이 이제 투자자가 되어 돌아와 대학을 선택하기 위해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대학이 나에게 무슨 이익을 주나요?”라고 묻는다. 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이 준비돼 있는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 의도를 구체적인 선택 행위로 바꿔내기 위한 가치 설정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확보했는가?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살아남기 위해 대학사회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 질문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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