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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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유아교육과에 가고 싶어요.”

지난 8월 초 서울시 교육청에서 실시한 2023 대입 수시모집 대비 진학 상담에서 필자는 전문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상담했다. 이때 찾아온 한 여학생과 어머니가 자리에 앉자마자 유아교육과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물으니 그냥 학교에서 진로를 정해라고 할 때 취업 잘될 것 같은 유아교육과를 정했단다.

그 이후에 학교에서는 모든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용을 유아교육과에 맞춰 작성했다고 한다. 학교 활동과 세부능력 및 특기 사항의 내용도 학생이 유아교육과에 얼마나 적합한가를 알리려는 내용이 주류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학과에는 지원할 수 없고 유아교육과에만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출생자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유치원 교사는 밝은 전망이 아닌데도 지원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알지만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때문에 자신은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대로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유치원 교사가 돼야만 하는 것이 자기 진로의 전부라고 생각했단다. 

그 학생의 성적으로 보면 서울에 있는 전문대학의 유아교육과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전문대학의 수시전형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 중에서 가장 잘한 두 학기의 성적을 전형 요소로 학생을 선발하는 경우가 많거나 우수한 교과 중 몇 과목을 지정해 선발한다. 그래서 전체적인 성적은 조금 부족하다 해도 한 두 학기의 성적이 우수하다면 얼마든지 합격이 가능한 선발구조다. 

필자는 그 학생이 더 나은 진로를 선택하도록 돕기 위해 정말 유아교육과를 가서 공부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한 것이 없고 무엇을 선택해야 잘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유아교육과에 지원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지만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으로 보면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학생을 위한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이 그 학생의 진로 장벽이 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필자가 그 학생과 어머니와 상담하면서 파악한 바로는 그 학생은 역사를 좋아했고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영어를 다른 과목에 비해 좋아했다. 유아교육에 대해 상담할 때는 침울했는데 역사와 영어 이야기에서는 눈빛이 반짝였다. 이런 현상은 그 학생이 유아교육과에 진학하는 것 이상의 진로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로, 여러 검사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그들에게 역사의 근현대사를 조금 더 깊이 공부하고 영어의 특기를 살려 다른 나라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되, 유아교육에 관련된 부분만을 공부해 연결할 수 있다면,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것 이상의 진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를 잘 몰랐지만 필자가 자세한 경로와 방법을 설명해 주니 비로소 이해했다. 그는 필자가 제안한 것과 같은 진로를 생각하고 선택하면 되는지를 처음 알았다고 감사를 표했다.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의 삶을 놓고 볼 때,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잡고 살려서 더 부유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자격이 있다. 그것은 학교에서 지도한 것 이상이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내용 이상의 것이다. 

“선생님, 유아교육과에 가고 싶어요”라는 그 학생의 말은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아닐 수 있다. 기록에 의한 수동적인 수용에 지나지 않는 표현일 수 있다. 지금 고3 학생의 미래는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대로 되지 않으며, 대학의 어느 학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그대로 결정되지 않는다. 현재 대학의 학과에 초점을 맞춘 지도는 위험할 수 있다. 대학의 학과는 사회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학의 학과보다 학생이 잘하는 것 몇 가지를 찾아서 그것에 관련된 역량을 키우도록 돕자. 그렇게 키운 역량들을 연결하는 방법을 찾도록 하자. 그래야 사회가 변하더라도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이 돼 학생의 진로를 제대로 찾아줄 것이다. 지금 고3 학생의 진로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직업에서 결정될 확률이 높다. 여러 미래학자의 말이기도 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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